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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6-16 17: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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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신명 8,2-3.14ㄴ-16) 해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자신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성경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의 체험을 되새김으로써 자기네 본모습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잊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과거에 체험했던 하느님의 사랑은, 비록 지금은 시련과 수난을 당할지라도,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준다.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증표들 가운데서 오늘의 독서는 광야의 시절에 내렸던 만나의 선물을 강조한다. 그 만나를 영적 차원의 음식으로 알아듣게 되었다. 만나는 단순히 육체의 건강만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음식이었다. 항시 먹는 일상 음식 외에도 하느님께서 당신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살리시는 다른 음식이 있다. 그 다른 음식이란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능력과 좋은 자질과 자연의 혜택과 재산을 마치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인 양 자랑하고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불의로 인류공동체가 합심하여 한 몸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하느님의 자녀요 한 형제자매)끼리 서로 위해주는 나눔의 정의(하느님의 말씀)로써만 인류의 공동선과 평화를 기약할 수가 있다.


시편 (147) 해설

<예루살렘아, 주님을 기려라>


이 시편은 귀양살이 이후에 쓰여 졌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재건을 강조한 것과 비천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예루살렘 안에는 비교적 안정과 평화가 있고 풍요롭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에 감사하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한다.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못나 보이고 천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그 마음씨를 더 귀중히 여기시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그들의 생활에 동참하여 인간다운 정을 느낄 때 안정과 평화와 인류 전체의 풍요가 가능하다.


제2독서(1코린 10,16-17) 해설

<인류가 똑같은 빵을 먹는다면, 이미 인류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


모르는 어떤 사람과 한 식탁에 앉아 밥을 함께 먹으면, 그것은 일치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어떤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면, 그것은 우정의 표시이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공동생활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인류의 일치와 우정과 공동생활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뜻한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능력, 자질, 자원, 재산은 인류가족이 한 식탁에서 나누어 먹어야 할 귀중한 음식인 것이다. 그 음식의 나눔으로 인류가 합심하여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되고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성찬례(성체성사)는 인류의 화해와 합심을 위하여 몸 바치라는 파견이기도 하다.


▲ ⓒ 최진


복음(요한 6,51-58) 해설

<성찬례(성체성사)에서 인류에게 하늘에서 ‘살아 있는 빵’이 내려온다>


카파르나움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오늘 인류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변이 된다.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성찬례를 계속 거행하면서 차츰 그 깊은 뜻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파스카(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거느리시고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심)의 증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인류의 참된 일치를 꾀한다.


성찬은 거룩한 잔치이다. 그 거룩한 잔칫상의 음식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인류를 위해 생명을 바침으로써 인류에게 부활의 생명을 가져다주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인류는 인류의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인류 안에 들어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 각 사람도 인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인류의 화해와 합심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야만(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해야만) 부활하여 하늘의 잔칫상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생명과 온갖 풍요를 누리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기쁨과 행복을 결정적으로 영원히 누릴 것이다.


묵상


성찬의 신비


창세기에 멜키체덱이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봉헌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교부들은 멜키체덱이 제사의 재료로 사용한 빵과 포도주를 성찬례를 예고해 주는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히브리서에 의하면(7,1-13), 멜키체덱이 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인물로 나와 있다. 왕이요 사제인 멜키체덱이 바친 제사가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사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사도 당신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사이다.


따라서 멜키체덱의 봉헌은 그리스도의 제사를 미리 보여 주는 아벨의 제사 및 아브라함의 제사와 견줄 수 있는 제사이다. 미사경본에서도 아벨의 제사와 멜키체덱의 제사를 함께 기억한다.


구약의 제사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은 흔히 희생되거나 태워졌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셨고”(로마 8,32),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요한 3,16)


계약의 피


탈출 24는 히브 9 및 마르 14와 연관되어 있는 대목으로써 성찬의 또 다른 측면을 비추어주고 있다. 그 대목에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의 예식이 묘사되어 있다. 그 예식은 백성이 주님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약속과 피의 예절로 되어 있다. 모세가 세운 제단은 계약의 상대방인 하느님을 가리켰다. 먼저 제물의 피를 제단 위에 붓고, 그 다음에 백성 위에 뿌렸다. 이렇게 하여 똑같은 피가 계약의 쌍방을 얽어매었다. “이는 계약의 피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당신의 피붙이처럼 마음을 쏟으시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을 거행하면서 모세의 예절 형식을 따라서 “이는 새로운 계약을 맺는 내 피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새로운 계약은 하느님과 모든 사람(인류 전체)이 맺는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약이다. 이 새로운 계약에서 인류는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겠다고 맹세한다. 맹세한 대로 인류가 지상의 모든 것을 나누면서 한마음 한뜻이 될 때 하느님께서는 인류 가족을 지상낙원에서 사는 가족으로 변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지상낙원에서 사는 그 가족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 초월적인 본모습이 드러나고, 영원히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빵


생명을 주는 빵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다.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참 생명인 하느님 자녀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이 참 생명의 유대가 아니면 증오와 분열과 전쟁을 피하여 인류를 화해하게 하고 뭉치게 할 수 있는 길이 결코 없다. 사람이면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스도 자신이신 참 생명(하느님 자녀로서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귀중한 사람이라는 복음이 아니고서는 인류가 한 가족을 이룰 수 없다. 그 복음에 따르지 않고서 어떻게 내 것과 내 자신을 남에게 바칠 수 있겠는가? 자신을 바쳐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그 복음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안에 머물겠노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서로 형제가 된 사람은 모두 그 생명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도처럼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몸 바쳐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 ⓒ 문미정


성찬과 인류의 일치


마태오 복음서에는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라는 말씀이 나오고,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성찬례의 근본 요소와 목적이 인류의 화해와 합심에 있음을 나타낸다.


사람은 개별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류공동체 안에서 인류공동체로서 구원받는다. 인류를 사랑하고(사람을 사람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사랑하고) 인류의 품에 들어 고락을 함께 하고 잘못을 함께 견디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으면 한시바삐 바른 길로 돌아서고,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생긴 고통을 견뎌내고 기다리는 ‘아파하는 사랑’이 예수님다운 사랑이고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부축하며 나아갈 수 있는 일치의 길이다.


하느님께서 인류 공동으로 개발하여 함께 누리라고 주신 능력, 자질, 자원 등 지상의 모든 선물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차지하고 빼앗길까 봐 방어하면서 혼자 누리는 소수 사람들의 불의(不義)의 결과로 인류 대부분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럴지라도, 사람에게는 어디까지나 선택과 결단의 자유가 있는 만큼, 참을성 많은 인류 대부분은 자기네 수난을, 소수의 불의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여 나눔의 기쁨을 누리게 하려는 고통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하여 기필코 인류가족의 완전한 일치를 기약하고 투쟁하는 고뇌와 고통으로 삼아야 한다.


화해와 일치의 제사인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는 오늘도 인류의 발걸음 안에서 장엄하게 바쳐지고 있으며, 그 효과는 불의할 때의 나 같은 사람들의 돌아섬(회개, 개심)으로 나타나고 급기야는 인류 공동체의 일치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독서·복음



제1독서(신명 8,2-3.14ㄴ-16)

<너와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너희 마음이 교만해져,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그것은 너희를 낮추고 시험하셔서 뒷날에 너희가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시편(147)

예루살렘아, 주님을 기려라


제2독서(1코린 10,16-17)

<빵도 하나 몸도 하나이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복음(요한 6,51-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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