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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은 이득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
  • 이기우
  • 등록 2025-09-19 20:09:53
  • 수정 2025-09-19 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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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금요일 (2025.09.19) : 1티모 6,2-12; 루카 8,1-3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알려 주신 계시 진리입니다. 인생의 항로는 하늘의 별처럼 세상을 비추는 이 진리를 향해서 나아갑니다. 신앙이 이 항로의 나침반이라면,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아 주는 키는 신심입니다. 그래서 신심(라 devotio, 영 devotion)은 신앙을 실제적으로 움직이게 해 주는 것으로서, 신앙의 가치에 헌신하게 해 주는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공적 신심은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얻게 되는 성령 칠은에 대한 신심도 공적입니다. 슬기와 통달, 지식과 의견, 굳셈과 효경 그리고 경외심 등 성령께서 이끄시는 은사가 바로 성령 칠은입니다.


신앙의 세례를 받았어도 신심 생활을 하지 않는 신앙인들은 세상의 유혹을 받으면 쉽게 냉담합니다. 이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나침반도 보지 않고 키를 움직이지도 않은 채 파도에 휩쓸려가는 배처럼, 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평초 신세가 되어 어디로 가게 될 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은 오직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고자 심산유곡을 찾아 들어 교우촌을 세웠습니다. 그 수효가 무려 129군데가 넘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교회를 세운 기적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교회가 시작될 당시에는 지도적 역할을 해 낸 유학자 선비들이라도 있었지만, 신유박해로 그 지도부가 와해된 지경에서 중인, 상민, 천민 등 민중 신자들은 자신들이 배워 익힌 신앙 진리대로 살고자 살던 집과 토지 그리고 재산 등을 모두 버리고 오직 신앙의 자유를 누리려고 아무도 살지 않고 누구도 간섭하지 않을 심산유곡에 교우촌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박해가 진행되었던 백 년 동안 오히려 신자들이 늘어나는 기이한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또한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입니다.


교우촌을 세운 신자들은 포졸들은 물론 밀고자와 배교자들의 눈을 피해 유랑 생활을 해야 했고, 또 먹고 살기 위해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업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산속에서 화전이나 골짜기를 개간해서 천수답을 가꾸기도 했고, 숯가마나 옹기점을 운영하거나 산나물을 채취하기도 했습니다. 또 담배, 조, 밀, 야채 등을 재배하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교우촌 신자들은 대부분 몹시 가난했습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피어난 것이 바로 신자들의 공동체 정신과 신심이었습니다. 교우촌에서는 과거의 신분이나 재산, 또는 얼마나 배웠는지 등을 따질 필요가 없었고 공동의 생업을 위해서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공동 작업, 공동 분배의 생활방식은 필수였고, 공동 기도 역시 자연스럽게 정착되었습니다. 박해시대에는 기도서나 교리서, 신심서적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부모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앙 지식들을 자녀들에게 입으로 들려주면서 신앙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정약종이 지은 순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거의 암송하다시피 했던 그 당시 교우들의 사정이 이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앙은 생활화되고 대를 이어 전수되었습니다.





신앙의 생활화 과정에서 뚜렷이 나타난 것이 나눔과 봉사 활동이었습니다. 애긍과 단식은 자신들의 허물을 씻기 위한 지향으로나 끼니가 떨어진 이들을 돕기 위한 지향으로 필수적이었습니다. 상가 봉사 활동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입각한 신앙 도리를 전파하였습니다. 이처럼 교우촌의 신자들에게는 신앙과 신심이 경제생활의 목적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삼지 마십시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십시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입니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야고 6,5.7.10-11).


“재물을 하늘에 쌓아 이웃과 나누라”(마태 6,20)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생명의 빵이 되시어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신앙 문제와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깨닫고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시중 들어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레나, 요안나, 수산나 등의 여인들은 열두 제자 못지않은 신심으로 초대교회를 세우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신심은 이득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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