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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삭막한 세상을 훈훈하게 녹이는 길이 있다.
  • 이병두
  • 등록 2016-02-01 10:07:35
  • 수정 2016-02-02 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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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0년 2월 《월간 설법》 에 게재했던 것을 수정한 글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수신문》에서 해마다 연말이면, 한 해 동안 국내외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과 사고를 반영한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선정해서 발표하고, 각 신문마다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옥스퍼드(Oxford)대학교 미국 출판부에서도 ‘올해의 단어’를 발표하는데 지난 2005년에는 ‘un-friend(친구 삭제)’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


‘un-friend’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1촌(一寸) 끊기’와 같은 의미로, 개인 간 교류 사이트인 페이스북 등에서 ‘친구목록 삭제’ 등에 쓰이다가 이제는 일상 대화체에도 쓰이기 시작한 신조어인데, 이 말이 ‘200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은 요즈음 세상이 얼마나 삭막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손짓 하나로 ‘친구 목록’에서 지워버리면 일체의 관계를 끊는다. 서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다투지도 않고, 헤어지고 난 뒤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퍼하지도 않는다니, 이 얼마나 삭막한가? 이런 추세가 넓게 퍼지게 되면 ‘친구 삭제’만 이루어지겠는가? 아마 ‘형제 삭제’ ‧ ‘부자(父子)관계 삭제’ ‧ ‘사제(師弟) 관계 삭제’ 등등도 그저 손짓 하나로 아주 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혹 동물 애호가들에게 몰매를 맞게 될지 모르지만, 아마 이런 삭막한 세상 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완(愛玩)동물에 빠져 드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애완’이라는 말에 ‘장난감’의 뜻이 들어있어서 이 말 사용을 피하고 ‘반려(伴侶) 동물’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다고 하고, 내 생각에도 ‘애완’보다는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는 쪽이 더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장난감이나 애완 용품으로 삼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느끼고 있는 일이지만, 현대의 세상살이가 사람들을 자기중심적이고 외롭게 만든다.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또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실제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정말 외롭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삭막하고 메마른 생활을 한다. 이렇게 고독을 자초한 현대인이 잃어버린 가족 ‧ 고향 ‧ 친구를 선물하는 게 바로 반려동물이라는 것이다.


40~50대 남편들이 우스갯소리로 “집에서 고등학교 3학년짜리 자식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아내, 그 다음은 강아지, 마지막으로 나”라고 스스로를 조롱하듯이 말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실제로도 “집에 들어가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건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앞에서 아양을 떠는 강아지밖에 없어!”라며 자괴(自愧)적으로 말을 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공간적인 ‘집’, 몇 억 원짜리 부동산으로서의 ‘집’(house)은 있어도 ‘가족’이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집’(home)은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동물’을 ‘반려자’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의 상황은 그렇게 사라진 ‘집’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말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동물과 대화하기’라고 한다. 우리 모두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이 보이는데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대화’에 굶주려있고 그래서 얼마나 외로워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반려 동물’ 증후군이다.


이처럼 인간관계가 메말라가고 가족 해체를 우려하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통하여, 뇌사 23년 만에 소생하고 이제는 컴퓨터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삭막한 세상을 훈훈하게 해준다.


2005년 11월 25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벨기에(Belgium) 출신의 40대 남성 롬 하우벤은 1983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무 반응도 없는 병상의 아들을 매일 찾아와 ‘대화’를 하며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의사들은 그가 “뇌사(腦死) 상태”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할 뿐,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울고 싶었고, 의사와 간병인들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대화하는 것도 들어서 의식(意識)으로는 의사들에게 항변도 하였지만 그 항변이 통할 리 없었던 것이다.


하우벤이 “뇌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료진이 처음 알게 된 것은 뇌사 2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벨기에에서는 뇌사 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 안락사(安樂死)가 허용되지만, 가족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뇌신경(腦神經)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족들의 이와 같은 사랑과 간청에 마음이 움직인 학자들이 PET스캔이라는 신기술로 그의 뇌를 검사했더니 “뇌사가 아니며, 의식이 있는데 몸이 마비돼 반응할 수 없을 뿐”이라는 충격적 검사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가족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전문 학자는 키보드(key-board)와 터치스크린(touch-screen)으로 의사소통 도구를 만들어주었고, 3년의 노력 끝에 이제 하우벤은 언론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러 뇌사 상태에 놓여 있던 22년 동안의 기억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의료계에서는 이번 일이 안락사 논쟁의 새로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친구 삭제(un-friend)’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정도로 삭막해지고 가족 사이에서도 ‘대화’가 사라져 이제 ‘반려 동물’이 아니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가까운 사람’이 사라진 이 삭막한 세상을 모처럼 훈훈하게 해주는 뜻 깊은 역할을 이 소식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부처님 당시 이질에 걸려 고생하며 자신이 싼 대소변 위에 드러누워 있는데도 돌보는 이가 하나도 없어 고통을 겪고 있던 비구가 있었다. 마침 비구들의 처소를 돌아보시던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아난다에게 물을 떠오게 하여 직접 물을 부어주시고 아난다 존자는 그 비구의 몸을 씻겨 주셨다.


그러고 나서는 비구들을 한곳에 모이게 한 뒤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는 돌보아 줄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소. 그대들이 서로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소? 비구들이여, 내 시중을 들어주고 싶은 사람은 병든 사람을 돌보도록 하시오.”라고 강조하셨다. (최봉수 역, 『마하박가』3, 216 & 217쪽)


부처님과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종교인들이 “108m 높이 부처님 진신사리 탑을 세워서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겠다”는 비(非)-불교적인 불사(佛事)와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103m 높이 탑을 세워서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기념하고 순교자 103위를 기리겠다”는 반(反)-그리스도적인 행위를 멈추고, 부처님과 예수님을 모시고 싶은 것과 똑같은 마음을 담아 이웃의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에 솔선수범한다면 ‘un-friend’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일도 없고, “반려 동물이 없으면 너무 외로워 못 살 것이다”며 울상을 짓는 그런 사람들도 없을 것이며, 날이 갈수록 자살률이 높아져 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필진정보]
이병두 : 문화체육관광부 전 종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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