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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삼위일체 대축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6-09 17: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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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탈출 34,4ㄴ-6.8-9) 해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이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하느님’이시라고 명백히 밝히신다.


모세는 돌판 두 개를 다듬어 가지고 하느님께 올라가고, 하느님께서는 그 돌판에 그르칠 수 없는 결정적인 계명들을 새겨 주신다. 이렇게 윤리의 흔들릴 수 없는 기초가 놓이고, 죄를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고, 생명의 비밀이 드러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같은 법률 준수만을 차갑게 따지고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비와 용서를 무한히 베푸는 분이시다.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라는 개념은 성경에 자주 되풀이되고(시편 8,15 요나 4,2등), 요한의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다”라는 정의로 절정에 이른다. 그 같은 하느님의 개념은 모세와 다른 모든 도덕가들을 혼란에 빠뜨렸을지 모른다.


다니(3,52-56) 해설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이 구절들은 ‘세 젊은이의 노래’ 중에서 취한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벌겋게 단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타죽지 않고 창조주를 찬양하는 노래다. 53-56절에서는 성전, 케루빔이 지키고 있는 계약의 궤, 하느님의 옥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 것으로 알아들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천상 옥좌와 성전을 가리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2독서(2코린 13,11-13) 해설

<주 예수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구절들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의 마지막 인사에 나온다.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표시인 형제애에 관하여 몇 가지 권고를 한 다음, 바오로는 자기 편지를 받을 사람들에게 마지막 격려하는 말을 하며 성삼위의 은총과 사랑과 친교를 축원한다.


하느님 자녀로서 모든 사람이 서로 존경하고 위해주는 형제애를 실천하는 가운데 참된 기쁨이 우러나온다. 형제애의 기쁨은 성삼위가 누리시는 기쁨이고 인류가 되찾아내야 할 기쁨이다.


병신들과 영양실조에 걸리고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못난 사람들도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내 형제자매이다. 소수의 부자들과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나라들에게 재산을 나누고 능력과 기술을 나누어줄 때 인류는 형제애의 기쁨을 되찾을 것이다.


복음(요한 3,16-18) 해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보내신 것은 인류가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구절들은 예수님과 니코데모 사이의 대화 가운데 나온다.


니코데모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리를 실천하도록’ 예수님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있다(21절). 니코데모는 자기가 인류의 빛이신 분과 만나고 있음을 깨달았다(2.19절). 그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다는 것과 예수님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2절. 21절).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과 온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써 사람이면 모두를 당신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형제자매의 정을 나눔으로써 하느님께 효도를 바치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사실이 생명과 구원을 주는 진리이고, 인류를 전쟁의 멸망에서 구하고 단합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다. 이 진리를 따라 사느냐 마느냐에 각 개인과 인류 공동체의 구원이 달려있다.



묵상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지닌 신비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계시하신다.


구약은 절대주권을 지니신 유일하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었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계시는 생명의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마태 22,32),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 사랑하고 행동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흠숭을 요구하고 당신 외에 어떤 신성(神性)도 용납하지 않는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참조. 탈출 20,3). ‘태워버리는 불’같으신 하느님(신명 4,24), 그분 앞에서는 ‘그 누구도 맞설 수 없고’ ‘그 누구도 눈으로 뵌 적 없는’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요한 1,18).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 사람을 당신 모습 따라 당신을 닮게 만드신 하느님, 그리고 당신 피조물들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을 계시해 주었다.


구약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천상천하 모든 주권을 가지고 감히 근접할 수 없이 높으신 하느님, 그분의 권능과 거룩하심 앞에서는 땅도 떨고 산들도 숨을 곳을 찾는 그 하느님(시편 96참조)께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마치 친구에게처럼 말씀을 건네고 당신의 법률과 계명을 내려 당신 사랑의 요구를 표시하셨다는 데 있다. “너희 하느님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 우리 하느님께서는 자비롭고 인자한 하느님이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들을 상기시키면서 “이와 비슷한 일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불 가운데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을 하실 뿐 아니라,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여 ‘복된 땅’으로 인도하셨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인 인류를 악(이기심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고 불의에 희생되고 시달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무관심함)에서 건져 내어 인류단합(형제애의 기쁨,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이라는 넘치는 풍요를 누리는 상태)으로 인도하신다.


아들의 사명


구약의 계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올바른 사람들과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결정적인 구원자, 해방자를 보내 주실 것을 고대했다. 우리 인류의 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써 인류 가족을 당신의 자녀로 삼고 당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하느님의 자녀 되는 생명이야말로 사람을 참으로 사람 되게(인간 성취)하는 생명이요 인류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생명이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전적으로 똑같은 인간 조건을 취하심으로써, 그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바닥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고된 노동의 일생을 취하고 마지막으로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다가 사형까지 당하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 예수님을 아버지 하느님께서 부활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답게 살도록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예수님처럼 어떤 모양으로든 죽임을 당한 다음 부활의 영광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 믿는다는 내용은 지식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활실천에 있다. 인류가 공동으로 이용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재화를 사람이 만든 체제・제도(우상)를 이용하여 지나치게 소유하고 지나치게 소비하는 소수의 불의(不義)한 계층의 사람들은 이기심이라는 우상을 버리고 나눔의 정의(正義)로 돌아서야 구원받는 인류가족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소수의 불의에 희생당하고 있는 인류 대부분은 그 희생이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를 똑똑히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 희생은 바로 그 불의(不義)한 소수를 뉘우쳐 돌아서게 하여 하느님의 자녀인 인류 대가족에 동참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그들을 악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기 위해 인내로이 끊임없는 투쟁을 감행해야 한다.


아버지 하느님과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두 분 사이의 사랑 자체이신 성령께서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것처럼 인류도 한 형제, 한 가족, 한 마음, 한 몸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 




삼위일체 대축일 독서·복음


제1독서(탈출 34,4ㄴ-6.8-9)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돌 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니(3,52-56)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은 칭송과 드높은 찬양을 영원히 받으실 분이시나이다. 


제2독서(2코린 13,11-13)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와 은총을 내리시는 성자와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복음(요한 3,16-18)

<세상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보내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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