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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16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7-16 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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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창세 18,1-10ㄱ)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시편(14)

주님, 누가 당신 천막에 머물 수 있겠나이까?


제2독서(콜로 1,24-28)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복음(루카 10,38-42)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고,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한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연중 제16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창세 18,1-10ㄱ) 해설

<주여, 당신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옵소서>


아브라함이 세 나그네를 극진히 영접한 이야기를 접하면 누구나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어떤 때는 한 분이었다가 또 어떤 때는 세 분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천사들인가, 사람들인가, 아니면 하느님 자신이신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도 낯선 손님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바칠 필요가 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 줄 필요가 있다. 자기가 끔찍이 애착하는 재물을 내놓고 나누어 줄 필요가 있다. 자기 나라 자본과 기술을 후진국들에게 아낌없이 내놓을 필요가 있다. 남보다 다른 나라보다 잘 산다고 우쭐대고 세력을 부리려 하지 않고 앞으로는 함께 살고 서로 위해 주며 살기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사람이되 사람 몰골이 아니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사람들과 후진국 사람들을 깍듯이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이노라면, 차츰 그 사람들이 귀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다가설 것이다. 하찮게 보이는 그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심혈을 기울여 애착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절절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가까워지고 그런 사람들과 동화(同化)할 때에야 비로소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고 하느님과 동화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도 낯선 손님들을 따뜻하게 영접하고 대접함으로써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로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마태 25,40).


시편(15) 해설

<주님, 누가 당신 천막에 머물 수 있겠나이까?>


주님의 천막, 집,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비인간적인 제도와 법망 안에서 거짓과 부정을 일삼으며 빼앗기와 뇌물 받기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부자나 세도가 앞에서 기가 꺾인다거나 아첨하는 일이 없이 꿋꿋하게 진심으로 주님만을 섬기는 사람이다.


주님의 뜻에 따른 올바른 국가사회 질서와 국제사회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천막에 묵게 될 것이다.


제2독서(콜로 1,24-28) 해설

<영원으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 이제는 성도들에게 드러났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현할 사명을 받았다. 그 사명을 다하려는 바오로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바오로는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려 했다. 모든 사람에게 합당한 목표와 목적을 세워 주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자유롭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려고 있는 힘을 다 쏟았다. 끊임없이 여행을 하고 수난과 박해를 달게 받았다.


바오로가 정열을 다 바쳐 전파한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영광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이다(27절).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과 온 인류의 구세주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 안에 계시고 모든 민족 안에 계신다. 그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살아가느냐의 여부에 따라 구원이 판가름 나고, 모든 백성과 민족도 세계 속에서 자기 구체적인 역사 현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느냐 여부에 따라 구원이 판가름 난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제도와 틀과 울타리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거듭하여 완성해 가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닫히고 굳어지고 응고된 사람의 계획에 맞추어질 수 없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공동체(참된 교회, 하느님의 성전)도 하나의 신비스런 생명체로서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비록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무럭무럭 자라나 완성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어느 사람, 어느 민족, 어느 인종, 어느 문화, 어느 종교도 빼거나 물리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 그 민족, 그 문화, 그 종교를 시작이요 마침이신 그리스도를 닮게 해야 한다. 그것은 문화침략이 아닌 몸 바침과 시중듦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복음(루카 10,38-42) 해설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고,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한다>


예수님을 집에 맞아들인 다음, 마르타는 경황없이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 마르타가 시샘이 나고 골이 나서 그랬던지 아니면 그냥 웃음엣말로 그랬던지 예수님께 마리아에게도 일을 좀 거들도록 시키라고 조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미소 지으며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라고 대답하신다.


예수님을 자기들 속에 그리고 자기들 사이에 맞아들이게 된 사람들은 이제 일할 때나 잠잘 때나 살거나 죽거나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면서도 그 목적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순간순간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자기 마음속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오직 예수님 마음에 꼭 맞는 일을 골라서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관상생활과 실천생활은 결코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관상생활자가 따로 있고 실천생활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관상을 위한 관상이 있을 수 없고 맹목적인 실천도 있을 수 없다. 어떤 때는 관상에 치우치고 어떤 때는 실천에 치우치더라도 관상과 실천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학문에 전념하는 지식인들도 실제 의식주 생활 바탕은 일선 노동자의 삶과 피부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농민과 노동자들도 기계적으로 일해야 하는 노동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공동체생활 실현이라는 목적의식’에 거듭거듭 예리하게 눈 떠있을 필요가 있다. 지식인은 노동자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노동자는 양심 있는 지식인을 아껴야 한다.


묵상


성경에서 말하는 ‘따뜻한 대접’


아브라함의 일화와 마르타・마리아의 일화는 넓은 의미의 ‘따뜻한 사람대접’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대범한 자기 개방과 순응하는 자세를 말한다. 신앙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개방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와 만나고 하느님과 만나는 자세를 말한다.


성경은 다름 아닌 하느님 때문에 고달프게 사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라고 말한다(신명 10,18-19). 이스라엘 백성에게 억눌리고 가난에 찌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일은 특별한 이유와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이집트에서 외국인으로서 종살이하던 비참한 처지를 잊지 말아야 했다(레위 19,33-34). 거기다가 그들은 복된 땅을 향하여 헤매던 자기네 처지를 잊지 말아야 했다(시편 39,13).


마므레의 참나무 밑에서 세 손님을 영접한 아브라함의 일화에서 우리는 따뜻한 영접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 본보기를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태도는 경건하고 종교적이었다. 아브라함의 눈에는 낯설고 지쳐 있는 손님은 바로 하느님으로 보였던 것이다. 나그네 인생살이를 하며 기진맥진한 사람을 따뜻하게 영접하는 것을 곧 하느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신약성경에서 ‘따뜻한 사람대접’은 ‘모든 사람을 자기 형제자매로 대접하는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묘사되어 있다(로마 12,9-13).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모든 사람에 대하여 사랑할 빚을 지고 있다(로마 13,8). 매순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열어 주고 자기 자신을 바쳐 봉사할 채무를 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 노동과 피땀을 바치면, 그것은 곧 바로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 몸 바치는 셈이 된다(마태 25,35-45). 모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하찮고 힘없고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 모습으로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서 계시고 다가오신다(루카 9,48).


그리하여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가의 여부에 따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가 판가름 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람들 사이에 오셨으나, 사람들은 당신을 알은 체도 않고 외면하고, 오히려 당신을 죽이고 말았다(요한 1,9-11).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 눈앞에 있을 때, 그들을 나 몰라라 무정하고 냉담하게 외면하여 그들이 죽어 가면, 우리는 그들을 죽이는 것이며, 바로 그리스도를 다시금 죽이고 있는 셈이 된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실천해야 할 ‘따뜻한 사람대접’


오늘날 ‘따뜻한 사람대접’을 바라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기타 세계 곳곳에서 극심한 빈곤과 굶주림과 병고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 인권을 짓밟히고 언론의 자유를 빼앗기고 불의한 구조적 올가미와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으로 서 계신다. 오늘 우리 세계와 인류는 그런 사람들을 바로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로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재물과 세력을 이미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자들, 과학문명이 발달한 나라에 사는 인정 없는 부자들이 당장이라도 기왕의 불의를 끊어 버리고 ‘함께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좋은 세상’ 건설에 떨쳐나설 필요가 있다. 당하기만 하고 가난과 비참의 수렁 속에서 뒹구는 사람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 떳떳한 자기네 인권에 눈뜨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의식’ 수준에까지 도달할 필요가 있다.


중앙집권적이고 대도시 중심적인 사회구조, 부유한 나라 중심의 정치・경제 국제질서를 하루 빨리 뜯어고칠 일이다. 강자가 약자를 받아들여 한 밥상에 앉아 소유와 소비가 고르게 되고,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받아들여 정당한 국제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자원이 없는 나라에 자본과 기술을 너그럽게 제공함으로써 생활수준이 비슷해져야 마땅하다. 약육강식・적자생존・경쟁논리가 아닌 공존공생화합하고 서로 아껴주어 마치 하나의 신비스런 생명체 같은 공동체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와 세계가 형성되어야 마땅하다. 유능한 사람의 유능함도 무능한 사람에게 이바지하기 위한 유능함이 되고,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나 사회 기득권은 인류 공동체의 삶을 위한 것이 되고, 그리하여 한 밥상에 앉듯이 소유와 소비에서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형제자매끼리 친교의 기쁨이 넘치는 사회와 세계가 한시바삐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런 사회와 세계라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치 그리스도인 양 ‘따뜻하게 사람대접’하는 사회와 세계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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