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수복) 연중 제23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9-03 06:56:37
  • 수정 2016-09-03 07:07:10

기사수정


제1독서(지혜 9,13-18)

<누가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편(89)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제2독서(필레 1,8ㄱ.10.12ㄴ-17)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대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큰 확신을 가지고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명령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복음(루카 14,25-33)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연중 제23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지혜 9,13-18) 해설

<주여, 당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지 않고, 당신께서 보내시는 성령을 받지 않고, 누가 당신의 의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솔로몬의 입에서 시작된 이 기도가 여기서는 플라톤학파적 논법을 빌어 계속되고 있다. 영혼과 육체가 서로 대립되고 있고, 지상의 현실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실상, 비록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특수한 문화를 지닌 그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계획을 다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생각과 의도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와 성령께서는 동일한 하느님의 선물이다(참조. 이사 11,2: 지혜의 영). 지혜와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거룩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다.


하느님의 의도와 의사와 생각과 마음을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정확히 헤아리고 받아들이도록 노력할 일이다. 자기의 조그만 머리와 재능을 뽐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지혜와 성령을 받기 힘들며 따라서 오류와 그릇된 길로 빠지기 쉽다.


시편(90) 해설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지혜서 저자의 비관적인 생각이 시편작가에서 되울려 나온다. 깨지기 쉽고 허망하기만 한 인생살이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하느님께서 허약한 우리를 만나러 오고, 당신 지혜를 주고, 당신 은총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신다. 어질고 자비로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신다.


신앙과 희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보잘것없고 비참한 곳들을 구석구석 비추어 실망에 빠지지 않을 힘을 준다.


제2독서(필레 1,8ㄱ.10.12ㄴ-17) 해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온갖 인간차별과 계급투쟁이 극복된다>


그리스도를 믿게 된 콜로새 사람 필레몬이 오네시모라는 종을 데리고 있었다. 오네시모는 주인집에서 달아나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바오로를 만났다. 아마도 감옥에서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바오로는 그를 회개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고, 편지를 들려서 그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이제 오네시모를 더 이상 종으로 대하지 말고 귀중한 형제처럼 대하라고 당부한다.


바오로는 이제 더 이상 주인과 종 사이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 사회에는 오직 형제들만이 있을 뿐이며, 아무런 선입견이나 인간차별이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아껴줄 일만 남는다고 역설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사람끼리의 형제애는 온갖 차별대우와 멸시와 증오와 싸움을 극복한다.


다스리는 사람들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많이 소유한 사람들과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서로 미움과 폭력으로 맞서면 그 투쟁은 악순환으로 거듭된다. 많이 소유하고 다스리는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경멸과 억압과 착취를 끊고 회개해야 하며, 가진 것이 거의 없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평화적이고 도덕적인 힘, 사랑하는 힘, 살아있는 사람을 이미 용서하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강력한 힘으로 끝까지 투쟁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든 사람들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외국군의 침공이 있을 때 그것을 막고 물리치기 위해 전쟁을 감수해야 하듯이, 자기네 인권을 지키고 되찾기 위해 평화적인 시위, 단식 기타 가능한 온갖 수단과 행동이 동원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계급으로 나누는 이분법 이전에, 자기 자신 내부와 자기 가정과 작은 집단들 속에서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먼저 아니면 동시에 이겨내야 한다.


복음(루카 14,25-33) 해설

<가진 것 전부를 버리지 않으면,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 누가 되었든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의 그토록 끔찍한 애정과 사랑을 끝까지 배척하고 방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부모든 처자든 형제든 자기 자신이든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혈육이 아쉽고 제 몸이 아까워서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의 인간애는 자기 자신을 바치고 자기 혈육을 바치는 사람 사랑이다. 굶주리고 헐벗고 외면당하고 멸시당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그들에게 노동의 땀과 생명의 피까지 바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우선 자기 자신의 몸이 아깝고, 힘들게 일하기가 겁나고 지겹고, 자기와 자기 가족이 먼저 잘되고 봐야 하겠고, 제 나라가 최대한 부강해지고 봐야겠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 사랑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이 유일하게 소유하신 당신 살과 피와 애정과 목숨까지 깡그리 바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사람을 위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소유로 인정하고, 모든 사람의 공동 차지로 내놓고 자기 애정과 목숨까지 내놓아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혈육에 대한 애착 이전에,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억눌린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기 자신과 혈육까지도 희생하기를 감수하는 사람이라야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리스도인이다.


묵상


노예와 자유인


오늘 전례는 하느님과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를 힘입어 어떠한 방법으로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세워지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같은 근본적인 바뀜의 뚜렷한 본보기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에 나온다. 바오로는 오네시모라는 노예를 위하여 끼어든다. 바오로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조금도 차이가 없이 평등하고 서로 형제로 대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내세운다. 그 주장에 따르면 노예제도는 없애야 마땅하다.


바오로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1고린 7,17). 이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노예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 하며, 사람을 사람에게 예속하게 하는 온갖 형태의 관습과 제도와 법률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부릴 수 없는 일이며, 자기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고를 강요하고 그 수고의 결실을 가로챌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형제로 따뜻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헌신함으로써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그렇지 못할 때, 사람은 동물보다 못한 악한 존재로 떨어진다.


바오로는 오네시모를 ‘내 아들’, ‘가장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른다. 노예 오네시모처럼 부당하게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바오로는 크게 애착하고 그런 사람들을 가장 사랑하는 형제로 사랑한다. 그리고 자기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오네시모를 대우하라고 필레몬에게 당부한다. 오늘날에도 노예나 다름없이 혹사당하고 노동의 대가를 부당한 제도와 법률에 의하여 착취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경제적 침략을 받아 절망적인 상황에서 허덕이는 제3,4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뜨거운 애착을 보이고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적극 개입하고 나서는 사람이라야 바오로다운 사람이요 그리스도다운 사람이다. 그 개입하는 방법은 멀리서 대상을 관찰하는 자세로 말로나 글로만 애타게 호소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겉꾸밈일 따름이고, 어디까지나 그들의 고통에 똑같이 동참하고 그들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 된 다음, 그들 속에서 누룩과 씨앗의 역할을 다해야 진심이 조금이라도 통할 것이며, 그들을 통하여 비참한 삶을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께 조금이라도 접근하고 그분과 같아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노예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 자유인이 되는 새로운 세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은 힘을 합하여 줄기찬 투쟁을 끊임없이 감행해야 한다.


약하고 못생기고 무능하고 머리 나쁜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 눈에는 더없이 귀중하다. 똑똑하고 영악스럽다 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가증스럽게 보신다. 으스대는 사람의 똑똑함이나 유능함은 하느님 보시기에 가소로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겸허하고 따뜻한 마음이 아쉬우시다. 그런 마음들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와 성령을 시켜 무수한 사람들 안에 심어가고 계신다. 이 같은 진실이라야 인간평등의 기초가 된다. 모든 사람의 평등과 자유는 목숨을 바쳐 쟁취해야 할 귀중한 가치이다. 인간차별과 인간증오가 분열과 전쟁과 대량살육을 불러온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제자


아직도 인간사회와 인류사회 속에는 이기심과 지배욕과 인종차별과 무차별 학살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기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꾀하기 때문이며, 오직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들로서 당신 권리 주장을 하지도 않고 당신 이익을 취하려 한 적도 없이, 오로지 당신 노동의 땀과 생명의 피를 흘려 바치셨을 따름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같은 당신 삶과 생애를 통하여 보여 주고 가르쳐 주신 바를 사람들이 그대로 따를 때에야 비로소 인류가 합심하고 일치단결하는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빠짐없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고 그리스도의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 부모, 처자, 형제, 국민의 이익이나 명성이나 권세를 취하는 일이 없이, 오직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자기 몸과 피와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바쳐 헌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조리와 불의가 저질러지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는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지워지는 몫이다. 그 십자가의 몫을 하루하루 인내로이 지고 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리스도인이요 사람다운 사람이다.


그리스도처럼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속에서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자신의 애정을 통째로 바치고 목숨까지 바치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로 인하여 친교의 기쁨이 넘치는 천상적 새로운 인류공동체가 장엄하게 이루어져 간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