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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20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8-13 10:51:01
  • 수정 2016-08-13 10: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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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예레 38,4-6.8-10)

<저 사람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한 일은 모두 악한 짓입니다>


대신들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런 자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치드키야 임금은 “자, 그의 목숨이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 이 임금은 그대들의 말에 어찌할 수가 없구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경비대 울안에 있는 말키야 왕자의 저수 동굴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밧줄로 묶어 저수 동굴에 내려 보냈는데, 그곳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어서 그는 진흙 속에 빠졌다. 

에벳 멜렉은 왕궁에서 나와 임금에게 가서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저 사람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한 일은 모두 악한 짓입니다. 그들이 그를 저수 동굴에 던져 넣었으니, 그는 거기에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이제 도성에는 더 이상 빵이 없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 멜렉에게 명령하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른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죽기 전에 그를 저수 동굴에서 꺼내어라.” 


시편(39)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제2독서(히브 12,1-4)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복음(루카 12,49-53)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지 않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연중 제20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예레 38,4-6.8-10) 해설

<다른 모든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진실을 선언했다 해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원수들을 갖게 된다는 것, 여러 사람과 원수지고 산다는 것이 어떤 때는 진실을 거침없이 밝혀내기 때문이 아니던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예언자는 진실을 외치다가 박해와 사형을 당했고 당하고 있다. 제 몸을 보존하고 안일하게 살려고 진실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예언자다운 사람이 아니며 그런 사람은 하느님께로부터 단죄를 받을 것이다. 진정 예언자다운 사람은 그릇된 이론과 거짓 논리를 펴는 사람들로부터 강경한 반격을 당하게 되어 있다.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 찬 사회 안에서 용하고 무던하고 적이 없는 사람은 사실 거짓과 불의에 타협하고 편승하는 기회주의자요 아첨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도 불의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다 해서 처형당하셨다. 예레미야도 전쟁이 쓸모없다고 말하여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진리와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과 거짓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를 지키고 다지려는 자들은 결코 대결을 피할 수가 없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승리하거나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그 갈등과 투쟁은 그칠 수가 없다. 그리고 거짓과 불의가 언뜻 보기에는 당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진리와 정의가 승리를 거두고 있으며, 그 승리는 어느 날엔가 놀라운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 것이다. 그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비롯한 예언자다운 사람들이 박해와 수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40) 해설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이 부르짖음은, 진실을 외쳤다 해서 진흙탕에 던져져 굶어죽게 된 예레미야의 부르짖음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방인 에디오피아 사람 에벳 멜렉을 시켜서 예레미야를 구출해 내게 하신다.


자기 앞날 운명과 목숨을 하느님 손에 맡기고 용감하게 진실을 외치는 사람은 복되다(4절). 진실을 외치고 진실하게 살려다가 비참한 지경에 빠진 가련하고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위대한 해방자가 되실 것이다.


제2독서(히브 12,1-4) 해설

<우리 모범이신 예수님께 우리 시선을 못 박고서 온갖 시련을 참아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소심하고 자질구레한 온갖 인습과 체면치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우리를 꼼짝없이 얽어매고 있는 죄악의 사슬을 과감히 끊어내어 청산하고서, 그리스도께서 제시하고 마련해 주신 목표를 향하여 줄기차게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과 불의를 고집하는 죄인들에게서 그렇듯 심한 미움과 박해와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장차 거두게 될 승리와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아랑곳없이 끝까지 견디며 당신 투쟁을 감행하셨다.


아직까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 맏형이요 귀감인 예수 그리스도처럼 피를 쏟고 목숨을 바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우리는 다시금 결의와 각오를 새롭게 하여 골고타 산정에까지 스승을 따라가야 한다. 승리와 기쁨은 그런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 투쟁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정의롭고 사랑에 넘치는 사회는 반드시 실현되고야 말 것이다.


복음(루카 12,49-53) 해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으며, 사람들이 서로 불목하고 갈등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신다>


심판하는 불: 당신 공생활 처음부터 하느님의 심판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설파한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인의 개념에 따르자면, 이 말씀은 그릇된 세상이 무너지고 그 대신 올바른 세상이 들어서게 되는 커다란 위기의 과정을 가리킨다. 예언자들은 그 같은 위기를 홍수와 불의 형상을 빌어 표현했다(참조. 2베드 3,5-7). 이 불이 이미 타 올라서 올바른 세상이 완성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직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완전히 다스리는 세상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의 완성을 위해 투쟁하다가 수난과 수모와 박해와 십자가와 죽음의 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대결과 투쟁: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 인간평등과 인간품위와 인간사랑,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당위는 필연적으로 거짓된 사람들과 올바른 사람들을 갈라놓고 서로 반대하여 투쟁하게 만든다. 이 때 갈라서는 기준은 혈육이나 친분이나 종족이나 피부색이나 종교가 아니라, 오직 옳고 그름, 거짓과 참됨, 정의와 불의, 독점과 나눔, 인간멸시와 인간존중, 인간증오와 인간사랑이다. 옳음과 참됨과 정의와 나눔과 인간존중과 인간사랑은 불가피하게 그릇됨과 거짓과 불의와 독점과 인간멸시와 인간증오와 사투를 벌이게 되어 있다. 어느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 목숨을 건 그 결투는 끝나지 않는다. 평화는 탄압과 굴종과 타협과 야합, 협잡이 아니다. 평화는 오직 쟁취한 승리일 따름이다.


묵상


전쟁과 평화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가 와서 손에 키를 들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고, 사람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리라고 선언한 바 있다(마태 3,10-1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루카 12,49-52)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열로 불타오르게 하신다. 불이 쇠를 녹여 단련시키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불을 지르신다. 이 정화하고 정열에 불타게 하는 새로운 불은 오직 십자가 나무 위에서만 불붙고, 오직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의 위력으로만 불붙는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사회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자기 몸과 마음을 불태워 제물로 바치도록 요구하신다. 그 자기희생이 바로 성령과 물로 받는 세례이고, 그 세례를 통과하는 사람이라야 구원을 받는다.


십자가 나무 위에서 불이 붙는다. 그 나무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으로부터 높이 들려져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끌어당기고 모든 사람의 눈앞에 당신을 구세주로 당당히 드러내며 모든 사람을 당신 세례에 참여시키려 하신다(참조. 요한 12,32).


이미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불 지르신 변혁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 성신강림날에 그 불은 제자들 위에 내려와(사도 2,3), 성령과 불의 세례가 베풀어졌다(1,5). 불은 성령을 상징하고 성령께서 사람들 마음속에다 불태우시는 사랑의 열정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양심을 무디게 하고 진정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예민하게 만들어 고뇌와 갈등에 빠지게 하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 마음속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거짓된 안정과 평온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빛과 어둠, 사랑과 이기심을 싸움 붙이러 오셨다.


각 사람이 자기 속에 도사린 악마적인 경향과 악마의 세력을 쫓아내고, 자기 가정과 자기 종교와 자기 나라와 국제질서 속에서 하느님의 세력으로 하여금 악마의 세력을 깨부수도록 당신처럼 목숨 걸고 몸 바쳐 투쟁하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깨부수어야 할 악마의 세력은 먼저 자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이기심과 욕심과 야심과 명예욕과 그에 따른 온갖 행위요, 다음으로는 온갖 단위의 사회와 국가와 국제질서 속에서 인간차별과 인간무시와 경제・정치・군사적 침략과 억압과 착취에 명시적・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집단적 합의와 행동이다.


그 같은 악마의 세력을 철저히 깨부수고 뿌리 뽑을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당신 사람들과 더불어 피 흘리는 십자가의 투쟁을 결코 그만두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한 가정 안에서도 식구끼리 서로 반대하여 갈라지는 일도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신다. 가정이라 하면 최소 기본 단위의 사회이다. 그런 가정 안에서도, 같은 혈육끼리라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선악이 대결하고 옳고 그름이 대결하고 인간증오와 인간사랑이 대결해야 한다. 선과 옳음과 인간사랑이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단위, 신분, 계층, 종교, 국가단위 속에서 그 구성원들이 인습과 사회통념과 제도와 보호담장 안에서, 그 한계 안에서 그 구성원들 자기네끼리만 조건적이고 계산된 처세와 처신으로 만족하는 것은 자기기만이고 거짓 평화다. 그런 안이한 자세와 사고방식과 노골적이거나 소극적인 단체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떤 가정은 사회에 해로운 가정이 되고, 언론인 신분, 종교인 신분, 교육자 신분, 법조인 신분, 정치인 신분 등의 전체적인 흐름이 결국 거짓과 불의라는 악마의 세력에 편드는 꼴이 되고 만다. 모든 가정과 단체와 국가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정의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인간사랑을 편드는 모든 사람이 자기 가정과 신분과 계층과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연대하여 하나로 뭉쳐 악마와 불의와 인간멸시와 인간증오를 깨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류는 핵무기체계와 별들의 전쟁구상을 쓰레기장에 폐기처분하고 오순도순 친하게 지내는 인류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그런 인류사회 속에서라야 건전한 공동체적인 국가사회도 보장되고, 각 가정도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인 가정이 되고, 각 사람도 비뚤어지지 않고 진실하게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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