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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주님 승천 대축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5-26 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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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사도 1,1-11) 해설 

<예수님 승천으로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


사도행전의 첫머리는 루카 24,44-52를 존중하면서도 고유한 의미를 가진 몇 가지 특수한 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하여’ 40일 동안 나타나셨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완벽하게 교훈을 받았다는 뜻이다(40이라는 숫자는 완벽함, 충만함을 뜻한다. 율법 교사들도 자기의 가르침을 40번 반복하여 교육하는 습관이 있었고, 제자들은 40번을 들어야 그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증인’이 된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단어이다. 증인들은 교회(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의 초석이다.


그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는 시기로써, 성령께서 선물로 주어지는 순간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나타난다(6-8절).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지 않았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메시아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시리라는 사실은 교회의 희망에 속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백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구원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백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예수님의 변모 때(참조. 루카 9,30)와 파스카의 날(참조. 루카 24,4)에 이미 나타났었다. 그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심을 증언하는 두 가지, 즉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끝으로, 승천의 사건에 ‘구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것은 신현(神顯)을 가리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시작부터 끝까지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느님 자신 외에 다른 분이 아니심을 가리킨다.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제자들의 증언으로 드러날 것이다.


시편 (46) 해설

<하느님께서 환호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주님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왕’에 관한 이 시편은 하느님을 왕 중의 왕이시라고 노래한다. 귀양살이 뒤로는 이스라엘에 더 이상 군주가 없었고, 하느님께서 계속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되셨다. 나팔 소리가 성전에서 울려 퍼지는 전례와 행렬을 주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셨다. 나팔 소리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나타나고 십계명을 새겨 주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기념하고 나타냈다(참조. 탈출 19,1-20,1).


예수님 승천은 모든 사람·모든 백성·온 인류가 하느님을 흠숭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가는 위대한 행렬의 시작이다(이사 2,2이하; 즈카 8,20이하; 14,16이하).


제2독서(에페 1,17-23) 해설 

<그리스도의 승리 속에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이제는 교회가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야 한다>


바오로의 이 위대한 기도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예수님 승천의 신비와 직접 맞닿아 있다. 오직 성령께서만이 ‘승천’이라 부른 사건을 이해하게 해 주실 수 있으시다.


예수님 승천은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주님이시다(20-22절). 이 ‘주님 되심’은 분명 감춰져 있지만,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알아차릴 수 있다.


- 만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22-23절).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당신의 권능을 행사하여 온 인류의 주님이 되는 자격을 얻어 가시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는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온 인류의 주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님이심은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모든 사람·모든 백성)의 주님이시라는 증표요 보증이요 증언일 따름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커다란 교회가 되라고 부르고 계신다. 


- 끝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다”(23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와 모든 피조물이라야 가득 채울 수 있는 그릇과 같다는 뜻이다. 교회는 언젠가 온 우주가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안겨 오리라는 보증이 된다.


복음(마태 28,16-20) 해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동체 한 가운데 항상 살아계신다> 


이제 앞으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한 권위를 지니신다. 예수님의 권위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올바른 질서를 준다.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당신 제자가 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이 새로운 공동체에 참여하도록(세례) 부르심을 받고 있다. 새로운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살고 몸 바친다. 즉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25,31-46) 정의를 실천한다(3,15; 5,20).


마태오도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복음서 마지막에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을 이어받도록 초대한다. 자기가 복음서를 쓴 목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몸 바치도록 하기 위해 쓰여졌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떠난다. 갈릴래아는 소외당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고 부활하신 예수와 더불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바닥으로 내려가고 바닥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복음 선포의 출발점은 예나 지금이나 바닥이요 바닥사람들이다. 갈릴래아는 또한 이방인 나라들과 경계에 있었다. 이제 복음은 갈릴래아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백성과 모든 나라에 선포되어야 한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유혹을 받고 그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신다. 행복선언을 하신다. 영광스러운 당신 모습을 보여주신다. 이제 다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산에서 만난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 앞에 꿇어 경배한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 의심을 이겨 내고 예수님께서 죽임을 이기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목숨 걸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이루어 가는 사람들은 예수와 더불어 부활에 이를 것이다.  


마태오는 자기 복음서를 이미 처음에 한 말(1,23)로 끝맺는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즉 임마누엘로서 공동체 한가운데 항상 살아 계신다!    



묵상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


승천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에로 들어 높여지셨다.


예수님 승천이라는 사건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감각적 체험의 결론적인 국면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 전반을 완성하고 비추어 준다. 부활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을 나타내는 승천은, 루카 복음서 저자에 따르자면, 이미 예수님의 변모(變貌) 때에 예시된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의 탈출이요,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심이요, 당신 영광에 도달함이요, 당신 사제직의 충만한 실현이요, 당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하늘과 땅 사이의 관계

 

거의 모든 종교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늘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머무는 곳이요, 하느님의 거처요, 하느님의 고유한 영역이고, 한편 땅은 사람들의 영역이다(시편 115,16).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성령과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만나실 수 있지만, 사람은 제 힘으로 하늘에 도달할 수 없다.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 가까이 계시는 것 같으면서도 멀리 계시고 사람과 전적으로 다르신(사람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뜻) 하느님께 도달하려는 사람 자신만의 열망과 노력만으로는 항상 거짓된 환상에 떨어지고 만다.


사람이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고 사람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실 필요가 있었다. 예수님 승천의 신비는 이미 육화(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의 신비에 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 3,13)


그리스도의 승천은 곧 사람의 승천이다


예수님 승천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양되심에 속하여 있는 하나의 전체적인 구원 사건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그 나름의 고유한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에페 4,10; 1티모 3, 16; 히브 4,14).


원시(原始) 그리스도론의 몇몇 표현들이 예수님 승천에서 단지 예수님의 승리만을 보려고 하는 것 같지만(사도 2,33이하), 즉시 예수님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오신 세계로 되돌아가심’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 승천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그리스어 단어들을 보면 ‘하느님께서 데려가심’을 가리키고 있다.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몸소 올라가셨다기보다, 하느님께서 불러올리신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예수님께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 승천은 아버지께 순종하여 받아들인 죽음을 통과한 다음에 일어난 사건이고, 자기를 무화(無化)하고 나서 영광을 받으신 다음에 일어난 사건이다(필리 2,7이하).


승천은 그리스도의 존재 방식일 뿐 아니라 하나의 영원한 사건이다. 사람이 된 하느님의 아들은 당신의 사람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아버지의 품으로 되돌아가고 당신 영광에로 승천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동시에 전적으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안에 온 인류를 껴안고 인격화(人格化)하신다. 승천은 온 인류를 영원 속으로 들여보내는 사건이다. 승천은 하느님께서 인류를 당신 품속에 받아들이시는 사건이다. 인류와 인간성 안에 불어 넣어 주셨던 당신을 향한 열망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시켜 주시는 사건이다.


성경의 언어에서 하늘은 분명히 허공(창공)을 가리키거나,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장소를 가리키거나, 미래의 어떤 시간을 가리키거나, 어떤 꾸며 낸 가공의 것을 가리키지 않고,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의 초월성의 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들어 높여 주시지 않은 이상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께 도달할 수 없다. 하느님 아들의 신성에까지 올라갈 수 없다”(오리게네스, 요한 1,27주해) 오직 하느님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게 하실 수 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요한 14,2)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사람이 거룩해진다


하늘로 올라가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사람들과 똑같은 한 형제로 그분은 온 인류를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 즉 부모와 자녀로서의 관계를 맺어 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맺게 된 자녀로서의 친교는 아주 새로운 관계다. 아버지와 맺은 이 새로운 관계로 인하여 우리 사이에도 아주 새롭게 하느님의 똑같은 자녀요 형제자매지간이라는 관계가 생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정과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그리고 인류가 서로 아름답고 풍요하고 심오한 친교(親交)를 누리게 된 것은, 또 모든 사람이 내부 깊숙이 파고든 사랑의 신비로 길러지고 변형된 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과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총애하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총애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구체적인 인정(人情)으로 드러났다. 육화(肉化: 하느님 아들의 사람 되심)는 하느님 자신이신 은총이 베풀어진 첫 순간으로써 그 안에 이미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 승천은 우리 인류가 하느님과의 친교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되는 순간이며, 죄악의 일그러진 상태에서 구속으로 얻어진 순수한 새로움으로 올라가는 영원한 순간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우리를 형제들과 갈라놓은 이기심을 극복할 때, 그리고 마음속에 도사린 못나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무관심·피해감정·몰인정·수탈·박해를 걷어치울 때, 우리 자신을 남김없이 열어 보이고 친교를 나누고 헌신하고 바칠 때, 비로소 우리는 승천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우리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온 인류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려고 세상 한가운데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 놓았다”(묵시 3,8)


인류의 합심과 공동선을 위하여 자신을 개방하고 헌신하는 창조적인 행위와 거기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사랑은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인도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세상 한가운데서 합심과 친교와 고양(高揚)의 원천이시다.


이처럼 우리의 승천은 세상에서 이탈하는 승천이 아니고 세상과 더불어 올라가는 승천이다. 온갖 인간사에 철저하게 뿌리를 내리고 역사 안에서 고뇌하며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 모두 더불어 또 그 중에 하나로서 그리스도께 개방되고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올라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닫고 장애물을 만들지 않는 이상 끝이 없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아버지 곁에서 인류를 위해 전구하려고 승천한 그리스도께서 당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사업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 구원사업은 그리스도의 삶을 이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온 인류를 이끌어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주님 승천 대축일 독서·복음



제1독서(사도 1,1-11)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시편(46)

하느님께서 환호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주님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오르신다.


제2독서(에페 1,17-23)

<하늘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 오른편에 앉히셨다>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복음(마태 28,16-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내게 부여되어 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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