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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대학살의 레드 툼
  • 최진 기자
  • 등록 2015-08-04 10:54:27
  • 수정 2016-05-11 16: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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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편집장) 마음이 무거우시죠? 우리는 마음이 무겁지만 저분들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전체가 무덤 같습니다. 아름다운 산을 보면 저 산기슭에 어느 분이 억울하게 숨져서 계실까? 저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 얼마나 많은 억울한 영혼이 죽었을지 말입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우리가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느님 나라로 돌아갈 때까지 전쟁을 겪지 않고 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그랬고 우리 자손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전쟁은 정말 뼈아픈 경험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영화를 만드신 구자환 감독을 모시고 몇 마디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구자환 감독) 안녕하세요.


-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 저는 국민보도연맹을 처음부터는 알지 못 했었습니다. 2004년도에 취재를 갔었는데요, 당시 경남 마산에서 유골이 나왔다는 제보가 있어서 국민보도연맹을 처음 들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저는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대학이라는 공부를 했었는데, 한 번도 국민 보도연맹이란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매장에 부역했던 분들도 자신들이 사람을 땅에 파묻었다는 이야기를 마을 밖에서 일생동안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름이 되면 외지인들이 피서를 오는데 그분들이 그걸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 계곡물이 시뻘건 핏물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저 사람들은 놀러오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국민보도연맹 사건 자체가 저도 몰랐고 대다수의 국민들도 몰랐습니다.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유족 할머니 두 분, 영화에서 울부짖었던 박상연 할머니, 개승만이라고 욕했던 승정수 할머니께 약속을 했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살아생전에 국민보도연맹에 대해 어떻게 좀 해달라고 부탁하셨으나,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영화로 만들어서 많은 분들에게 보도연맹 사건의 진실이 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과연 빨갱이였는지를 꼭 알려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가령 지금 희생되신 분들이 사상적으로나 법적으로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재판을 거치치 않고 바로 처형된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대부분은 이 사건에 대해 모를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 교과서에 나와 있나요? 안 나와 있죠? 또한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학교가 알려주던가요? 성당에서 교리시간에 가르쳐주었나요? 그렇다면 감독님, 희생자들 중에 신부나 수녀가 있었나요?


▶ 제가 확인해본 바로는 없습니다.


- 저 희생자들이 적어도 23만에서 45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지금까지 교과서에서도 안 나오고 국민들에게도 가르치지 않았죠?


▶ 이 사건 자체가 법원에서 판결을 내렸듯이 국가의 잘못이 인정된 사건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당시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을 만들었던 동기가 자신의 권력기반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지식인들을 자유주의로 바꾸기 위해서 만들었던 단체였는데, 그런 사람들을 한국전쟁 이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것을 밝힐 수 없었던 것입니다.


4.19 혁명 이후 1960년도에 전국 유족회가 구성이 되어서 유골을 발굴하고 피해자들 진술을 받았지만, 불행히도 1961년 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이 가장 먼저 했던 일 중에 하나가 국민보도연맹 전국 유족회 간부들을 잡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말대로 하면 빨갱이죠. 그러고 난 이후 그 분들이 사형까지 받게 되자 보도연맹이란 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 희생된 분도 한을 풀지 못하고 땅 속에 있겠지만 그 가족들도 죄 없는 죄인으로 그 동안 숨죽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노무현 정권 때 ‘과거사 진상규명회’에서 이 보도연맹 관련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까?


▶ 그 당시에 물론 조사와 연구를 했습니다만 시간적으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상규명회 활동기간 연장은 묵살 당했습니다. 진실화해규명회가 그 당시 조사된 것만 168개소의 매장지가 있다고 알아냈습니다. 그 중에 발굴 작업은 13개소 밖에 못했고 나머지는 발굴계획 중에 다시 덮었습니다.


- 이 영화를 만들면서 돈은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 촬영은 몸으로 뛰면 할 수 있었는데 영화 후반에 돈이 많이 들어서 인터넷 SNS에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영화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개봉을 해야 하는데 개봉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인터넷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123분이 1000만 원 정도의 성금을 모아주셔서 개봉이 가능했습니다.


- 우리 교과서를 보면,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가르치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가르치는데 보도연맹 학살은 교과서에 없지 않습니까? 이런 사건을 국민들이 알려면 종편방송을 봐야 합니까? 조선일보를 봐야 합니까?



▶ 영화자체가 거칠고 심지어 불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영화관에서 봐 왔던 영화들이 아니고 내용도 어둡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적습니다. 이런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역사나 사회활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입니다. 이런 영화 자체가 현 정권은 매우 불편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이승만을 국부로 부르는데 저는 이승만을 국부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학살자를 어떻게 국부로 인정을 합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애국자라고 칭하는 분들, 그 사람들도 학살자입니다. 그분들은 국가 유공자가 되어서 현충원에 묻혀있지만 분명한 학살자들입니다. 사실 상영 기회도 많지 않아 관심 있는 분들이 찾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보수 매체에서는 다뤄줄리 없습니다.


-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들이 우리나라 남쪽으로 와서 민간인을 학살한 경우도 사실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도 관변단체인 ‘자유청년회’, 경찰단체인 ‘경우회’, 이런 단체에서 인민군 학살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한 경우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이건 왜 그렇죠?


▶ 제가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를 했을 때, 젊은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인민군이나 일본도 학살을 했는데 왜 국군과 경찰들의 학살만을 강조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인민군이나 일본군이 민간인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배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군이 국민들을 학살한 경우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가 현장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인민군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민군이 민간인을 죽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보도연맹의 희생자들과 인민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는 비교가 안 됩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국군이 죽였어요. 또한 인민군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인민군에 대한 기억이 좋습니다. 인민군이 와서 처음으로 쌀밥을 먹었다는 증언도 있고 인민군 정규군은 학살한 적이 없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민간인 학살 사건을 크게 나누어 보면 가장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던 것이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입니다. 그 다음이 미군과 국군의 학살 사건입니다. 그 다음이 인민군에 의한 학살이구요. 그 다음이 부역 혐의에 의한 학살, 빨치산 활동하던 사람들이 민가로 내려와 쌀이나 음식을 빼앗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학살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방 좌·우익에 의한 학살이 있으며, 민간인 학살은 큰 의미로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제가 국민 보도연맹 사건을 다루는 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들의 학살을 감추고 우리나라가 나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학살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해방 후에 친일파들을 처단하고 처리하는 절차가 없었잖아요. 친일파들이 오히려 해방 이후에 남한의 주요한 자리를 맡은 것이 오늘날까지 한국의 방향을 크게 비틀어놓은 잘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천주교만 해도 일제의 앞잡이였던 노기남 대주교를 아직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회 신부로 계실 때 아르헨티나 군사독재를 겪었습니다. 그때 8만 명이 실종되고 죽었는데, 아르헨티나 군인들이 저항하는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그때 죽인 사람들과 죽임을 당한 사람들 모두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골로 간다’가 무슨 뜻이죠? 골짜기로 가서 처형한다는 뜻입니다. ‘물먹었다’는 무슨 뜻이죠? 바다에 빠뜨려서 죽인다는 뜻입니다. 우리 언어도 이런 역사적 사건에 의해서 모욕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상에 관계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지요?


▶ 제가 경남 지역 일대를 돌아봤는데요, 농민들이 대다수였고 일부 항일 독립운동가나 지식인 이 있었습니다. 사상과 상관없는 일자무식의 농민들이 대다수였습니다.


- 요즘 일부 언론에서 이승만을 국부라는 말을 하는데 아까 영화에서는 성을 ‘개’자로 바꾸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이승만을 나라를 세운 국부라고 생각하십니까? 학살을 한 악마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 제가 이승만에 대해서 취재하다가 우연치 않게 들은 정보는 이승만이 하와이 깡패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하였습니다. 하와이에 한인 단체에 가면 이승만과 관련된 자료가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옥수수 농장을 뺏기 위해서 깡패들을 동원하는 것도 직접 들었습니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도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승만이 국부라기보다는 자기 정치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학살을 자행했던 기회주의자로 봅니다. 나라를 세웠다고 해서 국부가 아니거든요. 저는 이승만이 학살자로밖에 안보여요.



- 화면에 보면 스님들이 많이 보입니다. 보도연맹관련 영화를 보는데 왜 경상도에서 희생자들이 많이 나왔죠?


▶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너무 파죽지세로 내려와서 서울부터 경기도 지역까지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낙동강 중심에서는 전선의 정체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보니 국민보도연맹을 중심으로 계속적인 학살을 하면서 후퇴를 한 것입니다. 어느 한 도시가 인민군에게 점령을 당하기 2,3일 전에 학살을 하고 떠나는 식이었습니다.


- 저는 우리 종교가 신도들에게 중요하게 교육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민족의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최근 해방 이후 역사를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을 종교가 일정부분 담당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언론이나 정부나 교육이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미에서는 성당에서 민족의 역사 교육을 많이 합니다. 현재 일어나는 나라의 사건의 진실을 말하기도 하고, 최근 역사의 아픈 면을 정직하게 가르치는 교육을 성당에서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것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 유대인의 역사는 가르치고 예수시대 역사는 다 아는데, 정작 우리 한국의 근대 역사는 모릅니다. 이러한 부분은 억울한 것입니다.

제가 사는 곳이 제주인데 제주에 가보니까 4.3 사건으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4.3 사건의 가해자는 북한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인데,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십시오.


▶ 서북청년단 구성을 보면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파나 종교인들이 북한에서 처형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남한에는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공을 중심으로 애꿎은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빨갱이를 많이 죽였다는 이유로 승진이 빨랐습니다. 서북청년단은 당시 엄청난 권력을 누리며 한 가정의 가장을 죽이고 그 부인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만행은 이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인류가 생긴 이후에 여러 종교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남은 종교가 몇 개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창시자 중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을 모시는 종교가 있는데 아시는 분 있습니까? 바로 우리 그리스도교입니다. 예수는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 역사에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종교 창시자가 목숨을 스스로 바칩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보도연맹 희생자들의 억울한 마음에 우리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이고 4.3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도연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류역사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학살이 있었습니다. 인류의 지혜와 문명이 가장 많이 발달했지만 가장 많은 집단 학살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인간의 품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까 영화 보면서 보도연맹 피해자들이 많은 경상도 지역에 절이 많고 스님들이 불공을 드리시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억울한 영혼들을 스님들이 위로해주시길 마음속으로 빕니다.


- 김포나 강화 쪽도 양민에 대한 학살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포나 강화, 경상도가 정치 성향이 보수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민주항쟁이 있었던 도시들, 마산이나 대구 같은 도시들이 굉장히 보수화 되어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광주 역시 보수화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학살에 대한 의미가 가위눌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학교에 한 학생을 본보기로 심하게 때려버리면 다른 학생들은 기가 죽어버립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학살이 자행된 이후에 말하지 못하는 시대 삶, 정치 성향이 묻어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이런 학살이 지금 현 사회의 정치 비중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수수께끼 중에 하나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투표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유골들이 충북대학교에 안치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임시보관이라는 것이 맞는데요, 현재 충북대에 있는 유골들은 그나마 보관을 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유골들은 발굴지의 컨테이너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학살을 당한 유해를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하는 나라는 없거든요. 유족들이 그나마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있지만 구청에서는 컨테이너를 빨리 치우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실질적으로 경남대도 그렇고 충북대도 그렇고, 갈 곳이 없는 유골들을 임시로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충북대도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시작할 때만해도 2년간만 유골 보관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 부끄러운 우리 역사가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유해가 발굴되어서 모셔진 유해보다는 어느 땅, 어느 바다에 흩어진 유해가 더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국가는 문명국가보다는 야만국가 같습니다. 우리 선배 어르신들을 어둠 속에 묻어두고 원혼을 달래지도 않은 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우리가 너무 미안합니다. 오늘 멀리 창원에서 여기까지 지난 10년간 영화를 만들어주신 구자환 감독님께 큰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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