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종교를 둘러싼 변화는 이제 단순한 신자 수의 증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느냐가 아니라, 종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삶 속에서 어떤 위치에 두고 있는가에 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1983-2025’ 조사에 따르면, 지난 40여 년간 종교의 사회적 위상은 전반적으로 약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변화는 단순한 감소가 아니라, 종교와 사회의 관계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확장되지 않는 종교, 멈춰 선 영향력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은 뚜렷하게 변했다.
1980년대 약 70%가 종교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았지만, 2025년에는 이 응답이 24%로 줄었다. 반면 “과거와 비슷하다”는 응답은 53%로 절반을 넘었고, “감소하고 있다”는 응답도 23%에 이르렀다.
종교는 더 이상 사회를 이끄는 중심 동력이 아니라, 확장도 축소도 아닌 ‘정체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해됐다면, 지금은 그 영향력이 점점 일상과 분리된 채 머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종교인(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비종교인의 인식 격차다.
종교인은 여전히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개신교인 80%, 천주교인 70%, 불교인 61%가 종교가 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응답했다. 이들에게 종교는 도덕적 기준을 제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비종교인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비종교인의 68%는 종교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반감이 아니라, 종교를 사회적 갈등을 낳거나 시대와 어긋난 제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믿음은 약해졌지만 ‘초월에 대한 감각’은 남아 있다
초자연적 개념에 대한 인식은 또 다른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기적이 존재한다’는 응답은 57%로 과반을 유지했다. 그러나 천국·극락(44%), 사후 영혼(43%), 절대자·신(41%) 등 전통적인 종교 교리와 연결된 개념들은 절반 이하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이 종교의 교리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월적 세계나 설명할 수 없는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특히 ‘기적’에 대한 높은 응답은, 그것이 종교적 신념이라기보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이라는 일상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결국 이 같은 특징은 교리는 약화되었지만, 초월에 대한 감각은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명절 차례 문화의 변화 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유교식 차례를 지낸다는 응답은 53%로 줄었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은 35%까지 증가했다. 특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은 1992~2014년 10% 내외 였다가 팬데믹 시기인 2021년에는 32%로 급증했는데 이후에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은것이다.
차례는 특정 종교라기보다 가족 공동체가 유지해온 생활 속 의례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례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특정 신념을 따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 실천 자체를 지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종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 종교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서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에서는 영향력이 정체되고, 개인에게는 중요성이 낮아지며, 비종교인에게는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이 종교를 비판하거나 거부하기보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에서 제외된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 이전기사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