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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새로운 사회사도직 형태 [이신부의 세·빛] 아시아 복음화의 엔진, 협동조합 운동 이기우 2024-04-26 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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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토요일(2024.4.27.) : 사도 13,44-52; 요한 14,7-14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세족례의 가르침에 이어서 매우 중요한 계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요한 14,9)이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하나로서 일치되어 존재하심을 뜻하는 이 말씀은, 따라서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려는 구원 사업의 전권(全權)을 지니고 계시다는 뜻도 됩니다.


이 전권주장은 당신이 성부 하느님과 일치하여 존재하신다는 신성(神性)의 진리와 함께, 당신 제자들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신적 권능을 행사하시겠다는 현존(現存) 보장의 진리를 아울러 천명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현존 보장의 진리는 전권주장이 뜻하는 신성의 진리보다 더 어마어마하게 들리는 다음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즉,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요한 14,12)이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의 능력이 갑자기 위대해져서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되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이 성령으로서 제자들 안에 현존하시며 일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현존 보장의 진리는 성부 하느님과 일치하여 계시는 존재로서 당신의 이름으로 제자들이 청하는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도록 중재하여 주시겠다는 중재(仲裁)의 진리를 포함합니다. 실로 엄청난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공식 기도는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결문으로 마칩니다.


사회와 교회의 최근 변화에 나타난 시대의 징표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여러 분야에서 사도직 성소를 받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매우 주목할 만한 사도직 운동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협동조합’이라고 부르는 공동체 운동의 사도직이었습니다.


비록 그 이름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고 생소해서 사도직으로 응답하기에는 세속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성령의 깨우침도 있었듯이, 중세의 커다란 변화 속에서 더욱 어려워져만 가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선구적 그리스도인들이 창안한 협동조합은 온전한 믿음을 구현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던 새로운 사회사도직 형태입니다.


그리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지난 세기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회고하는 가운데,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사도직 활동으로서 노동조합 운동과 함께 협동조합 운동을 특별히 언급하였습니다. “노동자 생활의 조건들을 향상시키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 조직해야 할 생산 협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 신용 협동조합, 향상시켜야 할 대중 교육, 직업 교육, 참여해야 할 기업체 생활과 일반 사회 생활의 다양한 형태와 같은 수많은 활동을,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기억해야 한다.”(회칙 ‘백주년’, 16항)


이러한 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서로가 함께 지내며 가진 것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 놓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함으로써 사기지은으로 나타나는 부활의 은총을 구현하는 공동체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한 발현 사건이었습니다.


탐욕이라는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고 나눔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상하게 하지 못함의 은총을 받았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빛남의 은총을 받았으며, 자신들도 가난했던 코린토 공동체의 교우들이 대기근을 만나 궁핍해진 예루살렘 공동체의 교우들을 위해 헌금하여 나눌 정도로 빠름의 은총을 받았고, 이런 전통이 로마 제국권 내에 널리 퍼져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통공과 연대의 흐름으로 거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마저도 이겨낼 수 있었기에 사무침의 은총까지 받은 발현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근세 이후 유럽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였던 소수의 선구자들은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와 사도직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이들의 헌신적 창안 덕분에 오늘날 유럽에서 전체 경제물동량의 10%를 넘는 규모를 차지하게 된 협동조합 공동체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되었음을 수치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본주의 기업들이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에서도 유럽의 협동조합 공동체들은 조합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신뢰가 작동하기 때문에 매우 안정된 운영을 해 왔습니다. 또한 협동조합 공동체들은 자본주의 기업과 달리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지 않고 사회적 공동선에 기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룩한 수익과 수입의 일부를 모아 비영리 목적으로 활동하는 공익 단체에 기부하는 전통을 수립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신뢰를 받고 있는 이 협동조합원들이 앞장서면 일반 시민들도 따라 하기 때문에 사회적 반향이 큽니다. 사회적 공신력과 호소력에 있어서 유럽 가톨릭 주교단이 움직이는 힘보다 더 크게 보일 정도입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라든지,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국제 NGO들의 활동이 그 대표적인 결과입니다. 그들의 공익 활동으로 인해 지구촌의 공동선이 보호되고 증진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양 떼의 반응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유럽이 종교적으로는 쇠락해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본산임을 말해주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1990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동선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난한 이들이 자립하고자 하는 크고 작은 시도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였던 2012년에는 협동조합 기본법도 제정되어서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이들이 신앙인이 아닌 경우도 많아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신자들이 포함된 경우라 하더라도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신용 의식은 없이 그 혜택만 보려 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십중팔구입니다.


하지만 사도직 활동이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협동조합 방식을 통한 사도직을 포함해서, 성령으로 현존하시어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을 인간관계에서나 사회적으로 온전하게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 덕분에 그분보다 더 큰 일도 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피시디아주의 안티오키아에 있는 회당에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일부 유다인들 – 이들은 아마 회당장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이었을 공산이 크고, 게다가 바리사이파였을 공산은 더 큽니다. 그래서 바리사이였다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고 더구나 선교사로서 활약하여 성과를 얻게 된 것을 시기하여 박해를 저질렀을 것입니다 – 로부터 쫓겨나서 이코니온으로 가게 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쫓겨난 처지인데도 이 두 사도와 이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도의 다음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사도 13,46).


즉, 바르나바와 바오로에 의해서 모처럼 시작된 선교 활동이 이방인 선교라는 더 명확한 목표를 성령께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쫓겨나야 했던 박해 상황은 원치 않았던 고난이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교회 역사의 향방을 결정짓게 된 이 성령의 이끄심에 대하여 두 사도만이 아니라 신생 그리스도 교회 전체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게”(사도 13,52) 되었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요한 14,9)이라는 엄청난 계시 진리를 들은 것과에 비견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일정한 선교 성과와 함께 박해라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속에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시대의 징표를 발견하고 식별한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두 사도는,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2-13)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으므로, 그 기쁨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이미 검증된 사회사도직 활동을 복음화의 도구로 삼아 선교함에 있어서도 두 사도가 보여준 믿음과 활약을 크게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하나로 일치하여 계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이 이루어 주시겠고, 당신을 믿는 사람은 당신이 하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4,12-13) 그야말로 신성 안에 머무르고 또한 이를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보장해 주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 그리고 역사적인 사도직 징표에 관해서 오늘 미사의 화답송이 제격입니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시편 98,1.2-4)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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