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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대림 제3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12-15 11: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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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이사 61,1-2ㄱ. 10-11) 해설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고 정의로운 시대를 열어놓으러 오신다>


오늘 독서 첫째 부분에서는 하느님이 파견하신 신비로운 인물이 띤 사명에 대하여 말한다. 둘째 부분에는 기쁨과 감사하는 정에 넘치는 찬미가가 들어 있다. 


‘하느님이 파견하신 분’(1-2ㄱ절). 신비스런 인물이 하느님께로부터 사명을 위탁받고 파견된다. 그 사명은 예언자로서 지닌 사명이고,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목적을 띤 사명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천대받는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에 관한 사명이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참지 못하고 개입하여 그들을 해방하실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그 신비스런 인물은 ‘주님의 종’-‘메시아’시다(이사 42,1.7).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그 같은 사명을 철저하게 수행하셨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 당신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사회 속에 당신의 정의를 세워 억눌리고 천대받고 빼앗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실 것이다.


‘기쁨과 감사하는 정’(10-11절). 구원을 받은 새로운 공동체는 깊은 데서 샘물처럼 우러나오는 기쁨을 노래한다. 그 기쁨은 마치 혼인잔치의 기쁨과 같다(성경이 줄곧 사용하는 비유).


마지막 구절은 장차 정의가 이루어져 가난한 사람들이 해방되고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표현한다. 하느님의 정의가 넘치는 새로운 윤리질서가 인류공동체 안에 확립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루카 (1,46-54)

<내 영혼이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나이다>


마리아가 부른 찬미가는 예수를 통하여 해방을 가져다주러 오시는 하느님을 인정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찬미가다. 하느님은 당신 약속을 지켜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고, 불의한 사회 질서를 뒤집어엎음으로써 역사 속에 변혁을 이룩하신다. 인정 없는 부자들은 빈손이 되고, 불의한 권력자들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고, 역사가 새로운 방향을 취하게 된다.


제2독서(1테살 5,16-24) 해설

<지금도 오고 계시고, 장차 어느 날 영광스런 당신 참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상면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자>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를 권고하는 말로 끝맺는다(5,12-22).


‘마지막 권고’(16-22절). 사도는 신자들에게 기뻐하면서 살도록 권고한다(참조. 로마 14,17. 2코린 13,11). 끊임없이 기도하고 감사드리면서 살도록 권고한다(로마 12,12. 콜로 4,2). 그리고 성령께서 내리시는 특은(은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한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멸시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천대받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애착이 가고 그들에게 자신을 바치려는 염원과 열정이 마음속에 일어나면, 그것이 다름 아닌 성령의 불이요 성령의 감동이요 성령의 특별한 은총이다.


그 성령의 충동을 조심스럽게 충실히 따를 일이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성령의 충동에 따라 몸 바칠 일이다. 착한 일을 행하고 악한 일을 피하는 분별력을 발휘할 일이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전하고 흠 없게 우리를 지켜주시도록 기도한다’(23-24절). 우리 하느님은 평화를 바라고 평화를 이룩하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우리 인간들이 서로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싸우지 않기를 바라신다. 서로 좋아하고 평화스럽게 지내기를 소원하신다. 그것만이 당신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우리 전 존재(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다 바쳐 아버지 하느님의 소망을 채워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매일매일 순간순간 죽기를 각오하고 죽을 때까지 하느님의 소망을 채워드리는 것이 예수를 따라 예수처럼 살아간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인생목표가 되어야 한다.


복음(요한 1,6-8.19-28) 해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을 알아 뵙고 애정을 다 바쳐 받아들이라고 초대한다>


‘빛을 증거하는 사람’(6-8절). 오늘 복음 첫 구절들은 네 번째 복음(요한 복음서)의 서론에 속한다. 세례자 요한이 받은 사명은 빛을 증거하는 일이었다. 요한은 말씀이 세상 한 가운데에 현존하여 계심을 밝힌다(9절). ‘세상을 비추는 빛’이신 분이 오시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밝힌다(요한 8,12. 9,5). 하느님의 말씀(자기표현)인 분,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 외아들인 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와 계신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인간이 본받고 따라야 할 가장 모범적인 인간이시다. 인류를 앞장서서 나아갈 길을 비추시는 빛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씨를 기르고, 예수처럼 남들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놓고 헌신하는 생활이 그 빛을 받아들이는 생활이다.


‘목소리’(19-24절). 유다인들을 지도하던 바리사이들이 요한에게 도대체 당신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도대체 어떤 자격으로 세례를 베푸느냐고 묻는다. 요한은 자기가 되살아난 엘리야도 아니요(말라 3,23-24. 집회 48,10-11), 모세가 예고한 예언자도 아니요(신명 18,18. 1마카 9,27), 메시아 자신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는 단순히 하나의 ‘목소리’이기만을 바란다. 온 백성의 관심이 예수께 쏠리기만을 바란다.


우리가 자기를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자기 명성 얻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한, 그리스도는 조금도 전달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신다”는 말씀처럼 나를 내세우지 않고 그리스도를 내세우며, 내 뜻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지를 따르며, 내 멋대로 인생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인생목표를 세우며, 나를 포함한 다른 모든 인간을(특히 못생기고 못난 사람을 더욱) 사랑해야 비로소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 전달된다.


묵상


해방을 알리는 ‘기쁜 소식’


대림시기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기쁨에 들떠 있는 시기이다. 특히 대림 제3주일은 그 복음이 말하듯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주님을 두고서 기쁨에 넘친다.


이사야서에 의한 오늘 첫째 독서는 우리에게 주께서 오신다고 선포한다. 하느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성령으로 가득 채워져 오신다고 선포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마음이 서글픈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하러 오신다고 선포한다. 모든 사람에게 해방과 위로를 가져다주러 오신다고 선포한다. 그렇듯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드디어 다가왔다고 선포한다. 하느님이 내리시는 구원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다가왔다고 선포한다. 


▲ ⓒ 문미정


10절과 11절에서는 기뻐 날뛰는 탄성과 함성을 발한다. 예루살렘이 마치 곱게 단장한 신부처럼 지난 날 겪었던 슬픔과 고통의 옷을 벗어버리고 기쁨과 환희의 옷을 입는다. 주 하느님이 그를 신부로 받아들여 구원의 옷을 입히고, 정의의 외투를 둘러주고, 그의 정원에 꽃이 피게 하고, 땅을 적시어 새싹이 돋아나게 하신다.


이사야 예언자가 옛적에 귀양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바와 똑같은 내용을 가진 하느님의 목소리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들려온다. 현 시점에 살고 있는 우리라고 해서 옛적 귀양살이하던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지겹고 힘겨운 노예살이에 묶여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죄악과 악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미 새롭고 영원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죄악과 악마의 세력은 먼저 나 자신 깊숙한 내부에 도사린 인간차별, 인종차별 등과 같은 온갖 차별의식과 충동이다. 지역이나 국가의 지도층과 국민의식 속에 고질적으로 새겨진 폐쇄적 민족우월주의·국수주의·경제적 침략주의·군국주의 등이다. 그런 집요한 악마의 세력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수난하시는 능력에 힘입어서다. 드디어 인류에게 해방과 구원에 이르는 길이 트인 것이다.


대림 시기는 기쁨과 희망에 찬 시기이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에서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집시다’(5,8) 라고 격려한다. 늘 기뻐하라고 권고한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항상 감사를 드리라고 말한다.


비관적으로만 보일지 모를 오늘의 세계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은 끊임없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고 계신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으로부터 악마의 세력을 추방하고 정의와 사랑과 일치의 정신 곧 성령의 마음씨를 심어주려 하신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 걸음씩 인류를 하나 되게 하여 구원하고 계신다. 사실 바닥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에서 힘차게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운동은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성령의 인류구원사업으로 보인다.


우리가 한사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과 자기를 뽐내려는 욕망, 즉 악마의 세력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을 동안에는 성령께서도 다른 데로 발걸음을 돌리실 도리밖에 없으시다. 그래서 오늘에 와서는 성령께서 정착하여 활동을 펼치시는 곳이 가난한 대륙·나라·지역으로 보인다. 물론 선진국과 중진국 밑바닥과 후미진 곳에서도 성령께서 머물러 계시면서 활동하신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통하여 힘차게 당신 구원사업을 펼치신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늘 탄원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기쁨에 넘친 생활을 해야 한다. 인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다다를 때까지 힘차게 발전하고 진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 제3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이사 61,1-2ㄱ.10-11)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루카(1,46)

내 영혼이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나이다.


제2독서(1테살 5,16-24)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키시기를 빕니다>


형제 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요한 1,6-8.19-28)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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