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프레스 DB인류 문명의 역사는 대륙의 강인함과 해양의 유연함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지점에서 찬란하게 꽃피웠다. 그 정점에 바로 '반도(Peninsula)'가 있다. 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결절성(Nodality), 외부 세계를 향한 개방성,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방어 조건이라는 지정학적 혜택을 동시에 품은 땅이다.
그러나 반도 혹은 반대륙의 지형이 문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반도는 조건이지 결과가 아니다.
그리스 민주정은 평화로운 시절에 탄생하지 않았다. 지중해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 에너지가 문명이 된 것은 페르시아의 두 차례 침공이라는 존재론적 위기 속에서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설계하고 민회를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소멸하지 않으려면 시민이 직접 결정해야 했다.
로마 공화정도 다르지 않았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갈리아의 위협, 계급 간 내부 갈등이라는 삼중 압력 속에서 로마는 법체계를 정교하게 벼리고, 도로망을 깔고, 팍스 로마나라는 평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설계했다.
압력은 모든 문명에 있었다. 마야도 압력을 받았고, 청말도 압력을 받았고, 오스만도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반도의 결절성과 개방성은 압력을 정보로, 위기를 자원으로 전환하는 데 유리한 구조다. 문제는 그 구조적 유리함을 실제 설계로 이어가느냐다. 압력 앞에서 설계한 자가 문명이 되었다. 설계하지 않은 자는 그 문명의 재료로 사라졌다.
동방의 끝 한반도 역시 일찍이 고인돌 유적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일궈내며 문명의 발상지로서 잠재력을 증명해 왔다. 이제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돌아, 지중해와 대서양을 넘어 이곳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가 반도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이 땅이 정확히 '설계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조건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평화를 설계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한국이 평화를 향하는 것은 미덕의 문제가 아니다. 조건의 필연이다. 첫째, 지리다. 한반도는 전장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소멸하는 곳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대리전장, 북핵 위기의 최전선. 이 모든 구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그 비용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치르는 것은 한국 시민이다. 반도의 결절성은 평화 시에는 통로이지만, 전쟁 시에는 가장 먼저 불타는 교차로가 된다.
둘째, 에너지와 안전문제다. 한국은 핵지뢰 위에 앉아 있다. 고리·한울·한빛·월성 네 단지에 26기의 원전이 밀집된 이 나라에서 전쟁은 직접 원자로를 때리지 않아도 된다. 2026년 2월 경주 산불의 발화 지점은 월성 원전에서 직선거리 7~10킬로미터였다. 풍향이 조금만 달랐다면. 이 작은 사례는 한국이 얼마나 미세한 충돌에도 치명적으로 취약한 구조인지 보여준다.
셋째, 기술이다. 천궁-II가 구현한 직격 요격 체계는 상대의 발사를 감지하고 궤적을 계산해 요격하는 구조상, 공격자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작동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한국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방산 역량은 침략이 아니라 억제와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방어적 불가역성'이 한국 기술의 고유한 정체성이며, 한국이 방패를 나누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근거다.
지리, 에너지, 기술. 이 세 조건이 한국에게 평화를 의지가 아닌 필연으로 만든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의 압력 속에서 민주정을 발명했듯, 한국은 이 구조적 압력 속에서 새로운 평화 설계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설계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것은 평화만이 아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보면, 우리의 내부에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 있다. 정치 시스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갈파했다. "선거는 귀족정의 원칙이다. 추첨이야말로 민주정의 원칙이다." 현대의 선거는 주권자가 직접 결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포장된 엘리트 중 한 명을 선택해 모든 권한을 넘겨주는 '대리운전 계약'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대리인들이 게임의 룰을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급여를 국회의원이 정하고, 선거법을 국회의원이 정하고, 국회의원의 징계를 국회의원끼리 한다. 이것이 이른바 '셀프 입법 특권'이다.
한국 유권자는 지난 40년간 4년마다 평균 30% 이상의 의원을 교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판을 가해왔다. 여러번의 광장혁명도 거쳤다. 그런데도 정치판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기를 아무리 바꿔도 불판이 그대로이면 맛은 항상 질기다.
기후위기·AI 시대·에너지 전환·한반도 긴장이 동시에 밀려오는 초연결 사회의 의사결정 속도를, 5년에 한 번 운전사를 바꾸는 방식 그리고 4년에 한번 보조운전기사들을 뽑아 맡기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로마가 원로원과 민회와 집정관의 역할을 설계로 구분했듯, 우리도 대의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고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구조를 병행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이미 실험된 역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2004년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160명의 시민에게 선거제 개혁을 맡겼다. 11개월의 숙의 끝에 나온 권고안에 찬성률 91%가 나왔다. 아일랜드는 수십 년간 정치인들이 건드리지 못한 낙태권과 동성결혼 문제를 시민의회에 넘겼고, 시민들은 9개월 만에 결론을 냈다. 사회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정치인이 책임을 피해서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수용이었다.
▲ 2025년 5월 시민의회 국제심포지움에서 선언하는 시민들 ⓒ 시민의회입법추진100인위원회한국에는 이 실험을 가능케 하는 독보적인 자산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과, 광장에서 수차례 증명된 거대한 시민 역동성이다. 대만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신속한 합의의 기술을 보여주었다면, 한국은 오프라인 광장에서 응축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반도의 개방성이 외부의 기술과 제도를 흡수하는 데 유리하듯, 한국은 세계의 민주주의 실험들을 가장 빠르게 학습하고 가장 역동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민발안제의 실현노력과 함께 파일럿 시민의회를 준비하고 있다. 1천명이 1인당 10만 원을 모아 파일럿 시민의회를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150명의 시민을 추첨으로 뽑고, 이들이 실제로 선거제도와 의원 특권을 숙의해 개혁안을 만드는 실험이다. 분노의 에너지를 설계로 전환하는 것, 광장의 에너지를 숙의의 테이블로 옮기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이 시작하려는 일이다.
압력이 문명을 설계한다
그리스가 서구 철학의 뿌리를 내렸고 로마가 법치 문명의 기틀을 닦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특별히 위대한 민족이어서도, 반도라는 지형을 가졌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소멸의 압력 앞에서 그들이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는 대신 설계했고, 대리하는 대신 참여했다.
한반도는 지금 그 동일한 선택의 앞에 서 있다. 4강의 각축과 핵지뢰의 위험이라는 외부 압력, 셀프 입법 특권과 대의제의 한계라는 내부 압력. 이 압력들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그리스와 로마에게 그랬듯, 설계를 강제하는 힘이기도 하다.
방패를 나누고, 핵지뢰를 걷어내고, 시민이 직접 핸들을 잡는 민치제를 열고, 분단의 접경에 인류의 거점을 세우는 것. 이 네 가지 설계가 하나로 작동할 때 한국은 비로소 새 문명을 여는 주역이 될 수 있다.
결절성과 개방성과 방어력을 갖춘 반도. 그 위에서 압력을 설계로 전환하는 시민. 이 두 가지가 만나는 곳에서만 문명이 태어난다. 그리스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고, 이제 한국이 그 선택의 앞에 서 있다.
이 글은 <울산저널i>와 <불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