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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이야기 2 (박현도)
  • 박현도
  • 등록 2015-05-25 12:04:02
  • 수정 2015-05-29 12: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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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달리 이슬람(Islām)교는 스스로 자신의 신앙의 이름을 직접 지어 부른 종교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은 1세기에 시리아 지방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oi)이라고 부른 데에서 연유한다.


반면 이슬람은 유일신 신앙의 이름으로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Qurʾān)에 등장한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꾸란에 8번 나오는데, 완벽한 유일신 신앙과 신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


이슬람은 “복종하다, 순종하다”를 뜻하는 아랍어 동사 아슬라마(aslama)에서 파생된 동명사로 “복종함, 순종함”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민주주의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복종, 순종이라는 말은 어째 어감이 이상하다.


하기는 싫은데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그런데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런 느낌이 없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한다는 의미를 지닌 ‘헌신’이라는 말이 더 낫다. 실제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헌신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헌신하는가? ‘신의 뜻’에 헌신한다. 신을 이슬람교에서는 아랍어로 알라(Allah)라고 한다. 아랍어 정관사 ‘알(al)’과 신이라는 뜻을 지닌 ‘일라(ilah)’의 압축형이라고 본다. 즉, ‘알일라(al-ilah)’가 ‘알라(Allah)’로 되었다는 말이다.


아람어의 시리아 방언인 시리아어를 쓰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알라하(Alāhā)로 불렀는데, 일부 학자들은 알라하에서 알라가 파생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슬람 이전부터 알라라는 용어가 쓰였기에 시리아어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알라는 창조주 유일신이다. 우리나라 이슬람교 신자들은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한다. 천주교처럼 하느님이라고 해도 되지만, 유일신성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개신교처럼 하나님이라고 한다. 물론 천주교,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과 신학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신이자 인간인 그리스도교의 예수를 이슬람에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알라, 즉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삶이 이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사는 이슬람교인을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아랍어에는 남성과 여성이 있어서, 남성은 무슬림, 여성은 무슬리마(Muslimah)라고 한다.


지금부터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이슬람교 신자라는 말 대신 무슬림이라고 부르겠다. 편의상 남성형을 대표명사로 쓰겠다. 그렇다고 결코 여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란다.


무슬림이 되는 것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교리교육을 받아야 세례를 주는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대단히 쉽다. 무슬림이 되겠다는 의향을 지닌 채 다음 두 마디의 신앙증언을 하면 된다.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Muhammad)는 알라의 사도다.”


“알라 외에 신은 없다.”라는 신앙증언은 유다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 같은 유일신론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걸리는 말이다. 이슬람에서 가장 큰 죄는 바로 유일신 알라에게 무엇인가를 갖다 붙이거나 연합시켜 알라의 유일신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를 아랍어로 시르크(shirk)라고 한다.


그래서 불신자를 아랍어로는 알라에게 파트너를 갖다 붙이는 자(무슈리크 Mushrik)라고 한다. 또한 알라의 자비에 감사하지 않는 자 역시 불신자다(카피르 Kāfir). 반면 신의 계시를 인정하고 믿음을 가진 자(무으민 Muʾmin), 신께 복종하는 자(무슬림 Muslim)가 바로 신자다.


유일신 알라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이슬람에서는 이브라힘 Ibrāhīm)을 위시한 예언자들에게 믿는 이의 구원을 약속하시고, 최후의 심판을 내리시며, 천당과 지옥의 내세를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유다교가 전해준 유일신관을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인성과 더불어 신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이슬람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을 인정한다. 그래서 이슬람을 처음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아리우스 이단이 이슬람교로가 예수에 대해 가르쳤다고 생각하였다. 유다교 역시 예수의 신성은 부정한다.


무슬림이 유다인, 그리스도인들과 분명히 차별되는 것은 바로 다음 구절,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신앙증언이다. 유다-그리스도교 전통과 다른 이슬람 고유의 정체성이 바로 알라의 사도 무함마드에 있다. 사도는 아랍어로 라술(rasūl)이라고 한다.


예언자는 알라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고, 사도는 예언자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다. 특정 공동체에 보낸 예언자가 사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알라가 유다인들에게는 모세(아랍어로 무사),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아랍어로 이사), 무슬림에게는 무함마드를 사도로 각각 보냈다.


모든 사도나 예언자는 인간일 뿐이다. 이슬람은 이들 존재에게 그 어떠한 신성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의 신성은 이슬람에서 설 땅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 또한 통할 수 없다. 삼위일체는 더더욱 가능하지 않다. 이는 다름 아닌 바로 신의 유일신성을 훼손하는 불신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단지 존경 받는 예언자, 사도일 뿐이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원죄를 인정하기에 구조적으로 인간을 원죄에서 구해내 줄 메시아를 필요로 하는데, 예수가 바로 그 대망의 메시아다. 그러나 이슬람은 아담과 그의 아내가 낙원에서 죄를 짓기는 했으나 자비로운 알라가 용서하였기에 후손들에게 원죄를 남기지 않았다.


원죄가 없기에 원죄를 씻어 줄 메시아도 필요 없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신적인 메시아 예수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알라의 사도 무함마드 역시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로 이어진 예언자 계보를 완성하는 최후의 예언자다. 집짓기에 비유하자면, 집을 완성할 때 마지막으로 놓는 벽돌과 같은 존재이다. 더 나아가 경전 꾸란은 예수가 자신 다음에 아흐마드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의 아들들이여, 진실로 나는 너희에게 보내어진 알라의 사도다. 나는 먼저 내려온 율법을 확증하고, 또 내 뒤에 아흐마드(Ahmad)란 이름의 사도가 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명백한 표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은 틀림없이 마법이다’이라고 말하였다.” (61:6).


아흐마드(Ahmad)는 무함마드(Muhammad)와 같은 어근 HMD에서 나온 명사로 이슬람 전통에서는 아흐마드가 바로 무함마드라고 믿는다. 예수가 자신의 뒤를 이을 무함마드를 예언하였고, 이것이 성취되었다는 말이다.


신약의 요한서에서는 예수는 하느님이 보내줄 협조자(그리이스어로 Parakletos, 라틴어 Consolator, 영어 Paraclete)에 대해 말한다. 이슬람은 요한서의 협조자를 바로 무함마드라고 보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인류의 예언자 전통을 마감하는 최후의 계시를 알라로부터 받는다. 무슬림들에게 절대적인 이 계시가 적힌 책이 바로 꾸란이다. 천상에는 알라의 계시가 적힌 책이 있다. 이를 모든 책의 어머니, 즉 움물키탑(Umm al-Kitāb, 모서 母書)라고 부른다. 이를 그대로 받은 것이 꾸란이라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이전에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계시가 내려졌으나,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원래 계시를 고쳐 왜곡하였고, 그 결과 유다-그리스도인의 성서와 꾸란이 내용상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신구약 성서를 인정하면서도 꾸란이 가장 완성된 계시라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원본을 다운로드한 후 파일을 열어 고친 유다-그리스도인들과 달리 무슬림은 계시 파일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지만(예수), 이슬람에서는 신의 말씀이 책이 되었다(꾸란). 그리스도교의 예수와 같은 존재가 이슬람에서는 꾸란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신성성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극대화된다. 어떠한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순결한 도구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다.


동일한 표현을 이슬람에서도 볼 수 있다. 문맹(文盲) 무함마드다. 이슬람 사료에서 무함마드가 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만, 이슬람 전통에서 무함마드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다. 알라의 계시가 글을 모르는 무함마드라는 깨끗한 도구를 통해 인위적 조작 없이 그대로 전해졌음을 의미한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그대로 전해주는 전화기와 같은 존재다.

지금까지 이슬람의 신앙고백을 통해 간략하게 피상적으로나마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조적으로 살펴보았다. 아브라함을 신앙의 선조로 하는 이 두 종교는 유다교 유일신 신앙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위시한 모든 예언자에 대한 존경, 종말과 최후의 심판을 향해 가는 직선적 세계관, 권선징악의 내세관을 한 점 어긋남 없이 공유한다.


무슬림의 첫 번째 신앙증언인 신의 유일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예수의 신성은 제외하고 말이다. 두 번째 신앙증언에서 우리는 이슬람의 고유성을 본다. 첫 번째 증언이 유일신 신앙의 보편성에 대한 고백이라면, 두 번째 증언은 이슬람의 고유성에 대한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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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3:85, 5:3, 6:125, 9:74, 39:22, 49:17, 61:7.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는 원래 장절 표시가 없었다가 근대에 들어 무슬림과 비무슬림 학자들이 따로 만들었다. 여기에서는 무슬림의 카이로판본 장절 표시를 따른다.


요한 14:16,14:26,15:26,16:7, 요한1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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