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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성모병원 노조 홍 지부장의 호소문 - 2
  • 이상호 편집위원
  • 등록 2015-09-14 16:02:48
  • 수정 2015-09-14 17: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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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성모병원 사태 해결을 위해 바티칸에 가 있는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 지부장이 천주교 인천교구 신부들한테 보내는 ‘호소문’(탄원서)을 가톨릭프레스에 보내왔다.


가톨릭프레스는 이 장문의 호소문이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몇 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홍 지부장의 호소문 – 2




4. 문제는 이런 일들이 이번이 처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2012, 2013년에 이어 이번까지 총 40명의 관리자 및 부하직원들이 모두 20회에 걸쳐 일대 다수로 저에게 집단 괴롭힘을 가했습니다.


2012,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에 병원은 정부가 정한 임시공휴일을 무시하고 정상근무를 한다는 방침을 공지하였습니다. 우리병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보건의료노조 150개 병원 중 유일한 병원이었습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6시까지 해야 하는 투표에 적어도 아침 730분 정도까지는 출근해야하고 저녁 6시가 넘거나 다 돼서야 퇴근하는 직원들로서는 사실상 투표참여가 불가능한 것이 명백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노조 지부장으로서 병원측에 선거권 보장을 위한 휴무실시 요구 공문을 보내고 직원들의 선거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노조 소식지를 배포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전산망 그룹웨어에 지부장 명의의 소식지를 공지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부서장과 중간관리자들이 4~5명씩 떼를 지어 근무 중인 저를 중앙로비로 불러내고, 심리상담실 빈 방으로 데리고 가고, 간호부로 호출하고, 일하는 중에도 부서에 들이닥쳐 동료들과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 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니 당장 나가라, 간호부 뒤통수치듯이 뭐 하는 짓이냐, 왜 데일리 메디(언론매체)에 제보 했느냐며 전혀 사실관계도 아닌 일들을 일방적으로 덮어씌우며 위협하고 윽박지르고 야유하고 모욕했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었습니다. 12명이 돌아가면서 하루에만 4차례에 걸쳐 집단 괴롭힘을 가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병원은 즉각 허위사실 유포와 업무용메일 무단 사용을 이유로 저를 징계 했습니다.


2013, 노조는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병원의 독재경영체제와 불합리한 정책들에 문제를 제기하며 독재경영 중단, 단체협약에 보장된 여성생리휴가 지급, 4년간의 임금동결로 cmc최하위 수준이 된 직원들의 임금인상, 노조탄압 중단등의 요구를 내걸고 <2013</span>년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교섭>을 위한 파업을 결의하였습니다. 말이 파업이지 병원의 극심한 노조탄압으로 최종 남은 조합원 16명의 동의하에 심각한 병원문제들을 어떻게라도 좀 해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절박함의 분출이었습니다. 적법한 절차로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접수했습니다. 또한 파국으로 가기 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천교구 노동사목을 찾아가 도움도 청했습니다.


병원 부서장과 중간관리자들은 이때도 역시 삼삼오오 조를 짜서 벌떼 같이 달려들어 무섭게 저를 집단적으로 괴롭혔습니다. 어느 부서 팀장은 직원들을 모아 놓고 저에게 이 들어가는 심한 욕설을 하라는 지침을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부서원을 모아 놓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팀장이 이런 지시를 하는 것을 보고 직원들은 충격이 너무 커서 어찌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화장실을 다닐 때에도 저를 에워싸고 따라 다니고, 직원식당을 오갈 때는 제 뒤통수에 대고 지부장씩이나 되가지고 지 밥그릇만 챙기는 주제에!”라는 험담을 퍼붓고, 간호부 팀장은 저를 아침기도모임 때 높은 사람들(행정부원장신부님, 간호부장수녀님) 옆에 서 있어야 한다며 억지로 끌어내는 등 차마 여기에 옮길 수 없는 일들을 조직적으로 벌였습니다. 이런 행위는 총 24명이 10차례에 걸쳐 벌어졌습니다. 병원은 이번에도 병원의 명예훼손, 직장질서 문란, 직원에게 병원에 대한 적대감 유발등의 이유로 저를 중징계에 처했습니다.


저는 이런 집단괴롭힘이 발생할 때마다 병원측에 즉각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동시에 행정실장과 인사노무부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직접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으나 모두 허사였습니다.


반복적이고 잔인했던 집단괴롭힘은 저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1년 내내 원형탈모증이 자리를 옮겨가며 다발성으로 생겨났고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증오와 분노, 불안, 불면, 우울 같은 정서적 증상들이 심해지고 급기야 심각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고민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막상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끝내 정신과는 가지 못하고 저는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저 스스로와 많은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안정과 평화를 이루었다고 느꼈을 때 이들은 다시 저를 똑같은 방법으로 괴롭힌 것입니다.


다시 가해진 충격의 여파는 기존의 잠재상태들과 뒤섞여 엄청난 파장으로 저를 덮쳤습니다. 불안증이 극도로 심해져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항불안제를 처방 받아 그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처참한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들에게 과거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들을 얘기하며 제발 그만 좀 괴롭히라고 해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출근길에 병원 앞 신호등에서 신호 대기 중 하루 종일 또 시달릴 생각이 머리에 꽉 차오르더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혈압이 치솟는 게 느껴지고 숨이 가빠지면서 급기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고 말았습니다. 이후로도 스트레스성 설사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기력 쇄약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결국 정신과 주치의의 진단으로 3개월 병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이 뭐라고. 제가 단지 노동조합간부만 아니었어도 이런 꼴이 됐을까. 잔인하고 끔찍한 시간들입니다. 저는 이제 병원이 너무 무서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당장 병원에서 나가야 하는 존재’, ‘이 들어가는 욕을 들어야 하는 존재’, ‘보는 것만도 지긋지긋한 존재’, ‘밥값을 하는 누구네 집 개 만도 못한 존재’, ‘지옥 가는 지름길에 있는 존재’, ‘시도 때도 없이 우르르 몰려와 괴롭혀도 되는 존재’·····무수한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5. 인천교구에서 병원경영을 시작 한지 올해로 꼭 10년째입니다. 성모자애병원을 인수하여 경영을 시작하던 초기, 병원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경영진은 여러 가지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경영 정책들을 펼쳤고 이는 병원을 단기간에 확장하고 일으켜 세우는데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시작이 없었으면 모를까 병원경영을 시작 한 이상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한 경쟁은 가톨릭병원이라고 예외 일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오히려 종교기관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더 특색 있고 강력한 경영논리가 작동되는 모습을 지난 10년간 저는 무수히 목격 해 왔습니다. 냉정한 경쟁이 작동되고 성장발전을 위한 정책들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저와 노동조합도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자 운명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조합활동 역시이 중요하고 불가피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히 철통같은 인식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미 인천교구가 새로 경영을 맡기 전부터 이곳에는 노동조합이 있었고 절반의 직원들이 조합원으로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쓸어버려야하는 장애물이 되었고 결국 그렇게 쓸려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벌어진 이 비극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병원을 사랑하는 직원의 한 사람입니다. 성인이 된 후 삶의 대부분을 전적으로 함께한 소중한 공간입니다.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자부심 넘치는 애정으로 병원을 위해 일 해 왔습니다. 단지 여느 직원들과 다른 점이라면 누군가는 꼭 해야만 했던 한 가지 일을 어찌하다보니 제가 일정 시간들을 해 왔다는 것만이 유일한 점일 뿐입니다. 상상컨대 저도 노동조합활동 없이 간호사 일만을 해 왔다면 이미 후배들이 더 많이 올라 있는 어느 단계의 관리자 지위에 있을 것이라는 점에 한 치의 거리낌도 의문도 없습니다.


병원을 사랑하고 위하는 길은 관리자와 직원 구분에 있듯이 자리와 처지에 따라 다릅니다. 그 점에서 저는 제가 서 있는 자리와 방법에 대해 병원 경영진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개원 60주년 기념미사 강론에서 최기산 주교님은 인천성모병원이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과 치유를 통해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병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학노 몬시뇰님은 기념사를 통해 “60년 역사를 디딤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가자고 밝히셨습니다. 유흥식 주교님은 2015 노동절담화문에서 노동조합은 공동선 증진을 위한 중요한 연대활동이고 노동조합의 헌신적 활동이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의 신성한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가톨릭 기업인들은 부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일상의 삶과 기업 경영의 실천을 분리시키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경영, 노동자와 가족의 존엄성을 보장하며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앞장 서자는 호소도 함께 있으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에 두 사건의 진실 어디 있는 것입니까. 저와 우리병원 노동조합은 어디에 있습니까.



6. 신부님! 저는 두 딸아이의 엄마입니다. 나이 50넘게 세상을 살았고, 어찌하다보니 노동조합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졸업 후 누구나 그랬듯이 남들처럼 병원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였습니다. 농사짓는 평범한 집안 6형제의 가운데 딸로 동생들을 위해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3년제 간호전문대학을 나왔습니다. 덕분에 학생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민주화의 꽃이라 불리는 87년에 노조가 만들어 졌지만 정작 노조활동도 89년에서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스물셋 꽃 같은 나이에 입사하여 임상 간호사 일과 노동조합 일을 번갈아 하며 지금까지 우리병원과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삶의 마디마다 제가 처한 상황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가치들을 선택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세상을 살아 온, 그저 평범한 50대 여성의 삶의 여정입니다.


저 같은 민초들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유혹과 위협, 갈등과 타협들이 넘치는 세상인가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가족들을 보살피며, 살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신과 그 공동체를 위해, 소박하지만 진정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50대 중년의, 사회적인 한 사람- 그 독립적 존재 자체로 존엄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그 누구로부터도 굴종을 강요받거나 함부로 취급받는 존재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으로 폭력과 억압이라니요. 제가 오늘 투쟁하는 선명한 이유입니다. 신부님께 이 글을 올리는 진실한 이유입니다.



7. 국제성모병원 사건은 경찰수사결과 의료법위반으로 병원장을 포함한 의사 15명과 팀장 2명 등 17명이 입건되어 검찰로 이관된 상황입니다. 집단 괴롭힘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구제신청을 하여 조사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병원은 단 한마디, 단 한 번도 정직한 입장과 책임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도 저를 모함하는 온갖 흑색선전물을 만들어 날마다 직원들에게 공지하고 병원 외부에까지 입간판을 세워 인신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제 호소문은 아예 직원들에게 전달도 못하게 물리력을 동원해 다 빼앗고, 일체 받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715일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이글을 쓰고 있는 중에 받았습니다.


신부님! 도와주십시오! 백척간두에 선 자는 떨어져 죽거나 진일보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 10년 저는 이미 너무 많은 가시와 상처로 심한통증을 가슴에 안은 채 백 척 장대 끝으로 내몰린 처지가 됐습니다. 저를 이곳에 몰아세운 어떤 힘들도 저 스스로의 자신도 이젠 너무 두렵고 무섭습니다. 정신과 몸의 힘을 잃고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기꺼이 저의 존엄을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향한 발검을 떼고 나아갈 것입니다. 지칠 대로 지친 저로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길고 지난한 길이 될 것 같습니다. 단지 소중한 일상과 제 삶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일일뿐인데 어쩌자고 저는 이렇게 저의 온 존재를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신부님! 저의 걸음에 한 발자국만 동행 해 주십시오. 깊은 울림으로 가장 큰 힘과 용기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712


홍 명 옥 드림



덧붙이는 글

호소문 - 1은 관련기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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