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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조고(趙高)들을 위한 변명
  • 이병두
  • 등록 2016-02-02 11:13:10
  • 수정 2016-02-02 12: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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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훨씬 지난 먼 옛날 중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춘추·전국의 장기 분열을 극복하고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완벽한 통일 왕조를 세웠던 진시황(秦始皇)이 사망하고 난 뒤의 일이다.


국정 시찰 중 사망한 진시황의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켰던 환관 조고(趙高)가 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亥)와 재상 이사(李斯)를 설득해 ‘힘을 합해 정권을 잡기로’ 합의하였다.


그에 따라 황제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고 당시 전방 사령관으로 나가있던 맏아들 몽념(蒙恬)에게 거짓 칙서를 보내 자결하도록 유도하고, 결국 무능력한 호해를 황제로 등극시킨다.


심각한 문제는 환관 조고의 욕심이 여기서 그치지 않았던 데에 있었다. 함께 힘을 합쳐 정권 탈취에 성공한 재상 이사를 숙청하고, 호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불후의 명작 『사기(史記)』기록에 따르면, 이런 일이 있었다.


호해를 바보로 만들기 위한 작전의 첫 단계는, ‘사슴(鹿)’을 궁정 안으로 끌어다 놓고 조고가 여러 신하들에게 묻는다.


“저것이 무엇이요?”

“사슴입니다.”

“저게 말(馬)이지 어째 사슴이냐? 저 놈을 당장 끌어내다 참수(斬首)하라.”


이런 식으로 몇 명의 목을 베고 난 뒤에는 그 누구도 “저것은 사슴입니다”며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고, “예, 저것은 말입니다”하며 조고의 비위를 맞추어 목숨을 부지하였다.


두 번째 단계로 앞에서와 똑같이 사슴을 어전에 끌어다 놓고 조고가 황제에게 묻는다.


“폐하, 저것이 무엇입니까?”

“경은 어째서 그런 걸 다 묻는다 말이요. 사슴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사슴…”

“폐하, 참으로 걱정되옵니다. 폐하께서 국정에 신경을 쓰시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하셨나 봅니다. 저것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옵니다.”

“아니, 무슨 그런 말을 …”


그러자 조고가 신하들을 불러들여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묻는다.


“저것이 무엇이오?”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예, 말입니다.”


“폐하, 폐하께서도 보고 들으셨듯이 저것은 말입니다. 폐하, 이제부터 국정(國政)은 제게 맡겨 두시고 폐하께서는 세상을 즐기시기만 하십시오. …”


사마천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다면, 이렇게 하여 거대 왕국 진(秦)나라는 환관 조고의 손에서 농락을 당하게 되고 몇 년이 안 가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에 직면해 결국 멸망하고 만다.


바로 이 이야기에서 “손가락으로 사슴을 가리키고 말이라고 한다(指鹿爲馬)”는 한자 숙어가 생겨났다. 그런데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속이는 일’이 어찌 2천 년 전 중국 왕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권력자 주변에는 항상 제 2, 제 3, … 제 10, 제 100, 제 1,000의 조고를 꿈꾸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최고 권력자 곁에 능력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한다. 그 차단 작업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권력자를 무력화시키고 자신이 직접 권력 장악을 계획한다. 오늘날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여기까지는 2006. 9. 27. 불교포커스에 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다(기사보기)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 필자) 환관 제도가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사람들 입에서, 아니 종이에 인쇄되어 오래도록 기록이 남을 신문에까지 “십상시(十常侍)가 권력을 오로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지,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교수신문이 뽑는 올해의 사사성어에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되면서 또 다시 이 혼용무도의 대명사로 호해와 그를 농락했던 환관 조고가 그 악명을 다시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 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요즈음 들어 ‘2천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왜 조고가 그리 욕을 먹고, 진나라를 멸망시킨 주범으로 인식될까? 억울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본래 권력을 지향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그 점에서는 성기능을 제거당한 환관이라고 할지라도, 아니 그렇기에 더욱 권력 욕구가 강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만 총칼을 휘두르거나 입과 글로 권력을 잡는 장군이나 정치인들과 달리, 환관은 최고 권력자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의 ‘귀와 눈을 가리고 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권력을 잡는 게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보면 조고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게 확실하지 않은가.


옛날의 조고와 중국 후한(後漢)말의 십상시(十常侍)들은 그렇다 치고, 요즈음 ‘십상시’ 평을 듣는 이들의 입장은 무엇으로 변명을 해줄 수 있을까?


간단하다. 이들이 가진 능력이 ‘최고 권력자의 귀와 눈을 가리고 열 수 있는’ 솜씨밖에 없으니, 그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다. 옛날에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듯이, 최고 권력자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국민들의 슬픈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여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세상에 군림할 수 있으니 타고난 자신들의 본성과 자질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권력자의 귀와 눈을 막으며’ 아부하고 권력자에 빌붙어 장난치는 일밖에 없는 불쌍한 조고들을 더 이상 욕하지 말자. 혼란의 책임을 조고들에게 돌리는 것은, 능력은 모자라는데 욕심만 넘쳐나는 어리석은 권력자의 책임을 회피시켜주는 바보짓에 불과하다. 그 조고들을 가까이 두고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조고의 훈육(訓育)에 물들어가는 혼용무도(昏庸無道)한 권력자를 비판하고, 그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훌륭한 인물을 찾아 그에게 임무를 맡기도록 하자.


그러나 조고들은 꼭 막강 권력을 가진 푸른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경제 성장을 외치는 재벌 회장님 옆에도, ‘문화 융성’을 외치며 문화 권력을 쥐고 있는 자타칭(自他稱) 문화예술인 옆에도, ‘불국정토(佛國淨土)와 하느님나라(天國)’를 입에 달고 사는 종교 권력 옆에도, ‘성숙한 시민사회’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독지가가 출연한 재산을 자신의 이익 채우는 데에 쓰기 바쁜 재단법인 이사장 옆에서도 숱한 조고들이 암약하고 있음을 잊고서 그들을 차단하는데 실패하면,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멍청한 권력자들 때문에 온 국민이 피해를 당하고 역사가 수십, 수백 년을 후퇴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필진정보]
이병두 : 문화체육관광부 전 종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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