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생존의 내일’을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였다
  • 문미정
  • 등록 2018-03-27 18:58:47
  • 수정 2018-03-28 15:29:56

기사수정


▲ 27일 오전 10시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과 함께 권력형 성폭력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 문미정


권력형 성폭력은 권력과 조직의 폭력에 의해 벌어지는 사회적‧구조적 문제


27일 오전 10시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과 함께 권력형 성폭력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국미투생존자연대(이하 미투연대)는 ‘폭로의 미투’를 넘어 피해자들 스스로 ‘생존의 내일’을 열기 위해 모인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비영리법인이다. 미투 이후에도 피해자들이 생존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존자’를 넣어 단체를 만들었으며, 현재 40명의 피해자들과 800여 명의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다. 


미투연대 남정숙 대표는 발족 선언문을 통해, 조직 내 ‘갑’인 가해자가 ‘을’이 성폭력 가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 카르텔을 형성해 ‘을’을 제거하는 2차 가해 형태로 보복한다면서, “권력형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과 조직의 폭력에 의해 벌어지는 사회적‧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 참석자들이 하얀 가면을 쓰고 ‘미투 화이팅! 위드유 화이팅!’을 외쳤다. 하얀가면은 같은 피해자 입장으로서 피해자들이 숨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피해자는 잘못이 없으며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문미정


조직 내에서 권력형 성폭력의 2차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주)STX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힌 실비아(가명) 씨는 권력형 성폭력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의 손실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실비아 씨는 2016년 3월 직장상사의 성희롱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하면서 부서장, 인사팀장, 대표이사와 산업은행에 성희롱을 신고하고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실비아 씨에게 돌아온 것은 업무 배제와 신고에 대한 질책‧징계였다. 사직을 종용하기도 했다. 인사팀장은 실비아 씨에게 노무수령 거부와 출근 금지, 위반 시 추가적인 인사조치를 통보했고 이후 실비아 씨는 복직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해자는 실비아 씨를 명예훼손과 무고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까지 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피해자는 고립되고, 조직과 ‘대등한 당사자’가 되어 조직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와 조직은 결코 대등해질 수 없다.


아동복지시설에서 근무했던 상담사 박경진 씨는 상담팀장이 시설 청소년에게 아동 그루밍* 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해 기관장에게 알리고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설은 이를 거부했으며 박경진 씨가 휴가를 다녀온 후에는 이탈 및 불안이 심해 상담사로서 부적격하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를 두 차례 열기도 했다. 이후 아이가 아파 휴직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해당 시설은 아동 그루밍 외에도 다양한 청소년 인권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시설은 이러한 문제를 방치하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은폐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2013년 중앙대학교 조소학과 재학 당시 가해자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한 A씨는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한 것을 보고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다. 다른 교수들은 피해 학생들에게 고소하지 말라고 만류했고 대자보를 붙이려 하니 학과 망신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잘 해결하겠다는 중앙대 인권센터와 학과 교수들을 믿고 고소를 포기하고 가해자의 미술협회 퇴출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은폐하고 방관만 하려 했다면서 가해자 교수는 학교는 그만뒀지만 여전히 전시회를 열고 각종 협회장에 선임되는 등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고 지적했다. 


▲ 앞으로 미투연대는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2차 가해를 감시‧개선한다. ⓒ 문미정


사례 발표 이후,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간에 대한 한국어 개념과 영어 개념의 차이는 ‘동의’라면서, 많은 영미법국가와 독일은 강간의 판단 근거가 상대방의 ‘동의’ 유무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동의’를 성폭력 기본 준거로 삼는다면 피해자가 ‘제대로 저항했는지’를 묻기 보단 가해자에게 동의를 ‘제대로 구했는지’를 묻게 될 것이라며,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를 대등한 인격체로 여기고 동의를 구하지 않은 행위는 그 어떤 것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일은 정말로 필요한 일


이 교수는 “‘동의’를 구해 이뤄지는 성관계만이 합의된 성관계로 인정받는 그 날까지 미투 운동은 계속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미투가 성폭력 피해 여성의 고발 운동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권력형 성폭력을 낳는 조직 문화를 바꾸는 사회운동이 돼야 하며 남성도 위드유가 아닌 미투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정미 정의당 대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도 참석해 미투연대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앞으로 미투연대는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2차 가해를 감시‧개선한다. 또한 ▲역사적‧시대적 증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기록 ▲수많은 케이스의 경험사례 통해 권력형 성폭력의 형태, 구조, 습관 등을 정리해 교육교재 제작 ▲새로운 유형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사업 등의 활동을 할 계획이다.


* 그루밍(grooming)이란 동물의 털 손질, 몸단장 등의 의미로 성범죄 유형가운데 어린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어 신뢰 관계를 형성한 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그루밍 성범죄’라 일컫는다. - 편집자 주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