연중 제28주일 (2025.10.12) : 2열왕 5,14-17; 2티모 2,8-13; 루카 17,11-18
오늘은 부활의 사기지은에 바탕하여 일상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의 영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선택되면 치유를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주변의 강국 시리아에 나병환자들이 많았지만 유독 나아만 장군을 선택하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사 예언자의 역할이 필요했고,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그의 조언대로 따르는 나아만의 믿음도 필요했습니다. 이는 시리아 사람들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이 징표에 따르면, 우리도 하느님을 믿지 않아 세상의 죄악에 노출되어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된 또 하나의 나아만입니다.
2. 치유되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병 환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나병은 사람의 피부를 짓무르게 하여 흉한 몰골로 만들어놓는 질병인 까닭에 하늘이 내린 벌이라는 뜻에서 천형(天刑)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나병은 완치가 되어도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을 뿐이지 이미 짓물러진 피부는 원상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원을 들으시고 나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나병에 걸리기 이전의 깨끗한 몸으로 돌려놓아 주셨습니다. 신성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렇게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오직 한 사람만 그 기적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베푸신 자비이며 기적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아무런 깨달음도 없었고 따라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한 사람은 자기 탓 없이 하느님을 믿는 대열에서 소외되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에 응답한 사마리아 사람의 찬양과 감사가 훨씬 더 많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감이 되었고, 루카 복음서를 통해서 후대의 믿는 이들과 우리들에게까지도 모범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죄악에 물들어 영혼에 흉한 상처를 입히고 끝내 온 영혼에 상처가 도져서 괴물로 만드는 이기심은 영적인 나병입니다. 그러니 영적 나병에서 세례로 치유된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 바오로를 돌려세우신 이유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응답을 통해서 하느님의 선택을 깨닫고 감사를 드린 경우이지만 사도 바오로는 더했습니다.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를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돌려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당대의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에 사는 이방인들을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할 선교 사명을 감당할 만한 인재였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무수한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신이 걸어가는 인생 여정 속에서 받고 있는 하느님의 선택을 깨닫고 온 힘을 다해서 응답하게 만들 본보기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저 말 한 마디로 감사를 드린 정도가 아니라 온 일생을 다 바쳐서 감사의 응답을 한 것입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의 개입
이렇게 되기까지 사도 바오로에게는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다마스쿠스 체험에서 감사의 응답하리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사도 9,1-20) 그는 그 사건 당시에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쳐 가던 길에서 엎어지고 번개빛에 눈도 먼 채로 하늘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5).
자, 이 짧은 대화로 거짓 예언자로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나자렛 예수가 사실은 하느님이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 사건 이후 사울은 14년 동안(갈라 2,1) 치열하게 고뇌하며 깊이 사색하는 칩거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사도가 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러자 또 다시 위기가 닥칠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필리피 감옥에서 풀어주기도 하시고(사도 16,16-40),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켜 에페소의 선교를 도와주기도 하셨습니다(사도 19,11-20). 그리고 복음화의 방향을 마케도니아 쪽, 그러니까 서향하도록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다는 뜻입니다(사도 16,6-10).
같은 이치로, 15세기에 이냐시오 로욜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마테오 리치, 판토하 등의 유럽 출신 예수회 선교사들로 하여금 복음화의 방향을 동방으로 향하게 하신 후 150년이나 지난 후에, 이벽과 정씨 삼형제(약전, 약종, 약용) 등 조선의 선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한국교회를 세우시게 한 일도 예수님의 역사적 개입이요 사기지은의 결과입니다.
5. 사기지은이란 무엇인가?
부활하시어 육신의 시공적 제약에서 자유로워지신 예수님께서 신기한 방식으로 역사에 개입하신 은총을 사기지은(四奇之恩)이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바오로가 받은 계시 진술(1코린 15,42-44)에 근거하여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神學大全)에서 정리해 놓은 개념으로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활약을 설명하려는 취지입니다.
즉,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손상되지 않음),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빛남), 또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나고(빠름),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예민함) 것입니다. 중세의 영성을 반영하듯이 다분히 분석적이고 이원론적인 그리스적 사유로써 영육과 성속을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방식으로라면 사기지은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야 나타난 것이어서 공생활 동안의 여러 가지 기인한 기적을 설명할 수 없고 우리도 살아 생전에는 체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즉 부활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는데 이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따라서 부활한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의 현실을 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기지은의 현실은 믿는 이들이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현실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알아보지 못했을 뿐인 공생활 동안의 예수님의 참모습에 대해서 전통 교리에서는 ‘사기지은’ 교리로써 죽음 이후나 공심판 이후로 멀찌감치 밀어 놓은 격입니다.
7. 공동체적이고 역사적인 사기지은
하지만 다행히도, 직관-종합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사기지은을 예수님의 공생활에서는 물론 부활하신 후에도 이루어지는 역사적 개입으로 알아듣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 교회의 선교 역사에서 이 사기지은은 공동체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에서 흔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믿는 이들이 선교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마귀나 세속의 영향으로부터 손상되지 않고 온전하게 뜻과 기운을 보전할 수 있으며, 그런 지향으로 사람들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의 영혼과 인격과 마음은 얼마든지 빛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간격과 거리를 넘어 연대하고자 하는 믿는 이들의 뜻과 기운은 시공을 초월하여 빠르게 합해지고 전해집니다. 수평적으로 동시대인들과만이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서 의롭게 살아가신 분들과도 수직적으로 통공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 사람들이 목을 매는 물질적인 힘들 즉 돈이나 권력 그리고 명예를 숭배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거룩한 가치들 즉 연민과 공감 그리고 섬김과 나눔을 소중히 아끼는 믿는 이들의 뜻도 언제나 예민함을 넘어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8. 사기지은에 대한 보증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14,12).
이 예수님의 두 가지 말씀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휘하시어 본받게 하신 사기지은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려는 신자들로 하여금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하신 말씀입니다.
9. 하느님 말씀을 가두어 놓지 않기 : 일상 선교의 영성
요컨대, 믿는 사람이 누리는 실존적 현실은 손상되지 않는 뜻과 빛나는 의지와 빠르게 통공하고 연대하는 관계의 네트워크 그리고 진리에 대한 예민함으로 사기지은이 충만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제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당부하는 말씀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일상 선교의 영성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사기지은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의 감옥에 가두어 두지 않도록 활약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일상 선교의 영성으로 말씀을 그대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 드러내십시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2티모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