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칼럼-이병두] 산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
  • 이병두
  • 등록 2017-11-10 18:19:54
  • 수정 2017-11-10 19:06:41

기사수정


▲ ⓒ 최진


지난해(2016) 3월 말 ‘여성 수도자들의 깨침이 필요하다 -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기사바로가기)이라는 칼럼을 써서 가톨릭 매체인 <가톨릭프레스>에 게재한 적이 있다.


가톨릭 여성 수도자인 수녀들을 향해서 쓰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이 글은 실상 불교의 비구니와 기독교(개신교)의 여성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어제(11/9) 책을 읽다가 106년 전인 1911년에 일본의 여류 시인 요사노 아키코가 쓴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는 짧은 시 한 편을 대하는 순간, “이것이 우리나라 주요 종교계의 여성 수행자와 성직자들을 위해 쓴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사노 아키코는 20세기 초반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나라들에서 남녀 간의 관계를 지진처럼 뒤흔들고 있는 변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

사람들은 내 말을 안 믿을지도 모르지만

산은 그저 잠시 잠을 잤을 뿐이다.

고대에는

모든 산들이 움직였다.

불꽃과 함께 춤을 추면서,

당신들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 이건 믿어야 한다.

잠들었던 여자들이 모두,

깨어나 움직이고 있다.*


이 시 마지막 구절 “잠들었던 여자들이 모두,/ 깨어나 움직이고 있다.”에서 ‘여자들’이란 낱말 대신에 ‘화비구니‧수녀‧여성 목회자들’을 넣고 읽어도 되지 않는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게 되었을 때, <새터데이 리뷰 : Saturday Review>의 편집자는 이것이 반역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 남성들이 영국을 수호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십만 명씩 죽어가고 있을 때” 의회가 “영국 정부를 여자들에게 넘겨주었다. (…) 집에서 편안히 살고 있던 여자들, 용기와 고생과 죽음이 이처럼 푸대접받은 적은 없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을 터인데, 이런 주장이 여성 수도자들에게 평등권을 주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티는 기독교(가톨릭 ‧ 개신교)와 불교의 남성 수행자‧성직자들의 태도‧심정과 똑같지 않았을까.


요사노 아키코가 “산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외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그런데 이 땅의 여성 수행자와 성직자들은 스스로 포기하고 안개처럼 사라질 것인가. 이제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산이 깨어나 크게 흔들어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 일본의 여류 시인 요사노 아키코.



* Laurel Rodd, “Yosano Akiko and the Taisho Debate over the ‘New Woman’”, in Gail Bernstein 편집, Recreating Japanese Women, 1600~1945(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p.180; 진화하는 결혼MARRIAGE : A History/ 스테파니 쿤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338 & 339쪽에서 재인용.


* 「진화하는 결혼MARRIAGE : A History」/ 스테파니 쿤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337쪽에서 재인용.











이병두 

(종교칼럼니스트·종교평화연구원장)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