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는다'. 이 말처럼 4대강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말은 없다. 강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면, 광합성작용과 산소부족으로 유기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은 멀쩡하게 흐르던 물을 댐처럼 가둬 놓으니 쓰레기가 쌓이고 물이 썩을 수밖에 없다. 세상을 괴롭히는 녹조독이 생기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호수는 왜 맑은가. 그것은 순환하기 때문이다. 숲으로부터 맑은 물이 샘솟거나 시냇물로 흘러들어와서 어디론가 흘러 나가기 때문이다. 체류시간이 보통의 흐르는 강물보다는 길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는 속담대로 맑은 물이 흘러 들어오고 그리고 조금씩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4대강 공사처럼 강의 본류를 보나 댐으로 가두어 놓으면 지류의 생활오수들이 밀려들기 쉽다. 비가 오면 쓰레기가 흘러들어와 바닥에 가라앉는다.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혐기성 미생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약간만 수온이 올라도 쉽게 썩는 것이다. 최승호 피디의 역작 ‘추적’ 영화는 이 부분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모래강이 자연정화되는 원리
우리 강은 모래가 많다. 강물이 흐르면 모래도 흐른다. 모래에는 석영 등 여러 성분이 있는데 특히 장석이나 운모는 풍화되는 과정에서, 그 표면에 많은 미세한 공극들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런 미세한 공극은 물과의 접촉 면적을 넓혀서 모래층을 통과하는 물의 정화 작용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화강암반 지하수나 화강암 모래층을 통과한 물은 맛이 좋다. 상류에서 유기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와도 '모래 반 물 반'인 모래강 바닥에선 모래가 서서히 흘러가면서 웬만한 유기물을 안으로 받아들여 잘게 부순 다음에 섞인다. 말하자면, 자연적인 여과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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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화강암은 마그마가 땅속에서 높은 압력을 받으며 식은 암석인데, 이 암석층이 지각의 조산운동을 통해 수억년에 걸쳐 아주 서서히 지상으로 올라 온 것이 한반도 지형이다. 올라오는 도중 빙하기도 거치면서 온갖 풍화작용을 겪다가 단단한 놈은 북한산이나 도봉산 같은 바위산으로 솟구치고 약한 놈은 바스라져서 모래가 되어 흘러내리는 것이다. 우리 산들은 그래서 바위산이 많고 우리 강에는 모래가 많다.
모래강에선 여과와 침전이 동시에 진행된다. 모래의 수질 정화 작용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수돗물 정수장에서 부유물이나 미생물을 걸러내기 위해 필수 여과재로 모래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강물은 하도 표면을 흘러가기도 하지만 모래와 자갈층으로 스며들어 흐르기도 한다. 스며든 물의 부유 유기물은 모래와 자갈층에서 걸러지고 정화된다. 모래와 자갈층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수질 정화를 돕는 것이다.
런던 수도는 템스강의 물을 펌프로 퍼 올려서 시내로 급수했다는데, 19세기 들어서 강물이 심하게 오염되니까 모래를 구해서 여과장치로 이용하는 정화시설을 만들었다. 현대적 정수시설의 효시가 바로 모래여과였던 것이다.
독일은 모래여과로 콜레라균도 제거하였다고 한다. 1893년 엘베강의 물을 상수도로 사용하는 독일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였으나 하류에 위치한 알토나에서는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모래로 여과한 물을 급수하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라인강 하류지역에 위치하여 맑은 강물을 접할 수가 없다. 그들은 거대한 모래단지를 만들어서 그 위에 라인강물을 퍼다가 흘려보내면서 정화된 물을 상수원으로 삼았다. 그 면적이 자그만치 분당만한 규모다. 일부러라도 거대한 모래 정화장치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모래강은 맑은 물의 저장고
이토록 모래의 정수효과는 대단한 것이다. 모래와 같은 굵은 여과재료에서 왜 세균류가 제거되는가? 모래여과층에 미생물이 번식하여 세균이 제거된 것이다. 모래정수기로 실험해보면 면과 같은 천연섬유의 헝겊도 보름이 지나면 완전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생물학적 정화작용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다. 이런 환경이라면 수초의 떡잎이나 축산분뇨 등 웬만한 불순물은 충분히 분해하고도 남는다.
강바닥에 발목까지 잠긴 상태로 투명한 강물을 내려다보면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모래가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인다. 천천히 흐르고 있지만 확실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입자가 작은 흙탕물은 바다 멀리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데, 느릿하게 움직이던 입자 굵은 모래와 자갈은 큰 비가 내리면 급속하게 하류로 흘러간다.
낙동강 본류의 모래층과 모래톱은 탁해진 강물을 맑게 하는 '필터' 기능을 한다. 4대강 공사 이전에 측정한 자료에는 구미와 대구를 지나며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가 3.3ppm까지 나빠진 낙동강물이 최하류인 물금에서 2.8ppm까지 맑아졌다. 바로 이런 모래층 덕분인데, 그런 모래층이 '4대강 사업' 때문에 다 사라진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하천수 또는 저수지 물을 대량으로 퍼서 정수하지만,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는 하천 바닥의 모래 자갈층 속을 흐르는 복류수를 채수하여 수돗물로 이용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깨끗하니까 정수 과정에서 약품도 적게 쓰고 비용도 적게 든다. 그러니까 하천 모래층은 맑은 물의 거대한 저장고다. 영남주민이 목숨처럼 지켜야 할 모래강이다.
강물은 흐르면서 퇴적물을 바다로 운반하고 지표면을 침식하여 지형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암석이 물, 생물, 공기와 반응하여 풍화 작용이 일어나면 부서져서 여러 가지 크기의 입자들로 구성된 토양이 만들어진다. 비가 내려 산지의 토양이 강으로 쓸려 내려가면, 굵은 입자들은 물살이 빠른 곳에 자갈로 가라앉고, 작은 입자들은 물에 뜬 채 멀리 운반되어 평야의 범람원에 진흙으로 퇴적되거나 바다 개펄로 가라앉아 해안생태계의 보고가 된다.
우리 강처럼 아름다운 빛깔의 화강암질 모래사장이 잘 발달된 곳도 드물다. 석회질이나 점토질 퇴적암이 많은 유럽의 템스, 라인, 센, 다뉴브 강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거의 없다. 중국의 황하는 황토 지대를 흘러서 늘 누런색을 띠고 진흙이 많이 퇴적된다. 우리 강의 아름다운 금빛, 은빛 모래밭은 그 자체로서 보존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4대강 만행'을 저지른 이명박과 사실을 기만하는 자에게 가혹하게 책임을 물어야
이런 모래강을 이명박은 운하를 만드는 수심 6미터 유지 공사를 강행하면서 모조리 파괴한 것이다. 2010년 당시 한국을 방문한 이마모토 히로타케 명예교수(교토대 토목공학)도 증언한다. "낙동강의 치수가 목적이라면 저런 공사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운하를 위한 의도로 보인다. 지금 4대강 사업은 하천공학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운하계획이 아니고는 다른 목적을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홍수방지는커녕 위험을 초래함이 입증되었다. 김정욱 명예교수(서울대 환경공학)가 설명한다. ”홍수를 막으려면 댐이나 보를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의 상류에다가 건설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서처럼 강의 하류에다 ‘보’(댐 구조물)를 건설해서, 수위를 높여 놓고 이것을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우기는 것은 동서고금에 없다. 2020년에 기록적인 장마가 왔을 때에 영산강에서 일어났던 홍수피해는 4대강 사업으로 세운 죽산보, 승촌보가 수위를 높이고 물흐름을 방해하여 일어난 재해였다.“폭우가 쏟아지면 4대강 댐구조물(보)은 그대로 흉기로 둔갑하는 것이다.
4대강 공사는 강행이라기보다 '만행'이었다. ‘추적’ 영화는 다시금 이명박 만행의 뿌리를 상기시켜 준다. 그 만행의 결과가 영화에서 보듯 녹조독의 만연과 물고기의 무더기 시체다. 우리의 삶도 파괴되고 있다. 하루 속히 재자연화함은 물론이고, 동시에 그 파괴의 책임, 그리고 그 사실을 기만해온 언론과 관계자들의 책임도 가혹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남겨야 한다.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불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