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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사순 제5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8-03-16 15: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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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예레 31,31-34) 해설

<새 계약을 맺고 죄악을 기억하지 않으리라>


이 대목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자기 예언직을 수행하는 제2단계 안에 들어 있는 대목이다 (주전 605-587년). 이 제2단계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유다가 처한 미묘한 정치적인 상황과 깊숙이 연루된다. 느부갓네살이 바빌로니아의 왕이 되고서부터(주전 605년) 유다는(사마리아가 함락되어 이스라엘이 망한 뒤)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자주 받게 된다.


여기서 유다의 지도자들은 바빌로니아를 대적하여 이집트와 동맹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바빌로니아에 종속되고 말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된다. 왕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이집트와 동맹을 맺자는 주장이었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바빌로니아에 종속되고 말자는 주장이었다. 예레미야는 후자의 편을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현실적 이유에서만이 아니라(이집트와 동맹을 맺는다 해도 또 다른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꼴이 된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느님이 유다에 대하여 바라시는 바는 강력하고 독립된 유다 왕국이 아니라, 당신께 충성을 다 바치고 당신의 호소에 다소곳이 응하고(3,22-4,4) 약한 사람들의 권익을 옹호하여 화기애애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백성이라는(참조. 22,13; 23,5-6 등)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다의 지도자들이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예레미야는 얼마 안 있어 유다가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고 백성은 끌려가 귀양살이를 하게 되리라고 예고한다.


예레미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이 새로운 계약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예고한다. 그 새로운 계약으로 하느님은 당신의 법을 그들 마음속에 직접 새겨 주어 당신의 뜻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시리라고 예고한다. 예레미야가 예고하고 약속하는 바는 한마디로 인간의 ‘남보다 더 차지하려는 욕심과 남보다 위에 서고 앞서려는 자기과시욕’을 하느님의 용서하시는 위대한 능력으로 극복하게 되리라는 것이다(34절)


예레미야가 예고한 대로 이제 성령께서 믿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쏟아 부어져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시편(50) 해설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소서

 

새로운 계약에 의하여 하느님이 우리 속에 넣어 주시는 ‘새로운 마음’은 믿는 자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바를 무엇이나 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고 ‘성령의 마음’이다. ‘나’를 포기하고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을 내세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이다. ‘나’는 점점 작아져 없어지고 ‘하느님’이 커지셔야 한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루카 11,13)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그분이 우리 안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인류 안에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제2독서(히브 5,7-9) 해설

<복종하는 것을 배우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편지라기보다 설교에 가까운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을 위하여 쓰였다. 그 히브라인들은 아마 이제까지 자기들이 행하여 온 예절규칙들을 세세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결정적인 사제직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는 레위 지파의 경신례를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음을 역설하려 한다.


첫째 부분에서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위치(1,5-14)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밝히고(2,5-18), 결론으로 그리스도께서 참된 영원한 대사제이심을 밝힌다(2,17).


둘째 부분에서(3,1-5-10),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3,1-6), 우리가 마땅히 ‘믿어야’ 할 분이고, 그 믿음과 확신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분이고(3,7-4,14), 우리들과 똑같은 처지와 조건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우리 인간들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밝힌다(4,15-5,10).


오늘 제2독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들과 맺고 있는 긴밀한 유대와 연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드리셨으며, 복종하셨습니다.”(7-8절) 9절은 둘째 부분의 결론이고, 동시에 셋째 부분을 예고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순종’은 예수님께서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는 행위이며, 우리가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갖추어야 하는 기본자세는 ‘자기 욕심과 자기 과시’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다소곳이 따르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인간이 서로 가진 것과 능력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과 정을 나눔으로써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한 자녀요 형제임을 실증해 보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인간 예수님의 순종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순종이 합해져서 거룩한 미사성제가 바쳐지는 것이다. 



복음(요한 12,20-33) 해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낮 열두 시간 안에 들어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참조. 11,9). 그 낮 동안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간의 사건을 알리는 징조들을 보여 주셨고, 당신 십자가에 의해서 유다인들의 모든 축제가 완성된다고 선언하셨다(1-11장). 마지막 시간은 예수님의 ‘시간’이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12,23)


이 시간이 요한 복음서 12-20장 전체를 채우고 있다.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는 라자로가 살아난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때문임을 신앙으로 깨달았다(12,1-11). 라자로를 살려내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바리사이들은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가고 있소.”(12,19)라고 걱정한다. 하느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를 따라가는 듯싶었다(3,16).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 그리스 사람들이 뵙기를 청한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만나려 하는 사실은 드디어 예수님의 시간이 왔다는 표시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인들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구하기 위해서도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라는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만 당신 구원 사업을 수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교회와 더불어 한 사람 한 사람・모든 민족・모든 백성・모든 공동체・온 인류 안에서 구원 사업을 펼치고 계신다. 교회의 존재이유와 사명이 바로 예수와 더불어 그런 인류 구원 사업을 펼치는 데 있다. 


예수님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는 시간이다(24,33). 그 시간 동안 당신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을 당신께로 끌어들이신다(32절). 마치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25절). 예수를 따른다는 사람의 이승살이 시간도 죽임을 당해가는 시간일 도리밖에 없다. 예수처럼 인류 전체의 진정한 구원(하느님의 똑같은 한 자녀로서 서로 나누고 위해 주는 가족공동체)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놓고 살아가는 죽음의 시간일 도리밖에 없다.


그 죽음의 시간은 인간 예수에게도 지극히 고뇌스런 시간이었다. 우리 일생도 고뇌스런 죽음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28절)라고 기도할 도리밖에 없다.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영광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묵상


결정적인 계약

 

우리 인간들과 하느님 사이에는 끊임없는 교류가 있어 왔다.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을 멀리 떨어져 계신 냉정한 분, 도무지 입을 열지 않고 침묵 속에 휩싸여 계신 분, 인류의 비탄과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귀를 막고 계신 분, 안타깝게 찾아도 찾을 길 없는 분이라고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고 고발을 서슴지 않는다. 한편, 하느님도 하느님대로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말씀을 건네고 부르고 자극하고, 당신이 바로 모든 인간들의 어지신 아버지라고 계시하신다.


인류 역사는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에 의하여 진행되어 간다. 하느님은 계약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시지만, 인간들은 변덕스러워서 그 약속을 위반하곤 한다. 그러면 하느님은 한없는 인내와 자비심을 보이면서 끊임없이 인간들을 다시 부르고 당신과 긴밀한 관계와 각별한 정을 나누도록 거듭 초대하신다.


하느님은 또다시 아브라함을 불러 새로운 땅과 축복을 약속하신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반으로 갈라놓고, 계약을 체결한 양쪽 당사자인 하느님과 아브라함이 갈라진 제물 사이로 지나가면서 “만일 약속을 어기면 이 제물처럼 당할 것이다.”고 맹세하고, 제물의 피를 뿌린 다음, 그 제물을 먹음으로써 계약이 정식으로 체결되었다.


하느님은 계속해서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를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신다. 시나이 산 밑에서 계약문이 낭독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기로 굳게 약속한다. 그러자 모세는 제물의 피를 백성 위에 뿌리면서 “이것은 주께서 우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최후만찬과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에서는 희생당하는 어린 양이 예수 자신이시다. 예수 자신의 피와 살이 제물이 되고, 인간들은 그 제물을 음복함으로써(먹고 마심으로써)만이 하느님과 친교를 맺게 된다. 이것이 거룩한 미사성제이며, 하느님이 인간들과 맺어 주시는 마지막 새롭고 영원한 결정적인 계약이다.


그렇다면 미사성제로 재현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에서 맺어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하느님의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낭독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 때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35)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이시다. 인간들 가운데 한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시다. 기왕 하느님이 인간으로 되어 오셨으니 하느님답게 가장 모범적인 인간으로 일생을 살고 마치신 가장 완전하게 인간다운 인간이시다. 인간들을(인류를)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고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하느님이시다. 벗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시던 그분이 당신 생명을 바치고 나누어 주셨다.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법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사랑하여 당신 살과 피와 온 마음과 정과 생명을 나누어 주고 바치셨듯이, 우리도 인류를 사랑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과 살과 피와 목숨을 나누어 주고 바치라.”는 새 계명이다.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지키면 하느님이 인류공동체의 어지신 아버지가 되어 주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받을 상속을 함께 받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내용이다.


내 것을 내어 주는 것, 나 자신과 내 노동의 땀과 피를 내어 주고 바치는 것, 내 애정과 내 마음과 내 정과 내 몸과 내 목숨까지라도 내어 주고 바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출발점으로서는, 내가 가진 재물과 능력을 나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을 위해 발휘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세계문제해결과 인류화합의 기본 전제로서 부유한 나라 국민들이 제3, 4세계 사람들과 공존공영을 위해 자본과 기술을 선뜻 내어놓고 군국주의와 경제적 침략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와 미사성제에 합당하게 참여하는 길이다. 인류공동체가 하느님을 아버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상속과 기쁨과 행복을 차지하는 길이다. 새롭게 영원한 계약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사순 제5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예레 31,31-34) 

<새 계약을 맺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시편(50)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소서

  

제2독서(히브 5,7-9)

<복종하는 것을 배우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요한 12,20-33)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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