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2026.10.16)
: 에페 1,11-14; 루카 12,1-7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증언하는 기본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마르 1,15; 마태 4,17)고 선포하신 말씀과 다가온 하느님 나라에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20,31)고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생명에는 내세와 현세의 두 차원이 존재합니다.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 진리입니다.
땅 위의 모든 생명체를 생기있게 하는 비는 하늘 위 구름에서 내리듯이,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인류의 문명을 인간화시키는 진리는 하늘에서 즉 내세에서 옵니다. 또한 그 비는 온갖 생명을 먹이고 땅을 적셔서 갖은 열매를 맺게 하여 모든 생명체를 자라게 하지 않고는 다시 돌아가는 법이 없듯이, 하늘에서 온 진리는 인간 생명과 인류 문명이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도록 열매를 맺지 않고는 다시 하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내세에서 온 진리인 하느님 나라와 생명이 현세적 차원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엄중한 요청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창조설화에서 첫 인간을 유혹하고 꼬여서 타락시킨 뱀이 등장하듯이, 인생과 인류 역사에서는 줄곧 사탄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진리를 가로막고는 인간이 이 진리를 실현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아 왔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에서는 그 악역이 바로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조심하라.”(루카 12,1ㄷ)고 경계하셨습니다. 결국 그 바리사이들이 음모를 꾸며서 사두가이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신성모독죄와 성전모독죄를 뒤집어 씌워가지고 로마인 총독의 권세를 빌려서 십자가형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끔찍하고 사악한 진실을 미리 내다보신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운명이 당신을 계승할 사도들에게도 닥칠 것을 알리시고자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4). 육신은 어차피 한 번은 죽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두 번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공평한 인간의 숙명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악인들에 의해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어도 그것은 그분이 의인으로서 올바른 의지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의로운 죽음이요, 따라서 내세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보답을 받습니다.
하지만 호의호식을 하다가 자연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세속에 물들어 살거나 악인들의 유혹에 굴복하여 비겁하게 산 결과라면, 그가 아무리 오래 살다가 죽었어도 그것은 하느님의 눈으로 보실 때에는 병마가 만들어낸 죽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탈렌트를 낭비한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죽임을 당한 이후의 내세가 보장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루카 12,1ㄷ) 하고 경고하는 동시에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라.”(루카 12,5ㄴ)고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지옥에도 우리 영혼을 가두실 수 있지만, 더 바람직한 것은 그분이 마련해 놓으신 천국 즉 하느님 나라에로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인생과 역사는 내세의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됩니다. 그런데 내세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서 과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느냐 누릴 수 없느냐 하는 것은 현세에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만큼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와 생명의 현세적 차원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즉, 그 궁극적 차원에 이미 마련해 놓으신 천국을 현세 동안에 세상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실현하라는 것이었고, 이 계획이 악인들과 죄인들 때문에 지지부진하자 당신의 아드님 예수를 보내시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룩할 기준이 되는 진리를 제시해 주셨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의인들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에페 1,13-14).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진리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 사도들이 세운 지상의 하느님 나라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셨듯이, 사탄과 맞서서 지상에서 천국을 세워야 할 주역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받은 몫은 자기 가정을 성화시키고 주어진 인간관계를 복음화시키며 각자의 직업을 통해 사회적 소명을 실현하면서 직업 이외의 폭넓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천국에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왔을 때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천국에 가까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 다시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 목표입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와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탈렌트와 미나의 몫을 소중히 여기고(에페 1,11)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유감없이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인장'(에페 1,13)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봉헌하는 노력을 귀한 예물로 받으시고 내세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심은 물론 내세에서도 현세에 남은 이들을 위한 역할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소홀히 하면 어느 새 '바리사이들의 누룩'인 위선이 원치 않게도 우리 안에 들어와 자라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세례로 받은 성령의 인장에 따라 내세를 의식하며 현세를 충실히 살아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