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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한 사람의 회심
  • 이기우
  • 등록 2026-07-31 16: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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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2026.07.31) 

: 예레 26,1-9; 마태 13,54-58



오늘은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입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로욜라 출신이었던 그는16세기 초에 군인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치료하던 중 현세의 허무함을 깨닫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고 나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 가서 신학을 공부한 후 사제가 되었는데 이때 함께 신학을 공부하던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후 이태리 로마로 옮겨가 활약한 그는 교황청의 요청으로 예수회로 하여금 당시 벌어진 교회분열 사태를 수습하고 가톨릭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운 유럽 대륙을 떠나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개척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마르틴 루터로 인한 소위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가톨릭교회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는 ‘내부 종교개혁’(Counter Revolution)의 성격을 띠었고, 동시에 가톨릭 신앙을 이성적이며 학구적인 기반 위에 올려 놓고 영적인 열정으로 쇄신시키는 데 기여하는 한편 유럽 내에 머물던 가톨릭 신앙의 영향력을 다른 대륙으로 확산시키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내부 개혁과 신앙쇄신 노력의 산물이 오늘날 가톨릭 신앙 피정의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는 ‘영신수련’이며, 선교적 노력의 산물은 동향 출신이자 동료였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 1506~1552)의 인도와 일본 선교는 물론 마태오 리치(Matteo Richi, 1552~1610) 등에 의한 중국 선교와 조선의 복음화 등 동양 선교를 들 수 있고, 영화 ‘미션’에도 소개되었던 라틴 아메리카 선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1593)와 디에고 데 판토하(Diego de Pantoja, 1571~1618)의 ‘칠극’(七克, 1614)을 비롯한 수많은 선교적 저술은 조선에 전해져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세우게 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 이후 수많은 예수회원들의 선교적 노력은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불리웠으나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파견되신 예수님의 삶을 계승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삶은 당대의 사람들, 고향 사람들은 물론 형제들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혈연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세상에 나올 때 맺어지는 인연이지만, 그분의 삶은 혈연으로서 이해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목수였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성 차원의 사실일 뿐이었고 실상은 하느님께서 보내셨고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자의식을 지니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생애를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성의 차원에서 성경이 알려주는 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시고 세상에서 사셨으나 그 삶의 내용은 신성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던 지식인들이었던  바리사이들에게서는 물론 사촌지간의 형제들에게서도 오해를 단단히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인성적 오해는 신성적 진실을 가립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들으신 대로, 예레미야도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직분을 수행했으나, 그의 신성적 사명은 당시 사제들과 궁정 예언자들과 온 백성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이스라엘도 하느님 손 안에 있다(예레 18,6)는 예언을 전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냐시오 데 로욜라를 비롯한 예수회원들도 마르틴 루터로 인한 분열의 후유증을 수습하고자 하던 교황청의 강력한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다른 수도회들로부터 오해도 받았고 탄압을 받아 일시 해산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선교지에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종교적 정서가 한참 다른 원주민들로부터 오해와 박해를 받는 과정이 매번 기다리고 있었고, 제대로 이해를 받아 복음이 전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따라서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이렇듯 인성 차원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하는 세상의 현실에서 이러한 복음선포 노력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신성이 세상의 인성적 현실 안에 뿌리내리자면 불가피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어디에서나 존경받는 예언자라도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상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 말씀에 담긴 뜻을 새기어 보고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성인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인성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신성 차원에서 소명을 받고 행해지는 사도직 활동 사이에 작용하는 긴장관계가 유감스럽게도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와야 할까요? 그 힘은 당연히, 하느님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고, 우선은 당사자가 지닌 소명의식으로 버티어야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연대의식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구약 예언자들의 정통노선에 따라 예수님께서도 몸소 걸으셨던 그 길을,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그의 동료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그리고 그 후배들인 마태오 리치와 디아고 판토하 등 많은 예수회 수도자들이 선교사로서 걸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수고 덕분에  믿음을 알게 된 우리도 그와 똑같은 길을 걷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 길에서, 꽉 막힌 상황을 돌파했던 이냐시오와 하비에르의 용기, 마태오 리치나 판토하처럼 창의적으로 선포한 복음,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처럼 아름다운 미래를 내다본 상상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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