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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14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8-07-06 18:29:18
  • 수정 2018-07-06 18: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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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에제 2, 2-5) 해설

<나에게 반항하는 역적의 무리에게 그들 가운데 예언자 있음을 알려라>


주님의 제단 앞에 엎드린 예언자에게 한 목소리가 있어 일어나라고 명령을 내린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서 당장 일어선다. 에제키엘은 ‘사람의 아들’ 또는 단순히 ‘사람’이라고 불린다. ‘사람의 아들’이란 호칭은, 하느님께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하느님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깨지기 쉬운 허약한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제 혼자 힘으로는 하느님이 그에게 맡기신 어려운 사명을 도저히 수행할 수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에제키엘은 예언자가 되라는 사명을 받는다. 에제키엘은 주전 597년부터 귀양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예언자로 활동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자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하여 따르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에제키엘은 얼굴 표정을 굳어지게 하여 ‘쇠가죽을 쓴 것처럼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3,8-9) 말을 들어먹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과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고, 예루살렘 위에 떨어지는 책벌이 더욱 가혹해지리라고 경고한다.



예언자와 목자로서 사명을 수행한 에제키엘은 예루살렘 멸망(주전 586년)으로부터 두 시기에 걸쳐 활약했다.


첫째 시기(주전 593-586)에 에제키엘은 예언자로서 사명을 받고서 바빌로니아에 첫 번째로 붙들려가서 귀양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품고 있는 그릇된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 투쟁한다. 에제키엘은 붙들려간 동포와 함께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려고 고심하고 애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게 되어 있다. 그들이 대변하는 말을 받아들이고 따르고 실천하면 하느님께로부터 용서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시편(122) 해설

<저희의 눈이 주 저희 하느님을 우러릅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


이 시편에서 우리는 ‘집단이 합심해서 바치는 간구’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아마 유배지로 끌려간 이후)가 자기네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상황을 탄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 공동체는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바라고 달아들고 인내로이 참고 기다린다.


상전의 손길을 눈여겨 쳐다보는 하인들처럼, 주부의 손길을 눈여겨 쳐다보는 하녀들처럼 겸허해진 그들은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어여삐 여기심을 바란다.


부유한 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거만한 자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고 멸시만 실컷 받는 사람들이 자기 ‘무소유와 무능’을 절감하고 하느님께 달아들 때 하느님이 몸소 그들을 구원하고 해방하실 것이다.


제2독서(2코린 12, 7-10) 해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바오로는 자기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음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그를 시기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자기들이 바오로보다 더 큰 특은을 받았노라고 우쭐댔다. 그래서 바오로는 자기의 인간적 약점을 통해서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난다고 말한다(2코린 11, 11-13).


오늘 제2독서는 하느님의 권능과 인간의 약함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바오로는 자기가 사도로서 받은 사명에 관하여 말할 적마다 그 점을 분명히 한다(1코린 4, 9-13; 2코린 4, 7-15; 6,  4-10; 11, 23-33; 12, 9-10). 자기의 인간적 한계와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나아가 다른 어떤 인간이나 마찬가지로 자기도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보탤 아무 능력도 없음’을 솔직하게 시인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겸허한 도구로 쓰시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드릴 뿐이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자기가 정녕 그리스도께로부터 사도로서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기가 받은 특은이 위대함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사도로 임명되었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는 점은 다름 아닌 ‘자기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능력이 자기를 통하여 발휘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능력은 자기네가 유능하다고 뻐기는 지식인들과 재산이나 권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랑하고 내세우고 남 위에 올라설 생각도, 그런 성질의 능력도 없고 의탁할 만한 재산이나 배경도 없는 사람들, 하느님밖에 달아들 데가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발휘된다.


복음(마르 6, 1-6) 해설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다른 여러 지방에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자기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오신다. 고향 사람들이 마침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예배에 참석하여 성경을 낭독하신 다음 그 내용을 풀이해 주셨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무시하고 배척했다.


고향 사람들은 그분의 지혜로운 말씀과 기적들을 전해 듣고서 어안이 벙벙한 중에도 잔뜩 호기심과 기대를 걸고 있었다. 과연 그분은 전통에 따라서 성경을 해설하지 않고, 아주 새로운 모양으로 설명하면서 당신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응답과 새 생활을 요구하고 당신을 믿으라고 하셨다(참조. 마르 2, 14와 1, 15).



그에 대한 반응은 먼저 그분 친척들로부터 나왔다(참조. 요한 6, 45). 그가 목수 요셉의 아들이며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목수 같은 일꾼들의 자식들과 볼품없는 천대받는 집안의 자식들 가운데서,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 모습을 드러내고, 하고 싶으신 말씀을 하며 당신 능력을 발휘하여 놀라운 해방의 기적을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느님 백성과 하느님 나라에 속하는 조건은 히브리인이라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를 사랑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은총에 의해서이고,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응답과 받아들임에 의해서이다.


오늘 읽은 복음과 다른 대목들(요한 4,44; 마르 3,31-35; 루카 11,27-28)에 나오는 예수와 고향 친척들 사이의 논쟁 이야기는 아마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 안에서 일어난 논쟁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공동체들에서는 메시아의 다윗 왕가 혈통을 강조하려는 사람들과, 은사적(특은적)이고 영적인 점을 강조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심했던 것 같다. 마르코는 항상 예수 친척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비판을 가하고, 사도들이 받은 사명을 강조한다(마르 6.7-13; 3,13-19).


묵상


그들은 예언자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을 깨우치고 돌아서게 하려고 들려온다.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한 예언자들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전달하고 선포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예언자들은 한사코 주님의 길을 외면하고 피하고 멀리하는 자들로부터 흔히 모함을 받고 박해를 받는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신다. 그러나 당신 말씀을 마지막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빛과 진리를 외면하고 저버렸기 때문이다.


에제키엘의 경우처럼, 예언자는 사람들이 거절할 것 같을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어김없이 전달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하느님 말씀을 대변하며 전달하고 선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말과 행동으로 우리 속에 숨겨진 수치스런 죄악을 백일하에 발가벗긴다. 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힘겨운 노동을 하고 가난하고 모욕과 고통과 박해와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의 죄벌을 대신 받는 어린양이다. 그런 사람들이 보여 주는 인내와 외침이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범죄의 근원과 뿌리를 파헤친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동네 이름 없는 일꾼인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 역시 목공일을 하며 살던 사람이요 아무도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평범한 일꾼이었고, 그 어머니 마리아도 헌옷을 기워 입고 온갖 허드렛일과 가사를 돌보는 한낱 아낙네였음에 틀림없다.


그 일꾼 예수님께서 어느 날엔가 마음속 깊은 데서 울려 나오는 당신 아버지 하느님 말씀의 재촉을 받고 인간을 고양시키는 큰 깨달음을 외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친척들과 동향인들은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 6,3)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마르 6,2)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느님은 예수처럼 막일을 하는 일꾼들, 실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기계적인 사무 일을 보는 노동자들, 땅을 일구는 농민들의 마음속 깊은 데에 당신 말씀을 내려 당신과 인간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을 주신다. 예수처럼 수고하고 짐 진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고 하느님 말씀을 대변하고 전달할 사명을 띠게 된다. 그들의 마음씨와 열망과 외침이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다. 그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고 회개해야만 인류는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한데 뭉치고 평화와 일치와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시공을 포함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세상 끝 날까지 인류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힘들게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과 무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인류와 함께 계시며, 그들의 생활과 외침으로써 당신 말씀과 기적을 대신하게 하고, 그들이 받는 수모와 수난과 고통과 죽음으로써 당신 수난과 죽음을 대신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힘들게 일하고도 천대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솟아나는 자각과 그런 자각에 투신하는 천대받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당신 삶을 살아가고, 당신 사명을 수행하고, 당신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다. 그러지 못하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억누르는 쪽을 편들면서 안이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중에, 입으로만 그리스도의 생각과 정신은 이러저러하니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하고 밤낮 떠들어 보았자 헛물켜기요,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으며 애당초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아닌 것이다.


사실 인류 대부분을 구성하는 제3, 4세계 민중(1, 2세계 안에도 그런 민중은 엄존한다.) 가운데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께서 오늘을 살아가고 계시며,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그들 가운데서 선택하신다. 소유와 소비생활 수준에서 그들과 동류가 되어 있지 않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 제자 공동체에 속해 있지도 않은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28)



연중 제14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에제 2,2-5)

<그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음을 인정하라>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때 나는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시편(122)

저희의 눈이 주 저희 하느님을 우러릅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


제2독서(2코린 12,7-10)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물 수 있도록 나의 약점을 자랑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마르 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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