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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부드럽고 순한 귀(耳順)를 달고 「아큐정전(阿Q正傳)」 루쉰, 김시준 옮김 김혜경 2017-03-10 18: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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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오옌니안의 `아큐정전(阿Q正傳)` 중 1번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의 대표적 작품 「아큐정전」. 그 주인공 아큐(阿Q)는, 어디 태생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본적도 분명치 않은 가난뱅이다. 그저 마을사람들에게 품을 팔아 그날그날 먹거리를 해결하며 사는 말라깽이에 헌털뱅이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해서 동네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유지인 자오와 첸보다도 제가 더 낫다고 여긴다. 겉으로는 굽실거리지만 속으로는 “…옛날에는 잘 살았고, 나름 견식도 있는데다 일도 잘하는 일꾼이니, 원래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라”(p.121)는 식이다. 제 멋대로 자신을 위안하며 사는 거다. 


그리고 자기보다 센 사람을 만나 힘을 겨루다 지게 되면, 그냥 ‘자식 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자’면서 상대가 정말 제 자식인양 혼자 만족해한다. 건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마구 얻어터지고도 ‘스스로를 경멸하고 스스로를 낮추기로는 으뜸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경멸하고 스스로를 낮춘다’는 문장은 빼버린다. 그러면 ‘으뜸’이라는 말만 남는다. 이 ‘으뜸’이라는 낱말만 되새기면서 다시 자신만만해진다. 맨날 잃던 도박판에서 어쩌다 운 좋게 딴 은화더미를 잃어버리고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도, 자기 뺨을 자기가 힘껏 후려치고는 마음이 풀어진다. 뺨은 얼얼하지만 마치 자기가 남을 때린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져 금세 곤한 잠에 빠져든다. 이게 바로 아큐식 ‘정신승리법’이다. 


아큐의 ‘정신승리’는 뭔가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다.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 아주 즉흥적이고 편리하게 자기를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마치 귀한 존재인 듯, 어려움을 이겨낸 듯 믿어버린다.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비굴하고 나약한 자기 자신을 속이며 슬쩍 넘어가는 건데 말이다.


가만, 혹시 이런 식으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실제 상황이나 팩트와 상관없이, 전후좌우의 맥락도 없이, 원하는 부분만 오려내 의도적으로 편집해서는 확대재생산하니 말이다. 아큐처럼 자기가 자기 얼굴을 때리고도 마치 다른 사람을 때린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짜’를 만들어낸다. 그러고도 일말의 거리낌은커녕, 그게 진짜라고 믿는다. 그 터무니없게 만들어진 거짓주장을 거칠게, 아주 세게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할수록 외려 의기양양해지고 마음까지 편해진다. 이거 어째 좀 으스스하다.


하지만 지주들에게 아무 대항도 할 수 없는 아큐의 입장도 좀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가진 게 없으니 정신승리식의 자기합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를 동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큐는, 그렇게 소심하지도 호락호락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자신보다 어눌하고 힘이 없는 대상을 만나면, 냅다 욕을 퍼붓기도 하고 두들겨 패기도 한다. 길가는 젊은 비구니의 얼굴을 꼬집으며 우롱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쭐해 한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한 굴욕에다 괜한 적개심까지 얹어서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골라 실컷 화풀이를 해대는 거다.


또 아큐가 정신승리법으로 순간을 모면하려 할 때,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낚아 채여 벽에다 머리를 짓찧도록 당해도,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끌어와서는 자신이 이긴 걸로 친다. 그렇게 끝내버리면 그뿐이다. 잔뜩 화가 났어도 그 기분이 다 풀어지는데 10초면 충분하다. 힘없는 이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별생각 없이 그들을 함부로 대한다. 그냥 자기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아무대고 분풀이를 하면 그만이다. 당하는 이의 사정 따위 안중에도 없다. 예사로이 무시한다. 그런 건 들어볼 생각도 없다.


이런 아큐는 또 뭔가? 자신들의 얘기만 옳다면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무작정 손찌검을 하고, 3‧1절 봉사활동인줄 알고 나갔던 학생들에게 억지로 태극기를 쥐어주며 일장연설 꼰대질 하던 노인들이 오버랩 된다. 


▲ ⓒ 최진


나이를 먹은 만큼, 다른 사람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보고, 사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찬찬히 헤아려 봐야 할 텐데. 그래야 나잇값 하는 어른다운 어른일 텐데. 사리 밝은 학생과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조급하다. 아무런 논리도 앞뒤도 없이 과격하고 선동적이다. “폭군 치하의 신민은, 대개 폭군보다 더 난폭하다”는 루쉰의 말이 떠올라 섬뜩해진다. 


때마침 성안(城內)에는 혁명의 바람이 일어나고, 급기야 혁명이니 반란이니 하는 말들이 마을에까지 퍼지자 사람들은 허둥대며 당황한다. 이를 본 아큐는 자기가 혁명당원인 척한다. 괜스레 “내가 갖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도 모두 내 것이다…쇠로 된 채찍으로 너를 치리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닌다. 


이를 보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의 모습에 재미가 들린 아큐는 아예 혁명당원에 가입하려 한다. 혁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뻐겨보려는 거다. 그렇지만 돈을 주고 혁명당원이 되었던 첸은 그를 쫓아내 버린다. 그러다 혁명당원과 공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간 아큐는 온 마을에 조리돌림을 당하고는 결국 총살형에 처해지고 만다. 


요즈음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험한 말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머릿속에서 ‘아큐’가 맴돌곤 한다. 이들은 대체로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욕설과 고성을 마구 내지른다. 자기네 좋을 대로 막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자신들만의 아집과 신념에 사로잡혀 자기네 소리만 들으란다. 무조건 자기만 옳단다. 아전인수의 끝판왕 같다.


그런데 공자는 ‘나이가 육십이 되니 귀가 순해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예순 살 쯤 되면 공자처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고, 남의 뜻에 따를 줄도 아는 ‘순한 귀(耳順)’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겠다. 육십쯤 나이를 먹은 이들이 모두 ‘순한 귀’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잘 들으려면 저절로 말수가 줄어들겠지. 조용히 잘 들으면 생각도 깊어질 테고. 그러면 자연스레 몸가짐도 정갈해지겠지. 


몹시 이기적인데다 고집쟁이인 내안의 아큐에게도 부드럽고 순한 귀를 달아 줄 수 있다면,그렇게 나이 먹어 갈 수 있다면, 삶이 참 평화롭고 좋으련만.




신해혁명(辛亥革命) : 청나라말기인 1911년에 일어난 중국의 민주주의혁명. 쑨원을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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