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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 교회는 어떻게 볼 것인가
  • 강재선
  • 등록 2019-04-29 11:35:24
  • 수정 2019-04-29 17: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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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재선


지난 26일 서울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의료 민영화 문제와 교회’를 주제로 ‘교회와 세상’ 강연이 열렸다.

 

이번 강연에는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이 국제녹지병원 허가취소 사례를 들어 의료 민영화와 영리병원 문제 전반을 소개하고,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박동호 신부가 가톨릭교회의 관점에서 의료 민영화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의료 민영화 핵심은 의산복합체 조성과 이윤 배당


정형준 사무처장은 의료 민영화의 핵심인 영리병원 설립 목적이 병원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이윤을 취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의사 및 비영리법인에 한정되어 있으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은 병원 설립 주체가 될 수 없다. 영리 법인은 사업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배당할 수 있으나, 의료기관 설립자들의 경우 이윤을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배당할 수 없다. 결국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병원 운영에 반드시 재투자되어야 하는 셈이다.

  

▲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 강재선


정형준 사무처장은 관련 산업분야 대기업들이 대형병원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배당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한 의료생태계를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사무처장은 이러한 대기업들이 ‘의산복합체’를 만들어내 약품이나 의료기기 등의 사실상 독과점을 강제하고, 이윤을 높이기 위해 병원에 납품하는 물품의 수가를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특정 보험에 가입한 사람만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제한하는 등 이윤우선주의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의료 민영화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결국에는 의료 민영화가 의료의 질이나 의료접근성을 현저히 떨어트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녹지국제병원, 영리병원 개설 위한 법적 근거 만들려는 ‘시도’


정형준 사무처장은 녹지국제병원의 시작이 한국 의사가 중국 자본을 토대로 외국인 성형병원을 설립하려고 했던 시도와 한국 자본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전용 헬스케어타운 설립 시도였다는 점을 짚었다. 정 사무처장은 이 시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할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녹지국제병원은 이미 2015년 한국 자본이 중국이나 일본을 통한 우회투자로 국내에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에 더해 정 사무처장은 녹지그룹이 애당초 어디에서도 의료산업을 해본 적이 없는 그룹이었고, 국내 의료진이 병원 설립에 깊게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5월 녹지국제병원이 우회투자 의혹으로 1차사업계획을 철회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에 ‘VIP 지시사항’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문이 떨어졌고, 그로부터 5일 뒤에 녹지국제병원이 재차 사업계획을 제출하여 그해 12월에 문형표 장관이 재직이던 보건복지부가 이를 허가했다는 점을 짚었다. 

 

정형준 사무처장은 이렇게 의료산업이 영리화 될 경우 수익의 증대가 결국 국내총생산(GDP)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지표 상승을 염두에 두고 박근혜 정부가 영리병원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보수매체나 전경련 등이 영리병원 설립을 옹호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비영리적이고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행위로써의 의료 행위를 민영화하려는 시도는 과잉진료와 그에 따른 의료품질 저하 및 의료 서비스 차등화의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의료 특성상 의사와 환자간의 정보 불균형으로 인해 의사가 절대적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가 아무리 이윤을 우선하는 과잉진료를 권한다고 해도 거부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모든 사람이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 역시 사랑의 일종”


▲ 박동호 신부 ⓒ 강재선


박동호 신부는 의료 민영화가 사실상 “의료 서비스를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사적 재화로 전환해서 산업화하여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유 시장에 내놓으려는 시도로 읽힌다”면서 이를 민영화가 아니라 ‘영리화’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호 신부는 의료를 수익사업으로 만드는 행위가 자본주의로 인해 모든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책임과 능력의 문제로 귀결된다면서, 의료 민영화가 칼 폴라니의 ‘악마의 맷돌’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박 신부는 특히 “산업은 경제적 개념이다. (민영화는) 사람 몸과 관련된 것을 돈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프레임인데 (사람들이) 이를 너그럽게 봐주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하며 “사회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민영화 문제를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칠만한 문제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동호 신부는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에는 “사회·정치 차원의 애덕”도 있다고 강조하며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건강보험제도, 사회보장제도 등과 같은 제도나 법을 활용해 이웃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모든 사람이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 역시 사랑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영리병원 찬성 측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경제적 자유란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동호 신부는 경제적 자유가 절대적이 될 경우,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소비자가 되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경고했다.

 

의료인들 교육 방침도 돌아봐야


강연 이후, 녹지국제병원과 같은 영리병원 설립 시도에 대해 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정형준 사무처장은 영리병원 설립을 저지하는데는 영리병원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국민법감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의료인들이 의료의 공공성을 이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 사무처장은 지난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행정부원장직과 사제직에서 면직된 국제성모병원 박문서 신부 사례를 들면서, 한국에서의 의사 교육이 공공성을 교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정 사무처장은 국내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박문서 신부의 사례를 통해, 의과대학의 교육이 치료의학 중심으로 개별화되어 있으며 상품화되어 있고 의료의 테크닉만을 가르치며 의료 행위가 개인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만을 고려하는 교육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정 사무처장은 이를 일부나마 해결하려면 유럽 등지에서와 같이 의사 교육을 무료로 전환하고, 그 대가로 국립 병원 등에서 일정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서울대병원과 더불어 성모병원 등도 병상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인천성모병원 역시 “1,000개 병상이 되기 전까지는 가난한 사람이 찾는 좋은 병원이었다. 경쟁에서 승리해야 병원에서 뭔가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인식을 가톨릭에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강연에는 50여명의 신자가 참석해 매우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으며, 사회자로 나선 정평위 부위원장 이광휘 신부를 비롯해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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