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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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은 자기 자신의 핵심으로 향하는 것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이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2001년 사제서품을 받고 2008년 11월까지 남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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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괴물’
신문과 TV를 보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대한민국 사회의 경제적 지표는 세계 상위권이다. 문제는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상대적 소득격차로 인한 불평등과 박탈감을 자주, 여러 곳에서 느낀 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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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의 경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죄!”
신자유주의 경제는 1970년대 동유럽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의 19세기 고전 경제학자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 에 근거한 ‘정부가 개인의 권리와 사적재산권을 보호’하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을 대변하며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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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신부가 된 것 같습니다.
가난하지 않은 성직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 보지 않은 일을 말하기 힘들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말하고, 알지 못하는 내용을 강의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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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사는 사회
2014년 세월호는 안개주의보 때문에 2시간을 늦게 출항했다.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배는 위험한 맹골수로를 선택했다. 배는 1994년 6월 일본에서 첫 취항했던 배로, 2009년 MB정부가 관련법시행규칙을 고쳐 규제를 완화하면서 제한 선박연령 (20년)을 개정하지 않았더라면 수명이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고물 선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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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상상하며
우리는 한국교회가 전근대적 권위주의 체제를 과도하게 고수하고 있음을 먼저 바라보고 인정해야 한다. 서구교회 구조는 지난 시기 제국의 체제 안에서 가르치고 성화하며, 통치하는 권한을 각 지역 교회 교구장 주교가 독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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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즉사, 필사즉생 (必生卽死 必死卽生)
일전에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일하신 법인 스님이 경향신문에 낸 오피니언에서 ‘부처와 예수는 시비꾼 이었다’는 제하의 글을 읽고 내심 반가웠다. 내용인즉, 조계사 농성천막에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보수의 옷을 입음 직한 사람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공통적인 논리가 ‘신성한 경내에서’, ‘수행의 본분’을 저버리고 수행자가 정치에 참여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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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잘 지키는 모범신자로는 부족하다
가톨릭교회를 선택한 신자들은 타종교에 비추어 알 수 없는 종교 선택적 우월감을 가진다. ‘나는 가톨릭 신자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도 가톨릭이 제일 깨끗하지 않느냐’라며 안심한다. 그리고 신자로서 일정액의 교무금과 감사헌금, 건축금 등을 내고 교회의 정해진 전례에 잘 참여하고,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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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마음의 부담?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는 교회와 친교를 회복하는 고백자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은 죄 때문에 손상을 입은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다. 교회는 ‘고해의 의무’를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를 통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며 이는 칠성사 중의 하나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게(가시화)하는 은총의 통로라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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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탓’, ‘조상 탓’하는 신앙생활은
‘가계정화(淨化)’라고도 불리는 가계치유는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성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계치유기도문’과 ‘미사(성체성사)’를 통하여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이 문제는 ‘미사예물’의 형식으로 다시 신자들 간에 암암리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