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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지혜
  • 이기우
  • 등록 2025-10-01 1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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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5.10.01) :  느헤 2,1-6; 루카 9,57-62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서는 현세 이후의 내세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곳에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천국이 으뜸이고, 천국을 향한 정화 단계로서의 연옥이 버금이며, 하느님을 영원히 상실하는 지옥도 있음을 알려줍니다. 여기에서는 하느님을 잃어 버린 고통 즉, 실고(失苦)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경험으로는 이미 이 현세에서도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현세의 지상에서도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경제적 가난이나 신체적 질병 또는 사회적 소외 때문입니다. 또는 지옥은 아니지만 마치 연옥에 사는 것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이들도 무척 많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번갈아 섬기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천국을 사는 이치를 권고하듯이,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에서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일 그 자체의 본래 목표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든 자신을 가장 낮추어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세로 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사를 베풀 때 보답할 수 없는 이들을 초대라고 권하셨는데, 이는 천국을 들어가기 위한 투자입니다. 


경제 상식에서 투자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자기 자본을 투입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동산이나 주식에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사업 수완이 있는 사람들은 사업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전자를 간접 투자, 후자를 직접 투자라고 합니다. 사업성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직접 투자가 간접 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합니다. 


그런데 천국을 위하여 가장 확실한 직접 투자는 자신이 직접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행위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그 수익을 보장하신 방법입니다. 수익성이 높으면 세상에서는 위험성도 높기 마련이지만, 이 행위는 위험성도 없어서 직접 투자의 유일한 리스크는 투자자 자신의 불신 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약하거나 어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간접 투자를 선호합니다. 


그것이 교회에 내는 헌금입니다. 교회의 재산은 전부 신자들의 간접 투자로 얻어진 위탁금입니다. 자본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써 달라고 신자들이 맡긴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종 배달 사고가 벌어집니다. 교회가 하느님이거나 가난한 사람이기라도 한 양 맡겨진 투자금을 자신의 소유로 하는 경우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충고는 한가한 덕담이 아닙니다. ‘가난한 과부’(루카 21,1-4)를 교회의 모델로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의 현대판 버전입니다. 그것도 핵심 버전인 만큼 교회의 가신성(可信性) 문제가 달려있어서 지키지 않을 경우에 위험천만하고, 지켜야 하는 당위성에 있어서 천금만금의 무게를 지니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이 대목이 배치된 자리도 의미심장합니다. 정작 백성이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일에는 소홀히 하면서 속죄대행업으로 성전세와 십일조 등 막대한 경제적 수입으로 치부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대목 바로 앞에 배치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교회법에는 교회 재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항을 오해해서, 교회의 재산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다는 식으로 알아듣는 교회 관료들도 있습니다. 


본시 하느님의 뜻으로 쓰여져야 할 돈이 교회의 신앙과 양심을 믿고 위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자꾸 쌓여져 가면 그만큼 교회가 세상에서 받을 공신력은 추락하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심판은 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배달사고’의 혐의가 짙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셈법에서도 돈 계산은 정확해야 하는 법입니다. 일원 한 푼이라도 투자자의 의향에 어긋나게 관리되거나 사용되는 것은 반드시 심판받을 위법입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과 처신이요, 그 반면교사는 공생활 당시에 제자들이 보여준 시행착오들이며, 그 길잡이는 제자들이 변화되어 사도가 된 후에 보여준 담대한 믿음과 용감한 증거의 삶입니다. 


또 하나, 기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 기도와 특히 시편으로 채워진 성무일도는 하느님과 교신하는 매우 유용한 통공 행위로서 영적인 기운을 무상으로 충전하는 은총입니다. 봉쇄수도원에 살던 소화 데레사 성녀가 그 젊은 나이와 아주 짧은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교회학자로 선포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사랑의 기운이 기도를 통해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필요한 이들에게 배달된다는 교회의 신비를 꿰뚫어보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지혜는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상환하실 것이라고 보장된 방식으로서, 첫째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에서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일 그 자체의 본래 목표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며, 둘째 누구에게든 자신을 가장 낮추어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세로 대하는 것입니다. 셋째 가난한 이들에게 직접 베푸는 것이며, 넷째 매일의 기도로 하느님과 통공함으로써 세상 곳곳에 세워진 교회에 천사들을 시켜 하느님의 영과 기운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들은 복음서에 널려 있는 내용으로서, 이 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지혜입니다. 그런데도 그 흔한 세속적 치부의 처세술이나 인간관계 관리의 지침, 심지어는 육신 건강이나 외모 관리의 요령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군상들의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몸둥아리를 아무리 잘 가꾸어도 백년을 넘기기 어렵고,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성형수술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재산을 아무리 모아도, 인맥을 철저하게 관리해도 관 뚜껑이 덮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위한 투자는 죽음 후에도 영원한 생명을 보장합니다.


교우 여러분,


묵주기도의 달이자 전교성월을 시작하면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를 기념하는 오늘을 맞이합니다. 그는 매우 젊은 나이에 관상 수도 생활을 했고 짧은 생애를 살고 선종했지만, 마음을 다해 기도했으며 일상의 단순한 행위들을 선교사들을 위한 지향으로 봉헌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는가 하면 교회학자로까지 선포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데레사 성녀처럼 지상에서 천국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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