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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위험은 주권기관이 교차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 이원영
  • 등록 2025-10-17 16:30:13
  • 수정 2025-10-17 16: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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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산불로 송전망이 불타는 바람에 울진의 원전(핵발전소)들이 백척간두의 위험에 처한 일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는 외부의 전원공급이 차단되어도 폭발의 위험에 놓이는 것이다. 그 울진의 주민들로부터 며칠 전에 온 편지가 민들레에 게재되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2022년 3월, 울진을 덮친 대형 산불은 한 지역의 재난을 넘어 국가적 위기였습니다. 그날 불길은 강한 바람을 타고 한울원자력발전소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원전 보호를 위해 전국의 소방 인력과 장비가 집중됐고, 불길은 원전 부지의 ‘스위치 야드’ 인근까지 위협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불길이 원전을 넘지 않기를, 마을이 남아 있기를. 다행히 원전은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집과 밭, 삶의 터전은 불길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이 ‘시설 보호’에 쏠린 사이, 주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잿더미만이 아니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안전은 누구의 몫인가.’ 그 질문이 우리 마음속에 깊은 상처처럼 남았습니다.”


주민이 이토록 간절히 안전을 기도하고 상처받은 현장이라면, 국가에는 마땅히 이를 보호하는 장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원인을 조사하고 위기상황을 분석하고 안전조치를 강구하는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고 공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지나온 주민들을 위로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원전의 위험을 다루는 ‘콘트롤 타워’(지휘하고 통제하는 구심점)가 없다. 위험의 예방은 막고자 하는 열의가 필요하다. 단순한 거버넌스로는 사후약방문이 된다. 다른 부문은 몰라도 원전은 터지면 끝이다. 그렇건만 세계 3대 사고뿐 아니라 그동안 겪은 숱한 원전 현장의 크고 작은 위험과 문제들을 보면서도 이를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울진의 신한울 원전 건설 현장에서 암반이 나오지 않아서 내진설계가 불가능해진 사실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고 조사하지 않는다. 또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경주와 부산에서 방사능위험에 주민들이 암에 걸려도 사전조사나 예방에는 관심이 없다.


▲ 원전(핵발전소) 주변은 전기가 나가고 들어오는 송전망이 엄청나게 깔려 있다. 산불이 난다든지 해서 송전망에 이상이 생기면 원전은 곧바로 폭발의 위기에 처한다. 사진은 새울원전 주변현장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PRCDN)


예전부터 나온 얘기들을 열거하면 끝도 없다. 원전 내부의 변압기 불량품 납품사건, 그리고 원자로 격납용기를 불량으로 시공한 사건 등 각종 비리로 인한 위험이 있는가 하면 5년 전 마이삭 태풍이 불었을 때 정전이 발생하여 원전이 폭발의 위기에 놓였던 사건 등도 있다.


근래에 전력계통전문가가, ‘원전을 추가건설 해봤자 소용없다. 전력계통 한계로 블랙아웃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지적을 해도 들은 체 만 체, 건설허가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뜨거운 원전 온배수가 동해바다를 뜨겁게 달구어 산불위기와 여름가뭄을 불러도 실태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자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지독한 가을장마를 겪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원전위험은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중국원전에서 황해로 흘러나오는 방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터이고, 일본 정부가 핵폐수를 고의방류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주권자 입장은 배제된 채 상투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위 관심을 갖고 주권자 국민의 입장에서 위험을 감시하고 다루는 지휘체계가 실종된 것이다. 우리가 민주제 주권국가인지 어떤지를 되묻게 하는 행태다.


헌법을 보자.


전문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

헌법 제34조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때문에 아무리 국가 전체가 위기에 처해도 일언반구 말하고 챙기는 주체가 없는 것이다. 기껏 하는 말들이, 원전마피아에 세뇌된 정치인들의 원전 찬양 SMR 찬양이다. 이제 행정부 산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만 맡겨둘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아졌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원안위는 행정부 산하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비호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경주월성와 부산고리의 원전 주민들이 방사능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현저히 높은 암 발병률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주민들은 고통에 견딜 수 없어서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한다. 1심에서는 이겨도 2심에서는 진다.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왜 주권자 국민이 이토록 공권력으로부터 외면받아야 하는가? 1심에서 피해사실이 판명났다면 벌써 정부는 정신차리고 엄밀조사와 사전/사후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상식이다. 2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든 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주권자 입장에서 위험을 예방하고 감시하고 국민을 보호하려는 자세와 태도가 없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민주국가라 한들 신뢰가 실종된 것이다. 공자 말씀에 나라의 가장 큰 기둥은 신뢰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진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큰 원칙은 주권기관들이 교차감시를 한다는 것이다. 주권자들이 위임한 주권기관들이 교차감시를 하면 직접 감시하는 것 못지않게 안전의 확률을 높여 줄 수 있다. 우리는 오로지 임기제 대통령과 그 산하의 행정부만이 그러한 ‘위험’을 다루고 있다. 이 상황이 올바른 것일까? 헌법 제1조에도 규정하고 있듯이, 국민의 주권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다.


그렇다면 이 위험시설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제를 포착하고 대처의 방향을 잡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인 안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기술자들의 현장경험이다. 이름뿐인 안전대책은, 기술체계 혹은 조직의 복합성을 통제 가능한 것처럼 기만할 수 있다. 오히려 당사자인 기술자나 조직원들을 '안전 불감증'과 같은 위험한 행동으로 인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세계의 3대 핵발전 사고는 감시체제의 부실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 원전은 그 복잡한 시설의 어느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위험에 처한다. 그림은 원전모델 OPR1000의 내부 ⓒ한국수력원자력 (자료출처 = 환경운동연합)


우리가 주목할 만한 교차감시 사례는 프랑스다. 원전대국 프랑스는 원전의 전기공급 비중이 절반을 넘는데, 그만큼 위험에 대한 교차감시의 체제가 철저하다. 대통령제인 프랑스도 기본적으로 의회에게 원전관리 권한을 준다.


프랑스는 입법부인 의회 내의 OPECST(Parlementaire Office for the Evaluation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Choices, 과학기술평가청)라는 조직의 감시하에 1)행정부의 원자력시설(BNI, Basic Nuclear Installation)에 대한 주요 결정을 의회에서 행하여 하위의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2)행정부의 실행조직인 원자력안전기관(ASN, Autorité de Sûreté Nucléaire)을 두고 있다. ASN은 행정부 산하임에도 법적으로 규정된 독립행정기관으로 기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안전에 관한 규제, 인허가, 관리, 비상시 지원 등의 역할을 하며 원자력 안전관련 전체 조직을 총괄한다. 그리고 이 두 체제가 의회 산하라는 구조적 틀 속에 있다. 행정부의 집행에 대한 감시를 이중 삼중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랑스 모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원전의 숫자는 적지만 인구밀집지역의 원전밀집도로 보면 위험관리에의 철저한 대비의 필요성은 프랑스 못지않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반쯤 본뜬 감시체제이지만 ‘콘트롤 타워’ 격의 주권적 감시 체제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무엇보다 NRC(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핵규제위원회) 내의 감사관실은 연방의회가 직접 예산편성을 하는 등 독립적 활동이 보장된다. 우리의 원안위는 이와 다르다. 감사관이 위원장 산하도 아닌 사무처장의 산하에 있다. 조직체계로 보아 감시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이상하게 변형된 모조품이다. 주권자의 주도적 감시가 불가능하다. 이래서는 안전을 기할 수 없다.


독일과 일본도 상당한 수준의 교차감시를 하고 있지만 내각제이고 지역 차원에서 교차감시가 이루어지는 체제이므로 일단 참고만 하자.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프랑스 두 나라의 모델 중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 모델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안전시스템이 취약한 우리는 프랑스처럼 교차감시체제를 국회 내에 적극 도입해야 그나마 구조적 안전이 확보된다.


방법을 강구하자면 프랑스처럼 국회 내에 ‘과학기술평가청’을 두어 교차감시 하든지, 혹은 (가칭) ‘국정조사처’를 신설하고 산하에 ‘원전감시국’을 설치하는 방안도 있다. 즉, 국회의 입법기능을 보좌하기 위해 국회기구로 입법조사처가 있듯이, 국회의 국정조사 기능을 보좌하기 위해 ‘국정조사처’를 두어서 주권자를 대행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통해 확보하는 개별접근 정보로는 청문회나 하는 방식으로는 위험을 빠짐없이 체크해 낼 수는 없다.


감시를 제대로 하게 되면 법률의 미비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다. 감시에서 도출되는 ‘체계적 대책의 필요성’이야말로 ‘입법권’의 기초가 되는 법이다.


원래 원전과 같이 시대를 초월하여 민족의 생존을 좌우하는 위험시설의 도입은 국민이 직접 의사결정 해야 한다. 과거 독재정권시절에는 이를 생략했다.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숱한 나라들을 보라.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고 가까운 대만도 그렇다. 국가가 국민을 기만해왔던 원전이라는 존재에 대해 적어도 위험관리만큼은 주권자 국민이 제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에 대한 예우이자 의무다.


요는 주권자 국민을 제대로 대행해서 원전의 위험을 제대로 교차감시 하고 체계적 조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주도적으로 시정을 명령하는 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행정부 산하의 관련부서와 한수원 그리고 원자력안전위원회로 하여금 국회에 일상적으로 보고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번 울진 주민의 편지 내용과 같은 어려움과 위기도 미리 보살필 수 있다. 이 비좁은 국토에서 원전은 한번 터지면 국가와 민족이 위태롭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수원대 교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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