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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24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9-10 07: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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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탈출 32,7-11.13-14)

<야훼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예고하신 재앙 때문에 측은히 여기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시편(50)

내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제2독서(1티모 1,12-17)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하시러 오셨다>


형제 여러분,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루카 15,1-32 또는 루카 15,1-10)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대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연중 제24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탈출 32,7-11.13-14) 해설

<모세의 전구를 들으시고,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백성을 용서하신다>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청하고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적 평온과 균형을 회복하는 개인적 참회일 따름이다. 우리는 개인의 죄뿐 아니라 사회의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해야 한다. 


모세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바친다. 하느님께 직접 간구한다. 하느님의 끊임없는 인내와 인자함에 호소하고, 계약에 충실하심에 호소한다. 그러한 모세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실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손으로 만든 숫송아지, 자기네 능력으로 이룩한 업적에 의탁하는 짓은 하느님을 흠숭하지 않고 자기네 자신을 흠숭하는 우상숭배다. 하느님께서는 그 같은 우상숭배를 지겨워하신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창조하고 영원한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주인으로 흠숭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이룩했다고 착각하는 과학문명의 노예가 되어 서로 이용하고 해칠 때, 하느님께로부터 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처럼 죄를 지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옛적에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보아서 용서하셨듯이, 그리스도를 보아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


시편(51) 해설

<내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새로운 계약을 우리와 맺어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새로운 사랑의 계약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악에서 깨끗하여진 새로운 마음을 우리 속에 창조해 주실 필요가 있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부서지고 낮추어진 마음을 어루만지고 낫게 하여 주신다.


제2독서(1티모 1,12-17) 해설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바오로가 회개하고 용서받아 도리어 사도로 된 것은 하느님의 놀라우신 인내와 관용의 표본이다>


하느님의 용서는 끝이 없다. 바오로는 자기 자신이 겪은 체험으로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유다교를 배반한 민족반역자로 여기고서 그 추종자들을 사정없이 박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계시와 충격을 받은 다음, 철저히 회개하여 이제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도로 변신한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한 바오로를 그저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를 열렬한 당신 일꾼으로 바꾸어 놓으신다.


불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실망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따라 올바른 길로 돌아서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단을 내리는 순간 하느님께 자비로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용서를 받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일꾼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결코 실망하거나 자기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살아 있는 한 회개하면 용서받고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포기하고 멸시하는 사람은 무자비한 사람으로, 바로 그런 무자비함을 고집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힘든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서로 부축하고 깨우쳐 주는 것은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복음(루카 15,1-32 또는 루카 15,1-10) 해설

<예수님께서 세 가지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어지심과 자비로우심이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가르쳐 주신다>


바리사이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경멸하고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벌레 취급당하는 못된 무리들과 휩쓸려 다니시고 음식을 함께 잡수셨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은 그런 예수님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아흔아홉 사람보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아파하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사이들은 율법규정을 문자 그대로 철두철미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 율법규정을 모조리 지켜 낼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 불구자나 나병환자처럼 벌을 받아 불결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인정사정없이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으로 스스로 의인이라 뽐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멸시와 설움과 억눌림을 당하는 이른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


우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 양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고, 잃어버린 은전 한 닢을 애태우며 찾고, 착실한 큰 아들이 아니라 탈선한 작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시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심정이다.


한 때 잘못으로 감옥에 갇히거나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을 멀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분노를 크게 사고야 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무자비한 사람들이고, 실상 대개는 하느님 보시기에 사회의 불의한 구조와 법률의 혜택을 누리는 더 큰 범법자들이기 십상이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심으로 회개해야 하느님의 심판과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서로에게 자비로워야 하며, 서로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묵상

 

하느님 아버지께서 품으신 사람에 대한 자비심


모세는 하느님께 간청한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 충실한 사람들에게 보인 호의와 정을 생각해서 반역한 백성을 용서해 주시라고 간청한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흉허물 없이 말을 나누도록,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당신께 간청하도록 허락해 주셨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굳어져 아둔하고 완고한 백성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시라고 간청한다.


모세는 하느님께서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아버지임을 역설하면서 아버지다운 온정을 베풀어 주십사고 매달린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신다. 모세는 자기 혼자의 구원과 영광과 번영을 찾지 않고, 자기 운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해서 드리는 전구이기에, 하느님께서 그 전구를 들어주신다. 백성에게 품은 그의 큰 사랑이 하느님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품으신 사람에 대한 사랑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품으신 당신 사랑을 감동적으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거듭 되풀이하여 시도하는 역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방탕한 아들의 비유에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품으신 사랑이 거침없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비유의 주역은 끝까지 참고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시다. 방탕한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생활을 짐스럽게 여긴다. 아버지의 사랑이 오히려 자기 자유를 제약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를 떠나 제멋대로 놀아난 나머지 실패한 끝에 갑자기 자기가 큰 착각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참담한 심정으로 아버지께 돌아온다. 아버지는 자기를 배신하고 떠나간 아들과 인연을 끊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한시도 잊지 않고 빗나간 아들이 어서 빨리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같은 아버지의 심경이 사람들과 인간사회를 대하시는 하느님의 심경이다. 사람들과 인간사회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기를 거절하고, 하느님 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생활을 싫어하고, 이기주의와 방탕에 흐리고, 허세와 강자논리에 따라 약자들을 경멸하고 짓누르고 이용하고,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경제적 착취와 군사적 침략을 일삼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불의와 방탕과 악에 사로잡힌 그들이 한시바삐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계신다.


방탕한 아들처럼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크게 깨달아 회개하여 돌아올 때, 아버지께서는 반가워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감싸 안으신다. 이 같은 하느님 아버지의 관용과 용서와 자비심을 사람들이 본받아야만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이 끝난다. 그러나 나부터 내 속의 헛된 욕망과 인간차별을 먼저 끊을 필요가 있다. 내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속죄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거짓과 악을 고집하는 한, 용서하려고 기다리는 아버지께서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으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개인으로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 아니라, 가정과 집단과 국가와 인류 공동체로서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사람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창조된 존재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서로 채워 주고 받쳐 주고 격려하면서, 개인으로만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방탕한 아들의 비유에서처럼 사람들과 인간사회가 어서 빨리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자세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에서 극적으로 입증된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삶을 이어가는 가난하고 억눌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자세를 끊임없이 영웅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런 자기희생적인 인내와 용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공동체가 완전하게 회개하여 돌아와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고 천상 잔칫상에 둘러앉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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