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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26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9-24 08: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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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아모 6,1ㄱ.4-7)

<멋대로 살며 노래하다가 이제는 귀양가리라>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으뜸가는 나라의 귀족들! 그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이 의지하러 가는구나.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 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시편(145)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제2독서(1티모 6,11-16)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명을 지키라>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루카 16,19-31)

<너는 행복하고 라자로는 불행하더니, 이제는 라자로가 위로를 받고 너는 고생하는구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연중 제26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아모 6,1ㄱ.4-7) 해설

<향락에 빠진 지도자들은 망하고야 말 것이다>


예언자가 받은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 선 자기 본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이다.


아모스는 심각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스라엘은 분명 망할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위기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번영과 안정을 누리면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단죄한다. 상아 침상에 뒹굴고, 양 새끼와 송아지를 잡아 먹고,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술을 대접으로 퍼마시고, 제 멋에 겨워 흥얼거리고, 공평을 뒤엎어 독약을 만들고, 소태처럼 쓴 열매를 맺게 하는 지도자들을 단죄한다. 


백성의 지도층 인사들이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고 힘없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항의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막을 때, 그 나라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이 분명하다. 다름 아닌 독재와 부정부패와 언론탄압이야말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망하게 한다.


시편(146) 해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 편히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위대하신 창조능력은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하느님께서는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줄 분이며,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푸짐한 양식을 줄 분이며, 박해받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 줄 분이며, 고아와 과부와 버려진 인생들을 보호해 줄 분이시다. 한 맺힌 그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 강력한 팔로 그들을 구출하고 풀어 주실 것이다.


제2독서(1티모 6,11-16) 해설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목숨 걸고 헌신하는 사람이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기심의 뿌리인 온갖 종류의 탐욕에서 우러난 그릇된 주장들을 엄격하게 비판한 다음, 바오로는 이제 티모테오에게 진정한 사도,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되라고 간곡히 당부한다. ‘하느님의 사람’이란 표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도록 하느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성경 표현이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그 사명이야말로 참된 복음전달자와 거짓 복음전달자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게 목숨 바쳐 헌신하려는 열망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야 복음전달자가 될 수 있다. 자기안일과 자기영예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참된 복음전달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진정한 복음이 전달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고 선포하는 일은 또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목숨을 내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처럼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헌신과 순교의 자세로 일관된 생애를 살아야만 그리스도의 영광과 부활에도 참여할 수 있다.


복음(루카 16,19-31) 해설

<사람의 지상 생애는 영원한 내세로 이어진다>


마지막 시간이 사정없이 다가온다는 복음 전언은 자주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대조로 묘사된다. 이는 이미 유다인들의 종말론이 지닌 특색이기도 했다.


이 비유는 부자들을 경고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어떻든 현세의 삶이 내세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맺었느냐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라자로라는 이름까지도 ‘하느님께서 지지하시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자로는 죽은 다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라자로가 내세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한 부자는 죽어서 죽음의 불구덩이에 빠지게 되었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 호사스런 생활을 한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다. 더 소유하고 더 향락하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삼은 사람들과 나라들의 운명이 극적으로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은 라자로는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라자로 같은 가난하고 천대받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구출하는 분이시다. 더 소유하고 더 누리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삼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앞에 겸허하게 무가치하고 무력하고 무소유하고 무자격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더욱 정답고 친해지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구출하여 영원한 복락을 안겨줄 분이 하느님이시다.


묵상


부자들의 잔칫상과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 한 가지는 죽은 다음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사실이다.


가치가 뒤집힌다. 진정한 가치가 제 본모습을 똑똑히 드러낸다. 지상에서 많이 차지하고 떵떵거리고 놀아나는 것이 정말 부럽고 좋을 성 부르지만, 그 추하고 썩은 몰골이 우선은 가려지고 덮여 있을지라도, 죽은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회한이 지겨운 영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승살이 동안 불행이란 불행은 다 겪고 수모와 억눌림을 당할 대로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고 따뜻한 인간사회를 이루기 위해 억울한 가난과 병고와 죽음을 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련하고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죽은 다음에는 그 생애의 초자연적 가치가 놀라운 빛을 띠고 벅차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오늘 하루 이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 수 있다. 오늘과 이 순간이 바로 나의 영원을 결정하고 있다는 엄숙한 진리 앞에 심각하고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과 이 순간이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불행, 영원한 승리와 영원한 패배가 결정되는 위기인 것이다. 하루를 놓치고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을 놓치게 된다. 나의 하루하루와 순간순간이 쌓여서 나의 영원을 성격 지우고 조건 지운다. 


우리의 주어진 생애 전 기간이 마지막 때요, 종말론적인 때이다. 각자 마지막 때인 자기 생애 하루하루 순간순간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영원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길만이 성공적인 인생살이의 길이다. 바로 오늘 하루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고 노동의 땀을 흘리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살이의 길이다. 


돈을 쌓아 놓고 돈이 벌어 주는 돈으로 희희낙락하려고 벼르면 마지막에 가서는 허탈감과 역겨움만 남을 따름이다. 달리기 선수처럼 끝까지 힘껏 달리고 권투 선수처럼 끝까지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바른 인생길이다. 지상 생애 동안에는 한시도 안식을 취할 수 없다. 돈 벌고 편히 지내고 쾌락을 누리는 것이 생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돈은 세상에서 편히 안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할 기력과 힘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 이상의 돈에 집착하는 것은 인생의 목표를 잘못 잡은 꼴이 된다. 돈이란 이용가치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돈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기보다 더 어렵다. 검소하게 먹고 입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의 돈을 탐하지 않는 진정 가난한 사람이라야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눈물로 인간사랑의 씨를 뿌리는 고달픈 노동의 나날이 영원한 잔칫상에 올려질 사람들 사이의 친교와 기쁨의 결실을 마련한다.


이 세상에서 돈과 권세를 탐하는 부자들이 마련하는 잔칫상은 어디까지나 자기들과 비슷한 신분에 속한 사람들끼리 결속하여 즐기자는 잔칫상이다. 그런 잔칫상은 거기에 둘러앉은 부자들 자신에게는 재앙이 되고, 문 밖에서 서성이는 거지같은 못난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음모와 흉계가 빚어지는 자리가 된다. 그 잔칫상에서 아무리 교양미와 세련미와 위계질서가 깍듯이 지켜지고 우정이 넘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의 울타리와 방벽을 튼튼히 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특정한 부유한 나라나 부유한 나라들끼리 그 안에서 깨끗한 경쟁과 철저한 인권존중과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완벽하리만치 보장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나라와 비슷한 나라끼리 자국과 자기네 집단의 이익을 얻고 키우기 위한 이기적이고 불순한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 부유한 나라들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나라들이 희생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은 그와는 전혀 딴판이다. 돈과 재물이 그 잔칫상에 올려진 진수성찬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친해지고 모든 나라가 친해지는 친교가 그 잔칫상에 올려진 진수성찬이다. 그런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을 마련하는 사람들과 나라들이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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