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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불교, 이래도 되는가?
  • 이병두
  • 등록 2016-05-10 11:19:52
  • 수정 2016-05-10 13: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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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월 29일 법보신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 4월 29일 한전부지 개발 인허가 중단 촉구 및 환수를 위한 삼보일배가 진행됐다. (사진출처=대한불교조계종)


2016년 4월 7일 오후 대한불교조계종 한전부지환수위(이하 ‘환수위’)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에서 천도재를 드렸다. 천도재는 본래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다.(곽철환, 「시공불교사전」)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세상을 떠난 이(亡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 의식을 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제단에 ‘망(亡)현대자동차·亡쏘나타·亡싼타페·亡그랜저·亡투싼’이라고 쓴 위패를 써서 세워놓고 제사를 진행하여 ‘현재 살아 있는 현대자동차가 하루 빨리 망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날 집회에서는 또 현대자동차가 “재산상의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개발 계획을 중단하라는 권선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4월 말까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현대자동차그룹의 모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국사찰에서 진행할 것”이라며 경고했다고 한다. ‘권선(勸善)’이라는 낱말을 이렇게 남용해도 되는지 궁금하고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문제가 되어 궁지에 몰린 조계종은 “생전예수재 의식처럼 현생 업을 미리 닦자는 취지”라며 해명했다. 4월 11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한전부지 개발계획 중단 촉구 기원법회 보완 설명’이라는 제목의 메일에서 “불교에서는 산 사람을 위해 미리 천도재를 지내는 의미로 전생 및 현생 업을 미리 닦는 생전예수재 의식을 지내기도 한다”며, “현대자동차 앞에서 치른 천도재는 현대자동차가 혹여라도 이 세상에서 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면 이 천도재를 통해 업을 잘 닦아 앞으로 더 많은 순익을 얻고 모두가 복 짓는 일이 되자는 취지”라고 해명하면서, “(현대자동차가) 한전 부지 개발 계획을 중단하는 것이 업을 잘 닦는 것이라는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정말 이래도 되는가? 사람이든 영리·비영리 조직이든, 어느 나라나 종족이든, 설사 내게 큰 해를 끼친 원수라고 할지라도 죽음의 위기에 놓이면 달려가 그를 살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거늘 그분을 믿고 따른다고 서원(誓願)한 제자들이 ‘마음에 안 드는 회사가 하루 빨리 망하기를 기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나도 봉은사 부지를 부당하게 정부에 빼앗겼을 것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계종 총무원장이 문화공보부 종무실 사무관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한 소리 듣고 그럴 정도로 불교의 위상이 형편없이 낮았다. 그런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 실세들이 전화를 걸어서 그리고 직접 불러서 압력을 넣었으니 설사 겉으로 드러난 절차가 합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강탈(强奪)당한 것이나 똑같을 터인데 최근에 드러나는 상황을 보면 절차에도 합법적이지 못한 점이 많다.


그리고 절차가 합법적이고 강탈로 볼 만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봉은사 소유 토지를 수용하고자 했던 본래 목적에 그 땅을 사용하지 않고 민간기업에 팔아넘기는 일 자체에 문제가 있다. 정부가 애초 목적했던 사업을 변경하여 이 부지를 팔기로 결정할 경우에는 봉은사가 그것을 되사들일 최우선 권한이 있으므로 입찰 공고에 앞서 맨 먼저 봉은사와 조계종에 의사 타진을 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전제국가가 아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당한 행정 절차이다. 정부의 토지 사용 목적이 변경되어 다시 봉은사로 되팔 경우에도, 현재의 시세가 아니라 1970년대 매각 대금에 통상 금리를 계산한 이자만 더(加)하여 그 땅의 원소유주인 봉은사로 되돌려주는 것이 정부가 관련 법규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모든 행정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이 책임은 서울시가 아니라 1970년대에 봉은사 토지 강탈의 주무 중앙부처인 상공부의 후신 산업자원통상부와 그 상위 기관인 국무총리실·청와대가 져야 하고, 봉은사와 조계종이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도 서울시와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이곳이다. 


시위를 하든 천도재를 지내든 천막정진을 하든(나는 이런 일에 ‘정진(精進)’이라는 고귀한 낱말을 쓰는 데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항의를 하고 투쟁해야 할 곳은 정부중앙청사와 국무총리공관·청와대 그리고 이들의 지휘를 받아 모든 것을 집행한 한국전력 본사 앞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의 여론은 매우 싸늘하다는 것을 조계종이 놓치면 안 된다. “저렇게 해서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수십~수백억 원 받아내려는 것 아니야? 돈 좀 받아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할 걸. …그런데 망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아…” 이런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게 여론이라는 그 점이 중요할 뿐이다.


굳이 평가하자면, 현재 조계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몇십~몇백억 원을 얻어내 종단 목적 사업에 쓸 수 있을 지도 모르니 전술(戰術)상으로는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다. 그러나 장기 전략(戰略)이라는 측면에서는 영점(零點)에 가깝다. 몇백억 원이 아니라 몇천억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일반 대중의 마음인 인심(人心)인데, 그것을 잃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심은 곧 천심(天心)이고 불심(佛心)이기도 하다.


하긴 전술상으로도 미숙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전력 본사 부지 매각 입찰 공고가 나기 전에, 아니 입찰공고가 난 뒤에라도 그 입찰 진행을 어떻게든 막았어야 한다. ‘입찰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어야 하고, 그때야말로 “우리 땅 강탈하여 부당 이득을 챙긴 한국전력과 정부를 규탄한다. 그 땅을 돌려 달라!”며 한국전력과 정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펼쳤어야 한다.


지금 세계 경기 하락으로, 해운회사들이 나락에 떨어지고 그 여파로 조선(造船)회사들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으로 몰리며, 철강 회사들도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아 가장 먼저 어려움을 겪을 이들이 누구인가? 회장·사장·전무를 비롯한 소유주와 경영진인가? 


아니다. 하청의 재(再)하청, 재재(再再)하청 중소기업, 그곳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맨 먼저 길거리로 내몰리고 다시 피라미드의 위로 올라가며 재재하청 중소기업의 주인과 재하청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사장, 본사의 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미 포항·울산·거제시의 모든 업종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 불교계가 앞장서서 누구를 망하라고 하지는 말아 달라. 더 이상 답답한 일 하지 말자. 희망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절망을 안겨주는 곳이 되지는 말라.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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