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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 이기우
  • 등록 2026-08-14 15: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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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2026.08.14) 

: 에제 16,1-15.60; 마태 19,3-12

 


오늘 우리 교회가 성모 몽소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두고 기억하려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신부로서 히틀러와 나찌 세력으로부터 박해받던 유다인들 2천 명을 수도원 내에 은신할 수 있도록 돕다가 체포되었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수감생활을 하다가 다른 죄수를 대신하여 죽겠다고 자원하였으며, 같은 아사형을 함께 받은 수감자들과 처절한 옥중생활 속에서 굶주림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도 지옥 같은 감옥을 찬미의 성가로 채워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나찌 정권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수백만 명의 유다인을 말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특히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던 아우슈비츠의 프리취 수용소장은 한 명이 탈출하면 열 명을 지목하여 처형하는 벌칙을 시행했습니다. 수용소장의 재량으로 탈출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악마스러운 소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탈옥자가 발생하자, 수용소장은 수감자들을 모두 모여 놓고 무작위로 열 명을 지목하여 아사형을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체라는 사람이 이미 자기의 온 가족이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며 울부짖자 콜베 신부가 그를 대신해서 죽겠다며 자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수용소장 프리취는 열 명을 아사 감방에 가두고 물과 음식을 일체 주지 않았는데 3주 동안 여섯 명이 굶어서 죽어갔습니다. 기도와 성가로 죽어가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던 콜베 신부와 세 명의 죄수는 기도의 힘으로 3주를 넘겨서도 살아 있었는데, 수용소장 프리취는 결국 독극물인 페놀액을 주사하여 이 네 명을 모두 살해했으니, 그 날이 1941년 8월 14일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일은 전후의 혼란을 수습하느라 자연스럽게 잊혀질 뻔 했으나, 콜베 신부 덕분에 살아난 가조우니체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콜베 신부의 영웅적 선행에 대하여 증언하는 강연 활동을 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콜베 신부에게 전구하여 기적적으로 낫게 된 불치병 환자들도 나오게 되면서 1971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콜베 신부를 증거자로서 복자로 시복하였으며,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콜베 신부를 순교자로 기록하고 그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그전까지 전통적 의미의 순교자는 순전히 신앙의 이유로 목숨을 빼앗긴 신앙인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는 종교를 넘어서 신앙 본연의 이유인 이웃 사랑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새로운 의미의 순교자로 추앙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후에는 사랑의 순교자가 또 나왔습니다. 바로, 미군부와 자본에 의해 조종당하며 엘살바도르 민중을 억압하던 군부정권의 불의에 항거하다가 미사 중에 총격을 받아 죽은 오스카 로메로 주교입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더 새로운 의미의 순교자로 추앙을 받았는데,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사랑의 순교자에 이어 정의의 순교자가 나오는 시대로 전환되는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과 사랑과 정의라는 진리를 목숨 바쳐 증거한 증인들의 삶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앞당겨 다가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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