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수복) 연중 제10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8-06-08 18:46:30
  • 수정 2018-06-08 18:56:22

기사수정



제1독서(창세 3,9-15) 해설

<아담(인간)이 죄를 지은 뒤, 유혹자는 철회할 수 없는 저주를 받고, 인간은 다시금 희망을 주는 말씀을 듣는다>


오늘 읽은 창세기에 의한 독서는 메시아적 예고, 다시 말해서, 구세주를 보내시겠다는 예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맨 첫 복음’은 인간(아담)이 자신의 불안정하고 비참한 처지에 관하여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


이 세상에 범죄와 악행과 병고와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분명한 설명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 악이 생겨난 기원과 원인은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를 살펴볼 때, 인간이란 존재는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닌 존재이며, 인간들이 취하는 그 선택에 따라 역사의 방향과 성격과 흐름이 결정되고 형성되어 간다. 인간들이 선을 선택해 나가면, 역사는 하느님께로부터 복을 받고, 악을 선택해 나가면, 역사는 악마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인간들이 악을 선택하여, 인류의 역사가 저주를 받아야만 할 지경에서도, 자비롭고 용서하는 하느님은 해방과 구원의 희망을 불어넣으며 인간들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신다. 


인간들이 한사코 악에 사로잡히는 자기네 비참한 처지에서 해방되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몸소 강력하신 당신 팔을 뻗치고 구원자 구세주를 보내주셔야 했다.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느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힘입어서만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시편(129) 해설 

<주님께는 자애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나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악과 고통과 고독과 죽음이라는 깊은 구렁 속에서 신음하여 주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고뇌에 차서 허우적거릴 그때, 하느님은 가장 가까이 계시며 구원하시는 손길을 내려주고 계신다. 주님은 정이 많고 자비로우시다. 하느님이 구원하려고 개입하시는 순간은 바로 인간과 인류가 자기네 스스로 힘으로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공포를 느끼는 그 순간이다.

 

제2독서(2코린 4,13-5,1) 해설

<이승살이에서 당하고 겪는 고통과 수난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다>


바오로는 사도로서 받은 자기 직분을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상태에서 수행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자기를 비움(하느님이면서 인간의 처지와 똑같은 인간이 되심)’과 ‘고난’에 깊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기 직분을 수행했다. 코린토 신자들까지도 바오로의 실패와 약점을 보고서 그가 받은 성소를 의심함으로써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바로 자기가 지닌 인간적인 약점을 앞세워 자기가 받은 성소가 참된 성소임을 입증한다. 즉 자기가 선포하는 복음은 결코 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기에게서 나오는 복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오로가 지닌 신념이었고, 그 신념으로 그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신념 때문에 바오로는 자기를 비방하고 모함하는 형제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도 내적 인간으로 변형되고 새로워지기를 기원했다. 이 같은 바오로의 생각은 다른 편지들 가운데서도 거듭 나타난다(참조. 로마 7,22; 8,18-25; 1테살 4,14; 1코린 15,20이하; 콜로 1,18; 2,12이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통하여 선포되고 전달되는 방식은 결코 우리의 유능함이나 지식이나 잘남을 통해서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는 원래 ‘무소유, 무능력’한 처지임을 철저하게 자인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선포되고 전달되는 것이다. 복음(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에 응답하는 인간끼리의 사랑)을 실천하여 전달하기 위해 겪는 고통과 박해와 죽음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이다.


복음(마르 3,20-35) 해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악령을 이길 권능을 받으셨음을 입증하신다>


히브리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세상은 악령에 사로잡혀 있고, 인간들도 제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악령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며, 마지막 시대에 선한 영이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을 다시금 선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예수를 두고 율법학자들은 예수에게서 선한 영의 증표를 보기는커녕, 예수님께서 더 큰 우두머리 마귀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비아냥거린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비웃음을 성령을 모독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당신께서 행사하는 권능이 사탄에 매여 있는 종살이로부터 인간들을 해방하도록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능임을 증명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행위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세상 안에 들어와 있다는 증표가 되고, 악마의 나라가 결정적으로 참패를 당하고 있다는 증표가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도 악령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다. 마르코는 이 논쟁 가운데 예수님의 친척들에 관한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 예수님의 동향인들과 친척들이 오히려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 극성을 부린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34절)라고 못 박아 말씀하신다.


우리는 먼저 자기 마음속에 도사린 악령(인간에 대한 무관심과 미움)을 그리스도를 힘입어 성령의 능력으로 쫓아내고, 사회 제도와 구조 속에 도사린 악령을 쫓아내는 데 헌신하고 생명을 바칠 일이다.


묵상


인류의 연대의식(일체감)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


범죄와 악행과 병고와 고통과 죽음은 항상 인간과 인류를 괴롭혀 온 문제이다. 동시에 인간과 인류가 겪고 절감하는 고독과 불안과 불안정은 결국 하느님을 찾아 나서도록 충동한다.


‘악이 무엇인지’는 인간 각자가 자기 내부에서부터 체험하고 자각하는 바이지만, ‘악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시원스런 답이 언뜻 주어지지 않는다.


창세기 첫 장들은 그 질문과 문제를 설명한다기보다는, 악에 시달리고 악과 씨름하는 인간과 인류에게 희망에 찬 전언을 제공하고 있다. 악은 결국 극복되고 분쇄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악은 선으로 극복되고, 죽음은 생명으로 극복되고, 슬픔은 기쁨으로 극복되고, 전쟁은 평화로 극복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인생 그리고 인류공동체의 역사는 투쟁하는 인생이고 역사다. 인간과 인간끼리 그리고 온 인류가 마음을 합하고 평화로이 나누며 함께 사는 인간관계나 가정이나 세상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각자가 마음속 깊이 도사린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와 자기과시욕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끊임없이 벌인 결과와 결실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통념・관습・제도・법률・구조・체제를 끊임없이 개선시켜 나가기 위해 벌이는 투쟁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악이란 무관심이요 외면이며, 싫어함이요 반감이며, 미워함이요 사랑하지 않음이다. 인간과 인류가 그런 악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다운 삶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죽음(생명을 바침)과 부활(승리)로써 그리고 당신 사랑으로써 악과 미움을 극복하고 이기고 쳐부수시었다. 그리스도다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인간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인간사랑’으로 굳게 결속된 인류공동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죽음을 거치고(목숨을 걸어놓고 미움을 몰아내기로 투쟁하고) 부활로 건너가는(자기 마음과 인류의 마음을 ‘인간사랑’으로 채워가는)것이다.


십자가 나무 위에 영광이 꽃핀다.


씨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싹도 트지 않고 많은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참조. 요한 12,24-25), 인간의 생명과 생애도 먼저 고통스런 투쟁과 죽음을 거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다른 인간들에게 좋은 영향(많은 열매)도 줄 수 없다. 바오로는 자기 자신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영광을 꽃피울 십자가 나무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바오로처럼 모든 그리스도인과 신자공동체 그리고 모든 인간과 인류공동체도 나날이 매순간 끊임없이 옛 것(악: 미움)을 버리고 새 것(선: 사랑)을 선택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한 나무를 이루도록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와서 인간과 인류에게 악과 미움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안겨 주셨다. 그 희망을 안고 있기에 그 어떠한 시련과 고통도 의미 깊고 적극적 가치를 지닌 창조적인 힘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악과 투쟁하는 데 생명을 바치는 사람들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생명을 받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 영광을 상속받고 나누어 받는다. 그 영광만이 인간의 참 기쁨과 행복이 된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악(무관심・미움)을 쳐부수기 위하여 고통과 박해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 자기네 집이 된다. 그 집에서 그들은 하느님과 형언할 수 없는 친교를 누리며 영원히 사는 복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집이요, 헌신하는 투쟁과 죽음을 거쳐 살아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집이요, 살아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다. 미움을 벗어나서 인간애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바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다.



연중 제10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창세 3,9-15)

<네 후손과 그 여인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시편(129)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나이다


제2독서(2코린 4,13-5,1)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복음(마르 3,20-35)

<악마는 끝장나리라>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