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병두] 부처님은 성차별주의자였나?
  • 이병두
  • 등록 2016-04-29 11:09:37
  • 수정 2016-04-29 17:12:54

기사수정

편집자 주 ) 이 글은 태국의 일간 영자지인 『방콕 포스트(Bangkok Post)』 2006년 5월 9일자에 실린 메타난도(Mettanando) 스님의 기고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메타난도 스님은 태국 출신의 비구로 전직 의사이다. 태국의 출라롱콘(Chulalongkorn)대학과 옥스퍼드대학·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독일의 함부르그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님은 세계종교평화회의(WCRP) 사무총장의 불교관련 업무 특별자문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번역 - 이병두(종교평화연구원장) "


이 글은 불교여성개발원 기관지 『우바이 예찬』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여성에 대한 불세존(佛世尊)의 태도는 불교 자체의 본질, 그리고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한 인권운동을 불교가 지지하는지 아닌지’ 여부와 직접 관련이 있다. 불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지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할 수 있는 길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질문을 살펴보는 데 있어 ‘삼장(三藏; Tripitaka)’에 수록된 내용이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이 ‘삼장’은 세계의 다양한 종교적 가르침 중에서 내용이 가장 방대하다. 


부처님께서 여성에 대해 차별을 하셨는지 아닌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적 자료가 ‘삼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방법이 그리 간단치 않다. 불교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읽기’에 활용되는 방법에 주로 의지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숱한 전통적 불교도들이 그러하듯이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정확히 짚어가거나, 혹은 많은 현대 학자들이 하듯이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접근 방법을 쓰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비판적 분석과 ‘행간(行間)을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대부분의 종교 텍스트처럼, ‘삼장’은 여성의 지위에 대해 서로 상충되는 정보들을 제공한다. 여성에 대해 강력하게 차별을 하는 주요 근거 자료 가운데 하나는 ‘비구니 승가의 기원’에 관한 전설인데, 이 전설에 따르면, 당신의 이모이자 계모였던 프라자파티 가우타미(Prajapati Gautami)가 간청하는 ‘여성의 수계’를 부처님께서는 인가하지 않았다. 결국 부처님의 최측근 시자였던 아난다(Ananda)가 끼어들어 그녀를 대신해 중재를 하였다. 그 결과, 부처님께서는 일련의 특별 규정, 이른바 <비구니 팔경계법(Garudhammas)>을 제정하였는데, 이 규정에서는 여성의 수계에 대한 조건을 정해놓았으며 비구니들은 생이 다할 때까지 이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받았다. 


<비구니 팔경계법>은 다음과 같다: 


1. 계를 받은 지 100년이 지난 비구니라도 바로 그 날 갓 계를 받은 비구라고 할지라도 그를 존경하고 예를 갖추어 절을 올려야 한다. (비구들은 법랍에 따라 서로 존경을 표한다.) 

2. 비구니는 비구가 하나도 없는 거처에 머물 수 없다. (비구는 독립된 처소에 머물 수 있다.) 

3. 비구니는 보름마다 포살을 청해 비구의 지시를 받는 두 가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비구의 경우 의무적인 이 의식을 치르기 위해 비구니에 의존하지도 않고, 그 어떤 지시를 받으라는 요구도 받지 않는다.) 

4. 하안거를 마친 비구니는, ‘보고 듣고 의심이 갔던 것’에 대해 지시를 받기 위해 비구와 비구니 승단 양쪽에 모두 출두해야 한다. (비구들은 비구 승단에만 출두하면 된다.) 

5. 승잔죄(僧殘罪; Sanghadisesa)의 관련 규정을 어긴 비구니는 최소한 15일 동안 근신해야 하고, 복귀하려면 비구와 비구니 승단 양쪽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구의 경우에는 최소 근신 기간이 5일이며, 복귀하기 위해 비구니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 

6. 여자에게는 비구와 비구니가 함께 계를 주어야 하며, 2년 동안의 신청 기간이나 ‘육계(六戒)’ 수련을 받고 난 뒤에라야 계를 받을 수 있다. (남자들은 신청기간이 의무로 부과되지 않고 수계 의식도 비구들만으로 이루어진다.) 

7. 비구니는 비구를 비난·질책할 수 없다. (비구는 다른 비구를 비난·질책할 수 있고 비구라면 그 누구라도 비구니를 비난·질책할 수 있다.) 

8. 오늘 이후로 비구니는 절대로 비구를 가르칠 수 없다. 그러나 비구들은 비구니들을 가르칠 수 있다. (비구가 가르치는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 제한도 없다.) 


이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가 이 <팔경계법>을 외워서, 프라자파티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려 돌아갔다. 그녀는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여덟 가지 규정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기쁨에 겨워 말하였다: 


“<팔경계법>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자신의 미모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목욕을 하고나서 쟈스민이나 라이락 꽃다발을 손으로 받아 머리에 얹는 것처럼, 제 삶이 다할 때까지 어김없이 지켜나가겠습니다” 


여성에 대한 이런 차별 규정과는 별도로, 부처님께서는 “여성의 출가와 수계 때문에, 1000년이 지속될 이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 500년에 끝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것은 ‘삼장’의 다음 구절에 서술되어 있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을 뵈러 갔다. 한쪽에 떨어져 앉아 그가 세존께 “세존이시여! 마하파자파티 가우타미(Mahapajapati Gautami)가 <팔경계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세존의 이모님께서 출가하여 계를 받으셨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여인들이 가정생활을 포기하여 여래가 세운 교단으로 출가하여 계를 받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삶[梵行]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1000년 동안 남을 수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여래의 이 교단에서 비구니의 출가·수계가 일어났기 때문에 성스러운 삶(梵行)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진정한 법(眞法)은 500년밖에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 

아난다여! 어느 종교에서든 여인이 출가하여 계를 받으면 그 종교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 이것은 마치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집안이 도둑들에게 쉽게 무너지는 것과 같고, 쌀벌레에 한 번이라도 침해를 받으면 기름진 논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한 차례라도 녹병 침해를 입은 사탕수수 밭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진정한 법(眞法)도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 

아난다여! 물길을 막기 위해 큰 둑을 쌓는 것처럼, 비구니들이 자기들의 남은 인생을 실수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가 <팔경계법>을 제정하는 것이오.” (南傳 「율장(律藏; Vinaya Pitaka)」 II) 


전통적 교육을 받은 불교도들은, 물론 ‘위에 나오는 구절을 부처님께서 실제로 말씀하셨다’는 주장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구절이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열등하고 따라서 여자들이 불교의 전멸시키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직 한 가지 결론이 있을 뿐이다: “부처님은 성차별주의자였다” 하지만 불교도들에게 쓰기에 ‘성차별주의자’라는 용어는 너무 강하다. 설사 전통적인 불교도라고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부처님에게 편견이 있었다’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세상 만물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것이 우주의 진리이고, 이 조항들은 부처님이 메시지임이 확실하므로 <팔경계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팔경계법>의 메시지를 변호하려고 한다. 


근본주의적인 이 해석 때문에 불교도들은, 인권과 ‘성의 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서 소외되어 왔다. 불교는 이제 전 세계 인구의 반 정도를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불교를 사회 진보를 위한 해결책으로서 이해하기보다는 그 문제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불교에서 등을 돌려버린다. 


‘삼장’을 비판적으로 읽으면, 이 질문에 대답하는 또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 현대 학자들의 방법론이 이것이다. 그것은 여인에 대한 부처님의 태도가 어땠었는지 다양한 그림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삼장’의 다른 곳들의 내용에 따르면, <팔경계법>은 ‘자비’라고 하는 부처님의 근본원칙과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부처님이 하신 설명에 따르면, 남성성(男性性)과 여성성은 물리적 세계의 계속적인 소멸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 모습의 진정한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성(性)은 우리의 진정한 본질의 외적 발현에 불과하므로, 남자와 여자 둘 다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동등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게다가, ‘삼장’의 이 특정 부분 - 비구니 교단의 기원과 <팔경계법>에 관한 전설 - 을 ‘삼장’의 다른 부분들과 비교해보면 숱하게 많은 모순과 불일치가 발견된다. 예를 들면, 깨달음을 성취한 비구와 비구니들이 남긴 게송집인 「테라가타(Theragatha; 長老偈)」와 「테리가타(Therigatha; 長老尼偈)」를 보면, 비구니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성취한 비구가 있었고 그 결과로 이 비구는 그 비구니를 어머니처럼 공경하였던 적도 있었다. 이는 ‘비구니가 비구를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팔경계법>의 마지막 조항과 어긋난다. 


또한 “오늘 이후로”라는 구절은 그보다 앞서 비구들을 가르치는 비구니들이 있었으며, ‘부처님의 이름’을 내세워 그런 활동을 중단시키려고 그 규정을 공포하였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그 이야기의 뒷부분에 사용된 “둑”이라는 은유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그 이야기의 이 부분은, 쌀벌레와 녹병 침해를 받은 경작지를 보고 난 농부가 논과 사탕수수 밭을 그곳과 격리시키기 위해 쌓았던 ‘둑(제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농부가 해충을 알아보자마자 곧바로 ‘둑’을 쌓아야 하지만, 그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이 은유법의 사용은 ‘비구니 승단이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이 규정들이 정해졌다’는 주장에 반(反)한다. 이 여덟 가지 규정은 오히려 비구니 승단이 성립되고 한참 지난 어느 때인가에 만들어졌다. 이런 작은 의문점들은 “<팔경계법>의 전설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일부로 ‘삼장’에 가필(加筆)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팔경계법>은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젊은 세대 비구들의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삼장’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비구니들이 불교의 쇠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부처님의 열반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경전에 불법을 배우러 왕이 비구를 방문하는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부처님 재세 시 어떤 왕이 비구니 스님을 만나러 방문했던 사실은 세 차례 언급되어있다. 어떤 일화에서는,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이 부처님 면전에서 케마(Khema) 비구니의 교육 능력을 칭찬하기도 하였다. 그는 케마 비구니 스님의 가르침은 세존만큼 훌륭하다고까지 주장하였다.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에서는, 불법의 발전에 있어 비구니들이 비구들보다도 훨씬 더 활동적이었던 사실도 볼 수 있다. 비구들은 공동체 속에서 살기보다는 고독하게 홀로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비구니들은 좀 더 강력한 공동체적 결속을 갖고 있으므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된다. 어떤 단락에는 심지어 “와서 내 법문을 들어보시오!”라고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이야기를 했던 비구니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런데 ‘삼장’에서 그 어느 비구와 관련해서도 그처럼 적극적인 전도 의지 표현이 언급된 곳이 없다. 「테리가타」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들 중에서 ‘여성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종교 문헌’이었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 카운터파트와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였던 불교의 최초 역사 시기를 보여준다. 


‘삼장’에 흩어져있는 이 작은 조각들은 “부처님이 여자보다 남자를 더 편애하지 않았다”는 본래의 가르침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마자 성차별주의적 요소들이 불교 교단 속으로 들어가서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비구니 교단의 기원과 관련한 전설에서 틀이 만들어진 것처럼, <팔경계법>은 비구니에 대해서 통제력을 행사하기 위한 사회적 도구가 되었는데, 이들 비구니들 중 상당수는 탁월한 교육자(스승)였으며 비구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규정들은 단지 불교 정전(正典)의 일부로서만이 아니라, 15일마다 계속해서 되풀이 암송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비구니 승단에서 강제로 시행되었다. 비구니들에 대한 억압의 시기는 인디아에서 비구니 교단이 마지막으로 사라지기 전 몇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인디아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추었다. 부처님과 동시대의 영적 지도자였던 마하비라(Mahavira)가 세운, 불교의 자매 종교 자이나교(Jainism)와 불교를 비교해볼 때, 이 가설은 성립이 가능하다. 


힌두교도들, 그리고 후대에는 무슬림들이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도 이단으로 보았다. 불교 승단과 자이나 교단은 남자 출가자(비구)·여자 출가자(비구니)·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로 이루어진 똑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불교도들은 불상에 예배를 드리는 데 반해, 자이나교도들은 마하비라의 상(像)에 절을 드린다. 


그런데 인디아에서 불교가 사라진 반면에, 자이나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발상지에서 불교가 사라진 책임을 무슬림들의 탄압으로 돌리지만, 이 이론은 “무슬림들에게 두 종교가 동일한 입장에 처해 있었는데도, 자이나교는 어째서 파괴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한다. 중요한 차이는 여자 출가자(비구니)에 대한 대우에 있다. 자이나교에서 여자 출가자(비구니)는 불교에서처럼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자이나교의 여자 출가자(비구니)는 가르침을 펼치는 데 있어서 남자 동료와 동등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마하비라의 가르침에는 <팔경계법>과 같은 규정이 하나도 없다. 


이 분석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불교 교단에 있어서 성차별주의가 그 발생지에서 불교를 파괴하고 전멸시키는 데에 책임이 있었다”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마자 뒤 세대들이 저지른 업의 결과였다. 


성 차별 혹은 성차별주의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 어디에도 없다. 그분은 단 한 사람도 예외로 한 적이 없다. 우리는 “불세존께서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성차별주의의 업(業; Karma)은 스리랑카·미얀마·태국·라오스와 캄보디아 같은 대부분의 불교 국가들에서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남아있다. 스리랑카의 일부 교단에서만 여자들에게 수계를 한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곳에서는 여자들에게 계를 주는 것이 불법이다. 예를 들면, ‘태국 종교 재판소’에서는 “여자의 수계를 도와주는 비구는 그 누구라도 중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상좌부 전통에서는 대체로 <팔경계법>을 불세존(佛世尊)이 진짜 하신 말씀으로 여기며 충실히 따른다. 그 동안 상좌부 국가들에서 불교라는 종교는 인권과 사회 정의를 지지해오지 않았다. 교육 체계의 개혁이 하나도 없는 한, 이들 나라에서는 이 종교(불교)가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의 발전에 최대의 장애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