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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타(聖打), 무엇이 문제인가?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8-10 14:44:22
  • 수정 2015-08-10 16: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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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가톨릭프레스의 ‘성타’ 기사가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관련기사 '성타(聖打)..가톨릭 신학생에 몽둥이질 웬 말인가') 조회수만 가톨릭프레스 내부 집계로 1만 이상이었고, 페이스북에서 공유되고 도달한 수는 2만 건 이상이었다. 그 기사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갔다.


예수는 폭력을 전혀 행하지 않았다고 가르치는 가톨릭교회에서 성타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으로 이미 충격 아닌가. 그런데 성타가 마치 관행처럼 행해졌고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다니, 신자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페이스북 댓글을 단 신부, 신학생, 신학교 생활을 그만둔 학생 등 성타와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의견은 이렇다. 다수의 사제들과 관련자들이 실명으로 성타 증언을 하였다. 그들은 성타를 직접 경험했고, 그 문제가 교회 내부에서 논란되었다는 것이다. 성타에 얽힌 여러 병폐로 인해 성타가 사라진 교구도 있고, 성타를 세족례로 변경한 곳도 있으며, 아직도 성타를 하는 곳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타가 한국천주교회에서 없었던 일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성타가 좋은 일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없었다. 앞으로도 성타를 지속하자는 의견도 없었다. 성타는 분명 있었고, 성타는 나쁜 짓이라는데 모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성타는 없었고, 있더라도 우리 문제는 아니며, 오래 전 이야기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이 간신히 내놓은 논리는 참으로 구차하다. 자신이 성타 체험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곳에서 성타가 없다는 말인가.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성타 분위기는 폭력적이 아닌 친밀한 분위기라고 미화하는 글도 있었다. 성타가 그렇게 당당한 일로 여겨진다면, 성타를 한국교회의 자랑으로서 전 세계 천주교회에 소개하고 교황청에도 진즉 알리지 그랬는가.


지난 일을 왜 지금 꺼내느냐고 말하는 글도 있었다. 성타가 과연 지난날의 일이고 지금은 전혀 없는 일인가.


가톨릭프레스는 확실한 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썼다. 지금도 미처 다루지 못한 자료들이 있다. 다만 자료 공개가 교회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염려하여 공개를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톨릭프레스의 인내심을 우습게보지 말기를 바란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비합리적인 반응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톨릭프레스가 진영논리를 펴고 있다며 억지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옐로우 어쩌고 하며 망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느닷없이 교도권 문제를 들먹이는 글도 있었다. 가톨릭이란 단어와 가톨릭 신앙의 내용을 혼동하는 글도 있었다. 그동안 가톨릭프레스가 올렸던 글 전부를 마녀사냥 하듯 근거 없이 매도하는 글도 있었다.


성타를 체험한 사람 중에 자책과 회한으로 깊은 침묵에 잠긴 사람도 있다. 성타 자료가 공개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고뇌와 한숨을 우리 가톨릭프레스도 함께 하고 싶다. 교회 안에 일부가 잘못하면, 교회 전체가 잘못하는 것이다. 교회의 공과에 따른 기쁨과 슬픔을 가톨릭프레스는 함께 한다.


우리가 성타 문제를 게재한 것은 교회의 적폐를 건강하게 지적하여 교회를 개혁하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현실의 교회 문제를 연구하면서 처방을 찾는 연구도 병행해야 함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성타문제는 사제들의 권력관계라는 긴 안목에서 보아야 한다.


성타는 한국천주교회 역사에 부끄러운 한 줄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기존 가톨릭언론도 공동책임의 일부를 면하기 어렵다. 앞으로 성타가 한국천주교회에서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성타에 대한 글을 다시 쓸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기를 가톨릭프레스는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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