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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부활 제3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4-28 19: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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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사도 2,14.22-28) 해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니셨다>


- 베드로의 설교. 오늘 제1독서는 오순절(성신강림절)에 행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뽑은 내용이다.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행한 설교를 말마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 초대 전승과 루카 자신이 원래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유다인들에게 행하는 설교의 표본으로 삼았다. 팔레스티나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설파하는 설교자들에게 증언하는 데 사용할 완전한 표본과 깊이 묵상해야 할 생각을 제공하려 했다.


- 그리스도의 부활과 사명. 설교를 유다인에게 했기 때문에, 그리고 유다인은 구약성경을 꿰고 있었기 때문에, 논증이 광범위하고 철저해야 했다. 그 논증으로 특히 메시아와 다윗에 관한 구절들을 인용했다. 초대 설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메시아의 대관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명이 완수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가 힘차게 펼쳐져야 한다고 말한다. 초대 설교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다만 구약성경을 인용함으로써만 논증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베드로는 사도들의 증언에 기초를 두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사도 2,32).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왕권(王權)을 행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령을 보내고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차지하실 빈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 뵙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과 생활실천을 바꾸어야 한다.


시편 (15) 해설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합니다> 


이 시편은 하느님의 보호를 누리며 하느님께 자기 장래를 맡기는 행복하고 올바른 사람의 노래요 기도이다.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그의 신뢰는 죽음까지도 뛰어넘는다(10절).


오늘 제1독서로 읽은 사도행전(사도 2,25-28)에 이 시편에 대한 정확한 메시아적 해석이 나온다. 특히 메시아 생애의 특이한 사건 즉 부활에 대한 예고가 이 시편에 나온다.


제2독서(1베드 1,17-21) 해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간다>

 

자유란 우리 시대에 잘 알려진 용어요, 절실한 요청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얻어주시되, 금·은 같은 귀금속이나 썩어 없어질 무엇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피와 당신의 생명을 바쳐 얻어 주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그 생명은 썩지 않는 생명이므로 세상에서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이 생명은 믿는 모든 사람의 선택과 결단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모든 사람과 온 인류를 위해 죽고 생명까지 바쳐 구원하기 위한 생명이다.


복음(루카 24,13-35) 해설

<빵을 떼어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다. 그 제자들은 아둔했다. 제자들은 길을 가면서 실의에 빠져 자기네가 기대하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스스로 묻기고 하고 답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기네가 희망을 걸고 있던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어갔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참혹한 죽음은 그들에게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오고 있었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위험을 각오해야 하며 수난하는 종의 고통스런 운명과 체포와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이미 설명하신 바 있다. 메시아의 영광은 수난과 죽음을 거쳐서만 나타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그런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참조. 루카 9,44-45).


어떤 성경주석가들에 의하면, 예수님의 그 말씀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기억하여 빵을 나누기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빵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깨닫고, 예언자들 특히 메시아가 수난의 운명을 겪어야 했음을 알아듣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하느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자기네 증언의 혁명적 내용을 입증하였다. 구약성경은 그들에게 무너질 수 없는 힘과 의미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사람과 맺는 형제적 친교(親交)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묵상

 

불신과 믿음


불신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증언이나 표시를 깨닫지 못함을 말한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맺으시려는 관계를 거절함을 뜻한다. 이 거절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불경스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다(시편 14,1).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역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계신다는 말을 조롱 섞인 말투로 비웃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사랑을 믿지 못하고 실망한다.


어떤 경우에는 불신이 믿음과 뒤섞여 있을 때도 있다. 믿음과 불신의 교차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각 사람의 마음 속에서도 발생 한다’ (참조. 마르 9,24).


파스카 신비 앞에서 느끼는 불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에 관해서 불신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종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이사 53,1. 참조. 요한 12,38; 로마 10,16). 하느님 아들의 육화(사람이 되심)와 그 분의 구원 업적은 거절당해 왔다(마태 11,20-24; 23,37-38 등). 더구나 제자들 가운데서도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제자들은 ‘믿음이 적은 자들’로 제시되고 있다. 폭풍이 일어날 때(마태 8,26), 파도와 풍랑이 칠 때(14,31), 방이 모자랄 때(16,8)… 그들은 믿음이 적었다.


불신은 사람이 십자가를 영광으로 가는 생명의 길로 여기시는 하느님의 지혜 앞에 설 때 그 극에 달한다(참조. 1코린 1,21-24).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통스런 운명을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더 이상 스승을 따르고 싶은 기력을 잃고 있었다(마태 16,23). 베드로는 그 수난의 시간이 닥치자 예수님께서 예고하신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한다 (마태 26,31.35.69-75).


이렇게 볼 때, 파스카(수난과 십자가를 거쳐 부활에 다다름)의 신비 앞에서 사람이 저절로 취하게 되는 반응은 몰이해와 불신이다. 이것은 그 신비가 믿을 수 없다기보다, 불신이 사람의 마음 속에 마치 본능처럼 뿌리내리고 있다는 말이다(참조. 마태 26,8. 28,17).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말과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들은 믿으려들지 않았다(마르 16,11.13.14).


엠마오로 향해 가던 두 제자는 지혜가 없고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표본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스승을 보고 스승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실의와 비관에 빠져 있었다. 실망이 희망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불신을 극복하기


오직 그리스도의 개입과 그 분의 성령의 활동만이 사람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고 소경됨을 없애주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그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고 당신 사랑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 계획은 하느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셨고, 예수님께서 실천에 옮기신 계획이었다.


그 같은 계획을 깨닫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더불어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다(요한 15,4-10). 그분과 맺는 끊임없는 친밀한 관계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분간하고 체험하게 해주고, ‘세상의 빛’으로 나아가게 해주며, 우리 잘못과 죄악으로 생겨난 장애를 극복하게 해준다.


마침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시자, 그 친숙한 행위를 보고 그들은 눈을 번쩍 떠 그 분을 알아보았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고 재화와 능력을 나눌 때, 다시 말하면, 나누기 위하여 수난과 십자가를 짊어져야만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인류는 평화와 부활을 누릴 수 있다.





부활 제3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사도 2,14.22-28)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니셨다>


그때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시편(15)

주님께서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나이다


제2독서(1베드 1,17-21)

<흠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구원되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살이를 하는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복음(루카 24,13-35)

<빵을 떼어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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