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위기의 시대, 신앙의 길을 찾다’를 주제로 토마시 할리크 신부의 강연회가 서울 마리스타교육수사회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강연회는 우리신학연구소,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신앙인아카데미가 공동주관했으며 100여 명의 참석자들이 함께 했다.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민주주의를 넘어 친밀함의 문화를 만드는 일
토마시 할리크(Tomáš Halík) 신부는 1948년 체코 프라하 출생으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교회는 공산주의 정권의 통제와 박해를 받고 있었다. 할리크 신부는 비밀리에 신학을 공부하고 1978년 동독 주교의 개인 경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할리크 신부는 공산주의 정권의 감시를 피해 자신의 개인 아파트에서 강의를 하거나 영성수련을 지도하는 등 11년간 ‘지하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며 “당시 저와 함께 했던 일원은 우리가 억압받았던 경험을 성찰하면서 훗날 박해가 완화되거나 사라질 때, 교회의 향후 활동을 위한 전망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할리크 신부는 체코와 한국의 교회는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서,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체제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문화”라면서 “우리에겐 민주주의 문화를 지속해서 육성하고 심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민주주의 문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역할은 도덕적 설교를 하는데만 있지 않다면서, 세상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정의를 추구하고 모든 사람을 통합하는 열린 사회를 건설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감, 연대하는 모범을 보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과학기술은 모든 거리를 극복했지만 어떤 친밀함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친밀함의 문화를 만드는 것, 즉 세계화 과정을 상호 소통, 존중, 협력의 과정의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할리크 신부는 그리스도교가 이 위대한 역사적 과업을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서,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를 깊이 쇄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계신 예수님 찾아야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세계 과정의 정점 단계는 인류가 의식적이고 자유롭게 ‘파괴하지 않고 통합하는 유일한 힘’을 향해 나아갈 때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샤르댕 신부는 이 힘을 사랑으로 보았다. 사랑은 자기초월을 통한 자기실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결정적 순간이 바로 지금 일어나는 중이라고 믿는다며, “이 쇄신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 요청으로 시작됐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교가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로 전환하는 것, 즉 교회가 역동적인 순례자 공동체로 변모하는 것이 전 인류 가족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교회의 주요 과제는 복음화이며 “복음화의 본질은 토착화(inculturation), 즉 사회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복음을 육화하는 데 있다”며, 복음 선포는 현대문화와 끊임없는 대화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은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자기 삶의 방식으로 증거하는 사람이다. 과거에서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즉 교회에서, 우리 삶에서, 세상 안에서 살아 계신 그 분을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여전히 진행 중인 미완의 이야기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할리크 신부는 “교회는 역동적인 성사이며, 그 목표를 향한 길”이라면서, 여정 중에 있는 교회, 즉 ‘투쟁 중인 교회(ecclesia militans)’를 ‘천상 승리의 교회(ecclesia triumphans)’와 식별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 교회를 완전한 ‘천상 승리의 교회’로 간주한다면, 우상숭배의 위험한 형태인 승리주의로 귀결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투쟁 중인 교회’는 승리주의의 유혹에 저항하지 않으면 죄 많은 호전적 기관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었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고백한다”고 전했다.
선교 사명은 교회의 영원한 의무이지만, “사람들을 교회의 기존 정신적, 제도적 경계 안으로 밀어넣는 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경계를 확장하고, 다른 이의 경험을 받아들여 교회를 더욱더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영적 스승은 피상적인 ‘외적 인간’은 ‘외적인 신’을 가지고, ‘내적 인간’은 ‘내적인 신’을 가진다고 가르친다. 외부의 권위, 선동, 이념에 좌우된 채 ‘여론’만 쫓아가며 ‘세상 사는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종교는 피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신은 사실 ‘그들의 소망과 두려움의 투영’이거나 경제적 이익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오직 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만이, 외적인 것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있을 때만 인간의 유아적 환상에서 해방된 ‘벌거벗은 신’, 진정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시노드적 쇄신, 교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길
교회가 자기중심성, 즉 ‘집단적 나르시시즘’과 두려움에 빠져 자신만 돌본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문을 닫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교회에서 진행되는 시노드 개혁의 목적은 교회의 제도적 구조를 새롭게 하는 일인데 이러한 모든 개혁에는 신앙생활의 쇄신 특히 그 깊은 차원인 영성을 심화시키는 일이 선행되거나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앙의 삶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부활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는 움직이고, 일어나고, 되어가고,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길에 있을 뿐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아침’에, 중년의 위기를 ‘정오의 위기’에 비유했다. 이 위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인격의 영적 차원을 심화하고 삶의 지혜를 얻을 기회인 성숙의 시간인 ‘인생의 오후’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할리크 신부는 이러한 은유를 교회 역사에 적용해, 근대와 세속화에 대립하고 수많은 전통적인 종교적 확실성이 산산이 부서지는 시대가 바로 ‘정오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풍토의 변화인 세속화는 그리스도교를 끝장냈다기보다 그리스도교를 변모시켰다”고 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그 역사에서 ‘오후’의 문턱에 서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더욱더 성숙한 형태의 그리스도교로 나아갈 기회다.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기한 교회의 시노드적 쇄신에 대한 요청이 이 오후(성숙의 시기)에 더욱더 성숙한 그리스도교로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시노드적 교회, 즉 ‘함께 걷는 여정’은 교회 내부의 소통뿐만 아니라, 더 깊고 넓은 교회일치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날 오늘날의 갈릴래아를 찾아야 한다”며 “그리스도교의 현존은 ‘오늘날의 갈릴래아’에서, 부활하신 오늘의 그리스도를 찾는 모험에 있다”고 했다.
이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셨다. 그래서 그 분의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도 그분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처럼 이름 없는 순례자로 우리에게 오실 수 있다”고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깨어 있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고 했다.
할리크 신부는 프라하카를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로마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외부 자문단, 체코 주교회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1990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비신자들과의 대화를 위한 교황청 평의회 고문으로 임명했으며, 2008년에는 베네딕토 16세가 그를 몬시뇰로 임명했다.
2003년 인권과 영적 자유를 수호한 공로로 쾨니히 추기경 공로상, 2010년 현대 사회를 해석한 공로로 로마노 과르디니 상, 2014년 템플턴 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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