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반도 무력침공론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제기됐고 이후 1873년경부터 정한론은 절정에 올랐다. 이 무렵부터 일본은 실질적인 침략과 지배의 야욕으로 우리 민족의 숱한 인명을 빼앗고 국권을 유린해 왔다. 한국의 문화, 언어,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 탄압은 물론이거니와 억울한 죽음이 55만 내지 수백만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35년 동안의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단죄도 이루지 못했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의 친일 반민족 역사 청산이 겉돌고, 반복적으로 한국 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다. 과거사의 진실 규명과 청산은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 투명성,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모순과 비극은 일제 식민지 잔재 미청산에서 찾을 수 있고 여기서 새로운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역사 미청산은 친일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군림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친일 반역자와 그 같은 집단의 문제는 과거에 잠시 존재했던 역사가 아니다. 지금도 제국주의와 패권주의 그늘 아래서 굴절된 거대한 힘과 권력으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을 하는 데 두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첫 번째가 해방을 맞으면서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을 통해서 왔다. 두 번째 기회는 2004년에 반민특위가 와해 된 지, 50년이 지나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이 되면서였다.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당면한 문제는 일제 통치하에서 말살된 민족기능의 회복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자주 정부의 수립이며, 경제적으로는 민족경제의 안정과 부흥이었다. 먼저 민족정기 회복으로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처벌이었다.
▲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의 공판 광경. 악질이나 이름난 친일파의 재판이 열릴 때는 방청객이 넘쳐나 법정 밖 복도에서도 지켜봤다고 한다.그러나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처벌 문제는 여러 난관에 부딪혔고, 이승만이 반대하고 미 군정도 친일파 관료들을 보호‧육성함으로써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미 군정도 일제강점기 때 도지사에 속했던 도 경찰부를 독립시키는 등, 중앙집권화를 한층 강화했다. 이승만 정권은 이것을 이어받아 경찰 중심의 억압통치를 했다. 미 군정이 친일경찰 출신을 우대한 원인도 있었다. 미 군정 사령부 소속 경찰 책임자 마글린(Maglin) 대령의 “그들(친일경찰)이 일본인을 위해서 훌륭히 업무를 수행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라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군정은 친일파 비호와 관리 등용의 계기가 되었다. 더군다나 친일파들은 해방 뒤 재빨리 반공주의자로 변신해 사회 각계에 뿌리를 내리고 이승만 권력 주변에 똬리를 틀었고 결국 친일파 청산은 좌절되었다.
두 번째는 2004년 3월 22일 공포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근거하여 2005년 5월 31일부터 2009년 11월 30일까지 활동한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였다. 1948년부터 1년간 활동했던 반민특위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해산된 이후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문제는 수십 년간 논란이 되어왔다. 반세기가 지나 관련 법률안 제정 소식에 '제2의 반민특위'라 했다.
특별법은 2004년 3월 2일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고, 3월 22일 정식 공포되었지만, 법안이 미처 시행하기도 전에 7월 14일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당시 원내 1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이후 12월 29일 원안 일부를 수정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다음 해 2005년 1월 27일 정식 공포되었다. 법률의 시행령에 따라 2005년 5월 31일 출범하였다.
위의 두 위원회는 이름은 물론 하는 일도 비슷한데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처벌 조항의 유무이다. 반민특위는 친일파 처벌이 최종적인 목표였지만,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조기 해체되며 처벌에는 실패하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상규명이 목적이었고 2009년 11월 30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를 발간하며 해산되었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지배에 대한 역사의 진실 규명과 청산은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기록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일제에 의해 우리 민족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와 친일 부역자들이 어떻게 민족을 배신하였는지를 밝혀내 역사의 진실을 후세에 전해줘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미래 세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진실 규명과 과거의 청산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과의 반성과 사죄를 통해 서로 대화하고 과거의 아픔을 공유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내부 화해를 촉진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사회 분단을 해소하고 보다 공고한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의 정의롭지 못한 역사를 청산하는 것은 일제 지배시대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함께 인식하고 정의를 추구하면서 현재의 인권 존중 문화를 키우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억압의 피해자, 특히 일본군 성노예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중요하고 오늘날 인권교육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국제사회에서 역사를 진실되게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활용해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국제적 협력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신뢰성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친일 관련 기반을 둔 극우들은 더욱 기승를 부리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과거청산은 단순한 역사에 대한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 사회에 중요한 주제이다. 친일행위와 과거사 청산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며 한반도와 아시아 평화를 위해 소중한 것이다. 결코 반성과 청산만으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만이 아니다. 어떠한 류의 국가와 사회를 가질 것인가에 직결되는 절실한 오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공정성의 확립, 사회적 화해의 촉진, 인권의 존중, 국제적 신뢰의 구축,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과거의 진실규명과 청산은 불가결한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더 강하고 더 밝은 미래로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순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다. 국가는 진실조사를 위해 도대체 무얼 했나? 이제는 어느 한 정권의 노력에만 기댈 일이 아니다.
이젠 온 국민이 참여하는 진실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일본이 한반도에 발을 들여 놓던 시기부터의 만행을 낱낱이 조사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어떤 과오를 저지르고 오늘날까지 양국관계를 어떻게 해를 끼치고 대립을 야기시켰는지도 밝혀야 한다. 2026년 새해에 우리의 할 일이다.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불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