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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부활 제2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8-04-06 15: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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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사도 4,32-35) 해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 공동체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성령을 체험하고 받은 뒤,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찬례와 기도로써 한마음과 한뜻을 이루었으며, ‘재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활로써 구체적인 친교의 분위기를 이루었다. 초대 교회의 특징적 모습은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인격적인 일치였다.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내적 태도는 일치의 분위기를 창조하고, 외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행동으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경우처럼(사도 5,1-11) 부정적인 요소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과 공동체에 헌신하려는 내적 태도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든, 초대 교회는 뜨거운 친교와 화목과 공고한 결속을 과시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인류가 빈부격차와 남북문제(제3, 4세계와 부유한 나라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의 생활과 성격이 같은 어떤 방식을 찾아내야 할 것 같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34절)


시편(117) 해설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하느님이 이룩하신 위대한 업적들은 우리 눈에 놀랍게만 보인다. 새로운 이스라엘이 된 교회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찬미가를 노래한다.


하느님이 당신 아들 예수를 죽음에서 빼내고 다시 일으켜 새 건물의 ‘모퉁이 돌’(주춧돌)이 되게 하고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의 초석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우리는 살아 있는 돌들이 되어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이다.”(에페 2,21이하)


제2독서(1요한 5,1-6) 해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 대한 믿음은 세상을 이겨 내는 힘이다 진리의 성령께서 예수를 증거하실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 요한 1서에서 그렇듯 강조하는 사랑이란 주관적인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다. 그 사랑은 자기를 전적으로 내맡기고 내던지는 결단이요 투신이다. 하느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내밀하고 뜨거운 친교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발생하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꾸밈없고 진정한 형제애와 인간애는 하느님의 뜻에 자기 전 존재와 생애 전체를 맡겨드리고, 주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준수해 나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주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그리스도처럼 인간에게 애착하고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계명이다. 거짓 아닌 참된 형제애와 인간애는 그리스도처럼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어 그들에게 가진 모든 것과 자기 존재 전체와 생명까지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 같은 사랑만이 ‘세상을 이기고’(3-5절) 인류를 단합시켜 하느님의 가족으로 만들 것이다.


‘신앙의 승리.’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과 승리를 나누어 받으려면, 먼저 예수를 만나야 하고 예수와 친해져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예수, 온갖 불목과 불화와 분열과 차별과 싸움과 전쟁의 어두운 세력을 분쇄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분과 친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동일시하신다. 그들과 동료가 되고 그들과 친해져야만 그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를 만나고 예수와 친해질 수 있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에 동참해야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예수를 닮을 수 있다. 그런 연후에야 인류를 분열과 증오와 전쟁에서 벗어나게 하는 믿음의 투쟁과 승리에 참여할 수 있다.


복음(요한 20,19-31) 해설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성령과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위대한 선물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순수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성령과 평화를 선물로 받을 것이다.


‘바라볼 줄 안다.’(19-23절) 십자가의 발치에서 요한은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요한 19,34.37) 그 순간에 다른 사도들은 멀리 피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지금에야 비로소 사도들은 수난의 표시인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 예수를 알아 뵙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에게 제공하시는 당신의 성령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께서는 쇄신과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분이시다.


당신의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행위를 계속하신다(참조. 창세 2,7).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을 이기신 당신의 승리에 참여하게 하신다.


‘증언을 받아들인다.’(24-31절) 토마는 부활하신 분이 나타나실 때 참석하지 못하고, 다른 사도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다. 주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에게 주신 훈계는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다, 육안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믿음으로 건너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활양식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감지되지 않는다. 그분은 이제 직접 보이지 않고 당신을 믿는 사람들(교회)을 통하여 역사 안에 현존하신다. 신앙만이 부활하신 분의 현존을 간파할 수 있다. 


묵상


한마음과 한뜻이 되다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신앙으로 단합하고, 실천적 형제애로 영감을 받고, 사도들의 증언으로 활력을 받아 그야말로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하여 재물을 가진 자는 그 재물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공동재산으로 내놓고, 각자 필요한 대로 나누어 사용했다. 그러는 가운데 순결한 기쁨이 그 공동체에 흘러넘쳤다.


얼마나 멋진 공동체인가! 인류공동체가 꼭 그대로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공동체가 아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일으키는 기적 같은 사실이 그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기적은 인류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기적이다. 얼어붙고 닫히고 굳어지고 오그라드는 이기적인 옛 사람의 마음들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부드럽고 살아 있고 열려 있고 흘러넘치는 새 사람의 마음으로 바꾸어 가신다. 그러한 기적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파스카의 승리를 거두시는 방법이다. 모든 피조물과 인류공동체를 온통 새롭게 만드시는(참조. 묵시 21,5) 기적이다.


그 같은 공동체를 지배하는 마음과 정신은 사도들의 증거로써 용기와 활력을 얻는다. 그 마음과 정신은 성령의 불과 능력으로 부활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선물이요 은총이다.


그런 마음과 정신이라야 신앙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1요한 5,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아가시는 앞길을 막을 자 아무도 없다. 인간 세상을 그런 마음과 정신이 지배하게 하시려는 그분 앞을 막아설 자 아무도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행군하는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 막을 수 있는 자 아무도 없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들도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1요한 5,4)


믿음과 사랑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기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1요한 5,1)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한 형제자매다. 그래서 사랑의 사슬이 우리를 묶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는 부자지간, 부녀지간, 형제자매지간, 육친・혈육・혈연이라는 관계보다 더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관계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사랑이란 대저 그렇듯 위대한 사랑인 것이다.


나 자신만, 내 식구만, 내 친구만, 내 지방 사람만, 내 나라 사람만 위해 주고 잘 먹고 잘 살려 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께서 당신 일생 동안 계시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내 인류’에게까지 확대되는 사랑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애착하는 사랑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모자란 사람, 불구자, 정신병자를 나와 똑같이 귀중한 인간으로 대우하고 섬기며 나누는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애와 인류애로 나타난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이다. 나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거나, 나를 싫어한다거나, 나를 과소평가한다거나, 나를 업신여기고 무시한다거나, 나를 헐뜯고 비방하고 모함한다거나, 나의 것을 협박이나 사기로 빼앗는다거나, 나를 부당하게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더라도 그 상대가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인 이상 마음으로부터 증오심을 품을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 상대도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고 내 형제자매가 되어야 할 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서로 부축하며 뉘우치고 용서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 같은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만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인류공동체가 하느님의 가족으로 단합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부활 제2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사도 4,32-35)

<신자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시편(117)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제2독서(1요한 5,1-6)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깁니다>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께서십니다. 성령께서는 곧 진리이십니다. 


복음(요한 20,19-31)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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