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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18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7-30 09: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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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코헬 1,2; 2,21-2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이다. 


시편(94)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제2독서(콜로 3,1-5.9-11)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복음(루카 12,13-21)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연중 제18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코헬 1,2; 2,21-23) 해설

<이 세상 노고에서 사람이 무슨 이익을 얻으리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리스의 반문화적이고 반사회적인 극단적 금욕주의가 극복되고 맨 처음으로 히브리의 낙관주의가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낙관주의를 메시아 시대에 대한 희망이 북돋아 주고 풍부하게 해 주고 있다.


‘현자’는 그 같은 새로운 기운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유익한 교훈들을 이끌어낸다. 인간 존재란 깨지기 쉽다는 것과 온갖 재화 및 물질이 결국에 가서는 공허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사람에게 늘 유익하다는 교훈들을 이끌어낸다.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 이름을 남겨 보았자, 그 이름이 후손과 후세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동을 주는 이름이 되지 못하고 지겨운 저주의 대상이 된다면, 수많은 재물을 모으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거나 일국의 대권을 잡는다한들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니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도 인생 목적이 될 수 없다.


사람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영원히 남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푼 마음뿐이다. 남에게 베푼 한 가닥 따뜻한 인정이라도 인류사 안에 영원히 남는 좋은 영향을 심는다. 없어지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빛낼 것은 그 따뜻한 인정뿐이다. 이름 없이 살다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베푼 따뜻한 인정이 인류 공동체를 함께 살게 하고 살리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시편(95) 해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우리 모두는 아버지를 성령 안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찬양하고 흠숭하라는 초대를 받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처하시고 당신 말씀을 들려주신다.


시편 91-100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기쁨에 넘치는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와서 주님께 환호하세. 감사드리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세”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


재물과 권세와 명성을 탐하지 말고 오직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데 힘쓰라는 주님의 말씀을 결코 거역해서는 안 된다.


제2독서(콜로 3,1-5.9-11) 해설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부활하는 우리 생명과 우리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면서도, 나날이 우리가 취하는 선택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숨겨진 새로움: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새로움은 땅에 묻힌 씨앗처럼 숨겨져 있다. 참으로 새로운 사람인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안에 숨어 계신다.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숨겨져 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그러나 그 하느님의 모습은 우리 일상생활 안에 서서히 드러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불결하고 탐욕스럽고 거짓된 생활을 끊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서 읽어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 사람을 무시하거나 경멸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가진 것 없다거나 무능하다거나 못났다거나 병신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고, 남보다 앞서고 우월하고 유능하다고 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남을 부리고 이용하려들지 않고, 피부색이나 문화권이나 세력권에 따라 분파를 만들지 않는 새로운 인간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시는 사회, 사람이 사람을 앞선다거나 사람이 사람을 부리고 이용하고 다스리지 않는 사회가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복음(루카 12,13-21) 해설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누가 나를 너희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스도께서는 유산분배자도 아니고, 경제권이나 세력권을 정해 주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분,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한 나라와 특정한 이념체계를 감싸거나 지지하지 않는 분이시다. 모든 유산과 모든 자원과 모든 인간 능력이 모조리 당신 것, 그리스도만이 만물의 주인이시다. 탐욕에 사로잡혀 재물 모으기에 재미 붙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주인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죽을 때 가지고 가지는 못할망정 그 재물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 해서 그 유산이 자식들 구원에 유익할 리도 없다. 유산 물려주기와 사회기득권을 그리스도께서는 인정하시지 않는다.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 자기와 자기 자식들과 자기 나라만의 안일과 향락을 위해서 발버둥치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행위는 하느님께 인색한 행위이며 하느님의 주인되심을 부인하는 행위이며 하느님의 정의를 배반하는 행위이다.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함께 사는 사회와 세계, 사람끼리 모든 것을 정답게 나누며 친하게 지내는 사회와 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삶이라야 참으로 지혜로운 삶이다.


묵상

 

산다는 의미


코헬렛의 저자는 모든 것이 헛되고 물거품 같다고 우리에게 거듭 되풀이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경멸하고 비관주의에 빠지라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을 도외시하거나 외면하고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이다. 하느님 홀로 넘치는 생명이며, 만물과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의 주님이고,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하느님께로부터 만물은 존재의 활력을 얻는다. 하느님 안에서 만물과 모든 사람은 자기 존재의 참되고 심오한 의미를 발견한다.


모든 것이 헛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으므로 좋은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하느님께 끊임없이 감사드리라고 가르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그에게 ‘모든 것이 헛된’ 전형적인 예이다. 지상의 재화만이 그 부자에게는 유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부자는 재물을 만족할 만큼 많이 쌓아 둔 다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고 말한다. 그의 생애는 오로지 이 세상 한계 안에서 계획되어 있고, 물질 향유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의 안중에는 하느님도 없고,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삶에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이제 수고하여 일하고 땀 흘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 같은 염치없는 부자의 생애는 정말 헛되고 공허하다. 욕심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것이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다. 죽어지면 모아둔 재산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궁핍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잘못된 사회 구조에 얹혀 그들을 착취한 재물이 오히려 자기를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 같은 부자더러 하느님께서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정의를 구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 재물을 대하는 우리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치신다.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31)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우리 인생 목적은 재물을 쌓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의 욕망은 한이 없는데, 재물 쌓는 것이 인생 목적이라면, 사람들끼리 아귀다툼과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끼리 서로 해치고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생의 목적은 재물과 세력과 명성을 얻는 데 있지 않다. 인생의 목적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와 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몸 바치는 데 있다. 재물이란 어디까지나 사람들끼리 친교를 나누기 위한 이용가치로서 귀중할 따름이다.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세계 곳곳에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때, 세계 속에서 5초마다 어린이 한 명이 그리고 날마다 10만 명의 사람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는 오늘날, 부자로 머물러 있고 소비를 턱없이 많이 하면서, 동시에 자기는 재물에 애착하지 않고 마음으로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회 제도와 구조가 하느님의 정의에 따른 것일 때, 결코 ‘소유와 소비’가 소수 사람들과 몇몇 부유한 나라들에게 쏠릴 수가 없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자원과 인간 능력은 모든 사람, 온 인류가 따뜻하게 공평하게 나누라고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이며, 그 주인은 유일하게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우리 인생 목적은 이기적인 재물 축적에 있지 않고, ‘따뜻하게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류가 함께 나눔의 길을 가고 민족이 나눔의 길을 갈 때, 하느님께서는 결코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놓아두지 않으실 것이다. 진탕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고, 사람들끼리 서로 위해주고 친해지는 것이 영원으로 이어질 참된 행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다시 오시는 날 모든 눈물과 고통을 씻어 주고 우리 조그마한 상상과 소망을 무한히 뛰어넘는 물질적 풍요 내지 영적 풍요를 안겨 주실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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