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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맹목적 신앙’
  • 이병두
  • 등록 2016-08-05 10:01:58
  • 수정 2016-08-05 10: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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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가 입원을 한 며칠 동안 아침마다 병원에 들러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곤 하였다. 누구든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만, 6인이 함께 쓰는 일반 병실에서는 나를 뺀 나머지 다섯 명과 그들의 간병인(대개 가족 중 한 명)들을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입원 생활이 힘들지 아니면 편안하게 할지 결정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입원에서는 치매(癡呆) 증상이 보여서 들어온 80대 노모와 그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50대 초반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거의 말씀이 없고 딸도 조용히 어머니를 보살필 뿐 시끄럽게 떠들어대거나 TV를 크게 켜는 식으로 이웃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모범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 눈길을 끈 것은, 어머니의 치매 진행을 막겠다며 기독교의 ‘주기도문(主祈禱文)’을 크게 써서 침대 옆에 붙여놓고 “엄마, 이 기도문을 읽고 쓰고 외우세요! 그래야 주님 가까이 갈 수 있고 치매도 막을 수 있어요”라고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딸이 시키는 대로 벽에 붙여놓은 ‘주기도문’을 우물거리며 읽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공책에 그것을 옮겨 쓰기도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치매 기운이 보이는 노인에게는 오히려 다양한 그림을 갖고 자꾸 그분의 기억력을 살려내 주거나 아들‧딸과 손자‧손녀 그리고 환자와 관계를 맺었던 가까운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을 자극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 딸에게 정중하게 말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 얌전한 딸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 엄마는 주님과 더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면 치매 같은 것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기독교 전도를 하려고 설득을 하기에 정중하게 사양하고 말았다.


나는 “사랑에도 좋은 방법을 쓸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그것이 가져올 이득보다는 폐해가 훨씬 더 크다”는 말도 한다. 병원에서 만난 그 딸의 경우에도 어머님을 위하는 마음이 아주 크고 자신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느님 세계로 인도하고 싶어 하는 그 돈독(敦篤)한 신앙심도 존중할 만하였지만, 어머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세계로 인도하는 방법은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님의 치매 진행을 더 빠르게 할 가능성까지 보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하였다.


그 착한 모녀를 지켜보면서 “이 선(善)한 신앙인을 이렇게 만든 이들이 누구일까? 잘못된 신앙의 길을 주입시켜온 이들이 누구일까? 그런 이들이 특정 종교에만 있을까? 오로지 자기 자신과 진리(Dharma, 法)에만 의존하라[‘自燈明 法燈明’]고 했던 불교에서는 과연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가르치는 이들이 없을까? ……” 등등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이리 고민, 저리 고민한 끝에 “불교 집안에도 그런 이들이 매우 많고 그것이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로 결론이 내려졌다. 맹목적인 신심(信心)만으로 무장된 불교도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교‧기독교(개신교)‧가톨릭 등 이 땅의 주류 종교들이 이웃 종교의 ‘좋은 점’은 닮지 않고 ‘나쁜 점’은 빠르게 닮아가고 있는데, 종교들 사이에서 ‘좋은 바이러스의 전파속도가 음속(音速)이라면 나쁜 바이러스의 전염속도는 빛의 속도(光速)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불교의 ‘나쁜 점’을 배우고, 불교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나쁜 점’을 배우며, 개신교는 또 불교와 가톨릭의 ‘나쁜 점’을 빠른 속도로 배워서 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하면, 나에게 ‘지나친 반(反)종교주의자’, 심지어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라고 공격을 해댈까?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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