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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사는 것은 마음 모아 단합해 사는 것
  • 김수복
  • 등록 2018-09-28 17:23:10
  • 수정 2018-09-28 19: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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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민수 11,25-29) 해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귀양살이 이전에 ‘주님의 영’이 나타나는 두 가지 모습이 성경에 나온다. 첫째는 아마도 더 오래 된 형태의 것으로써 특정한 인물들을 세워 그들에게 전사 또는 종교가로서 열정을 불어넣어 주고 능력과 용기와 지혜와 예언 능력을 태워 주는 형태일 것이다. 둘째는 ‘주님의 영’을 특정한 사명과 기능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의 영속하는 선물로서 묘사하는 형태일 것이다.


첫째 형태는 특히 판관기에 많이 나온다(판관 3,10; 6,24; 11,29; 민수 11,25; 1사무 10,5-13; 19,20-24). 오늘 독서도 이 형태에 속한다.


그러나 ‘주님의 영’이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 영속적으로 현존하는 둘째 형태도 있다. 엘리야가 주님의 영을 선물로 받고, 그 영이 엘리사 안에 머물게 된다(2열왕 2,15). 그 주님의 영은 또한 메시아-왕 안에 머물고 그에게 지혜와 총명함과 의견과 강력한 힘을 주고, 주님을 알고 두려워할 줄 알게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언자가 주님의 영을 소지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예언자는 ‘영의 사람’이다(호세 9,7). ‘영’이 시키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은 곧 ‘주님의 영’이 없이 행동하는 것과 같다. ‘주님의 종’도 하느님의 영을 받게 될 것이다(이사 42,1).


모세가 받은 ‘영’도 위에서 말한 둘째 형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모세는 영속적인 임무를 부여받는다. 모세는 계시를 중개해 주는 중개자이므로 ‘주님의 영’이 계속해서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장로 70명은 첫째 형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독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당신의 영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거저 주신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에게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주시려 하신다. 하느님은 인간을 결코 차별대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고 계신다.


시편(18) 해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나이다>


오늘 전례에서 화답송으로 사용하는 구절들은 하느님의 법률을 뜻이 거의 비슷한 개념들로 지적하고 있다. 법률, 증거, 계명, 명령, 주님을 두려워함, 규정, 법령 등이 그 개념들이다.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바르고 순수하고 참되고 마음을 즐겁게 하고 눈을 밝혀 주고 영원히 존속한다.


이 같은 시적인 표현 속에 커다란 자각이 깃들어 있다. 주님의 계명은 인간을 비추어 주지만(12절), 인간은 직접 반역할 수 있고 또는 나약함과 무지 때문에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편 작가는 주님의 계명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하느님께 그러한 잘못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라고 간청한다(13-14절).


제2독서(야고 5,1-6) 해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채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대상인 부자, 인정 없는 부자는 야고보에게는 경멸당하고 단죄 받을 대상이 된다. 아마 야고보가 말하는 부자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 같다.


루카 복음에서도 부자는 저주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루카 6,24-25) 같은 루카복음서 저자는 탐욕부리는 인색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하고 있다(12,15).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18,24이하)


2절 이하에서는 임박한 심판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 마지막 시대에는 재물을 쌓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강조한다(참조. 마태 6,19).


하느님은 당신의 소유요 당신이 선물로 준 모든 재물과 능력을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이 공평하게 골고루 나누어 사용하면서 우정과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모든 인간들끼리 서로 나누는 인간애와 형제애와 거기서 우러나오는 기쁨만이 영속할 가치인 것이며, 부활한 영원한 세상으로 건너갈 가치인 것이다.


복음(마르 9,37-47) 해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38절 이하에서 요한이 예수께, 제자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낼 경우,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명쾌하다. 어떤 사람도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면서 동시에 당신을 저주할 수는 없다고 답변하신다. 


비록 제자단이나 초대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당신께 속한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당신 복음대로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에게 몸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분명히 당신께 속한 사람들이다(그 ‘몸 바침’은 초월적인 가치를 지닌 기적임에 틀림없다).


40절에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을 다시 뭉치게 하고 구원하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당신 복음 그대로 살고 행동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당신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비틀어지게 하고 흐리게 하는 방해물이 있을 경우에는 그 어떠한 것이 되었든 과감히 끊고 청산해야 하며, 자기 몸의 일부일지라도 잘라낼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안일과 체면과 기득권이 문제시되면 그것을 단호히 포기해야 한다.


쓸모없는 재물과 명성과 권력을 훌훌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순수하게 생활에 옮겨야 한다. 복음이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판되거나 오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어긋난 생활로 악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묵상


그리스도께서는 분리되시지 않는다.


인간을 정신적으로 끈질기게 못살도록 괴롭히는 고민거리 한 가지, 성령께서 활동하고 창조하시는 자유를 무겁게 가로막고 짓누르는 장애물 한 가지는 상황과 처지에 따라 인간을 차별해야 할 거짓된 필요성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나타나실 줄을 다 알고 있는 척하는 자만과 독단과 독선이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엄연히 살아가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인간차별과 독선을 당신의 ‘영원한 새로움’을 가로막는 지겨운 걸림돌로 간주하신다. 벌써 초대교회에서부터 그런 문제가 대두되었다. 한 예로써 코린토 교회에서는 신자들끼리 서로 갈라져서 바오로 파, 아폴로 파, 베드로 파라고 하면서 다투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분명 한 분뿐이신데, 당신의 뜻과는 달리 분열되셨다. 인간들이 자기네 가치척도와 판단기준에 따라 그리스도를 분열시켰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은 하느님 자녀들에게 주시는 ‘참된 자유’라는 선물이다. 하느님은 당신 성령의 선물을 주심으로써 당신 뜻과 당신 생각을 알게 하신다. 하느님의 뜻과 생각은 당신이 우리 인간들에게 정을 쏟으시고 인간들끼리 서로 그 정을 나누라는 바로 그것이다. 당신 앞에 단순하고 솔직하게 신뢰하는 자녀들로서 행동하고 인간들끼리도 허심탄회하게 서로 존중하고 친해지라는 바로 그것이다.


그 같은 성령의 친교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어디서 그 성령을 찾아 만나 뵐 수 있는가?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 한가운데 현존해 계심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우리 생명과 인생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3.26)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치욕스런 죽음을 거쳐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고, 자기 무화(無化)를 거쳐 새로운 생명을 인류에게 나누어주시게 되셨음을 겸손하게 믿고 고백할 줄 알게 될 때, 그리고 우리의 실존이 복음의 참된 자유를 향해 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과 만나게 되고 우리의 생애는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서나 성령의 선물로 가득해질 것이다.


성령께서는 분열과 파당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겸손하게 그리고 용기 있게 우리 사이에 그리고 교회 안에서 분열되고 파벌을 이루고 있음을 자백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업신여기고 단죄하고 마음을 합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런가?


자유는 마음 내키는 대로 무엇이나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방종이 결코 아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는 진리와 바른 길을 따라 참된 생명에 도달하라는 자유이다.


자유로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간다는 것, 예수를 따라 예수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곧 마음을 모아 단합하여 살아감을 뜻한다. 그 합심과 단합은 타협주의・기회주의・혼합주의에 의한 적당한 야합이 아니다.


그 단합은 그리스도다운 진정한 인생살이가 무엇인지를 일러 주시는 성령의 목소리에 순응하여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 (마태 6,33)을 충실히 실천하면서 뭉쳐지는 단합이다. 그 단합을 방해하는 인간차별과 독선을 성령께서는 결단코 용납하시지 않을 것이며, 인간들 자의에 따른 그 어떠한 가식적 허세와 이기주의도 결단코 용납하시지 않을 것이다.




연중 제26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민수 11,25-29)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그때에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모세와 말씀하시고, 그에게 있는 영을 조금 덜어 내시어 그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 주셨다. 그 영이 그들에게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그러나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다. 그때에 두 사람이 진영에 남아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런데 명단에 들어 있으면서 천막으로 나가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도 영이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진영에서 예언하였다. 한 소년이 달려와서, “엘닷과 메닷이 진영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고 모세에게 알렸다. 그러자 젊을 때부터 모세의 시종으로 일해 온,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저의 주인이신 모세님,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  


시편(18)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나이다

 

제2독서(야고 5,1-6)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의인을 단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복음(마르 9,37-47)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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