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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성요셉, 노동의 존엄성을 위하여
  • 이기우
  • 등록 2026-05-01 13: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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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성요셉 (2026.5.1) : 창세 1,26-2,3; 마태 13,54-58


성모성월을 시작하는 오늘, 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정배이신 노동자 성 요셉을 기리는 특별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러한 전례적 취지는 1886년 5월 1일에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외쳤던 사건을 기억하여 그 2년 후인 1888년부터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노동절로 기념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노동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인권을 당사자들이 주장한 역사상 첫 움직임입니다.


오늘 미사의 전례적 취지는 노동절 제정에 담긴 시대의 징표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가톨릭교회에서 시카고 사건 발생 70년 만인   20세기 중반부터 요셉 성인을 노동자들의 주보성인으로서 전례적으로 소환하게 된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비오 12세, 1955년).  전례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어난 하느님의 섭리적 사건들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에서 신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을 골라서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기리기도 합니다.



▲ (사진출처 = University of Illinois Library)



노동절의 기원이 되었던 시카고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습니다. 1886년 5월 1일에 미국 시카고에서 8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8시간 노동제 쟁취’ 구호를 내걸고 궐기하여 총파업을 벌였는데, 경찰과 군대가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고,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장기징역형과 사형을 선고받았었습니다. 7년 후에 이들은 모두 무죄로 석방되었는데, 이는 그 사건에 당국의 무자비한 진압과 사법적 보복을 지탄하는 여론이 국내외적으로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즉, 시카고 시위 2년 후 같은 날에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같은 구호를 내건 국제 시위가 조직되고, 각국 노동자 대표들이 이날을 노동절로 선포하는 제1회 국제대회를 치르는 등 반향이 거세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1년 후인 1891년에는 레오 13세 교황도 노동자의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는 ‘새로운 사태’ 회칙을 반포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대표하는 교회의 최고 수장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발언이었고,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선교 노선을 노동자 계층의 권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게 된 엄중한 조치였습니다.


이 시카고 시위는 지옥과도 같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노예처럼 장시간 동안 일하고도 최저수준 이하로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에 가톨릭교회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레오 13세 이후 역대 교황들은 이러한 사회문제 개입의 노선을 이어 받았습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사회문제를 주제로 해서 그 수장인 교황이 최고의 권위로 무게를 실어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회칙을 반포한 이 노력을 기점으로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노동의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주이심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을 신앙으로 고백한 이래 천8백 년 만에, 그 동안 감추어졌던 신앙 진리의 새로운 국면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기억이었고, 초대교회는 그렇게 해서 복음을 들은 가난한 이들이 서로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로 출발했었다는 기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절의 사회적 의미를 노동자의 주보로서 성 요셉을 기억하는 전례적 취지는 가톨릭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에 빠졌던 주요 계시 중 하나를 천8백  년 만에 보완하는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유언이었는데, 이는 또한 성전과 제사가 아니라 삶의 현장과 가난한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하느님의 길을 찾으시던 예수님의 삶을 상기시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안식을 누릴 권리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가르침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세 번째 계명에 담겨 있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상기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하느님께서도 엿새 동안 창조의 노동을 하시고 이렛날에는 안식을 누리며 쉬셨다는 성경 해석까지 나왔습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눈이 더 깊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적 각성 분위기가 퍼져 나가는 가운데, 1919년에 국제노동기구가 발족되었습니다. 후임 교황 비오 11세도 1931년에 ‘사십 주년’ 회칙을 반포하는 등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키자, 이런 가톨릭교회의 움직임이 일종의 ‘방아쇠 효과’를 발생시켰습니다.  첫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00 주년을 기념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1년에 ‘백주년’ 회칙을 통해 가톨릭 사회교리가 사회적 복음임을 부각시켰으며, 그 후 백 년 동안 반포된 사회 회칙들을 집대성하는 작업을 한 끝에 지난 2006년에는 『간추린 사회교리』를 펴냈습니다. 이 문헌은 가난한 노동자들로 말미암아 상기하게 된 이 새로운 계시의 종착점을 ‘사랑의 문명’이라고 제시했습니다(580-583항).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먹고 사는 일입니다. 원시 시대에 야생 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 식물을 채취하던 생활을 하던 인류가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거나 야생 작물을 경작하여 재배하는 농업혁명을 일으키면서 인구가 증가해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으나, 더불어 발생한 잉여 농산물을 분배하기 위한 권력이 필요해지면서 씨족 공동체는 부족 사회로, 다시 국가로 커졌는데, 영토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잦아지면서 패배한 세력이 노예라는 신분으로 제도적으로 착취당하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구조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늘어난 잉여 생산물을 자본가 계급이 독점하게 되면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과거의 노예 신분보다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라 일컬어지는 현 인류의 물질문명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인류가 생산해 낸 잉여 가치를 이미 부유한 개인들이나 국가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의 매카니즘입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자들 중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이 매카니즘에 주목한 마르크스의 눈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장헸던 계급투쟁론이나 유물사관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더 가지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이미 가진 것을 나누려고 애를 써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바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진지하게 성찰했어야 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마르 1,15)고 선포하신 복음의 요체인데, 인류 역사에 있어서 혁명적인 이 가르침을 사회경제적인 차원에서 실체화시킨 것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노동자들이 억눌리다 못해 들고 일어나게 된 노동절 사태가 자신의 역사적 뿌리를 잊어버려 가던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가난과 노동의 문제에 관한 시대의 징표를 새삼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 두 문제는 욕심과 착취의 매카니즘을 지닌 현대 물질문명을 나눔과 섬김의 매카니즘을 지닌 사랑의 문명으로 바꾸어야 할 파스카 과업의 요체라는 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의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노동절 사태를 일으킨 노동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 은인들인 셈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노동절 제정에 담긴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 노동이 사회 문제의 중심이고, 노동자가 사회의 중핵임을 알아야 함을 일깨우고자 노동자의 주보이신 성 요셉 기념일을 전례에 도입한 교회의 취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 진리를 가난한 노동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교회와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류 역사와 개인 인생은 모두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섭리와 뜻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요, 이를 앞당겨 보여주신 징표가 바로 ‘예수 부활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의지와 이성 그리고 신앙은 이 흐름을 알아차리고 이 복음에 부합할 수 있도록 총동원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고 빛을 발합니다. 이렇듯이 하느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이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닮은"(창세 1,26) 존재가 되는 길입니다. 노동 후의 안식은 바로 이를 위해 주어진 거룩한 시간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으려는 목적 의식과 노동과 안식의 조화를 통해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명 의식,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에서만 기적이, 사랑의 기적이 일어납니다(마태 13,58).


교우 여러분!


전통적으로 종교적 질서를 따라서 거행되어 온 전례의 흐름을 벗어나서, 사회에서 일어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 제정된 ‘성 요셉 기념일’ 미사의 취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전례적 취지 안에 들어 있는 더 근본적인 교회의 가르침, 즉 노동의 영성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노동은 사랑과 함께 창조주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근본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닮기 위한 길이 바로 노동입니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입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어 노동하는 임금 노동자와 자신의 잉여 소득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경영 노동자로 구분할 수는 있습니다. 노동에 의한 소득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전업 주부도 가사 노동자요, 아직 어린 학생도 학습 노동자입니다. 퇴직하여 노후를 취미 활동이나 봉사 활동으로 소일하는 노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동, 즉 일을 하지 않고는 인간이 동물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하느님의 관점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은 경제적 조건이나 나이 또는 소득과 상관없이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자신의 인격을 수련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동시에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창조의 노동을 하셨고, 인류의 역사를 이끄시는 노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노동의 영성입니다.


노동의 영성에 따르자면 인간 노동에 대한 성찰은 이러합니다. 동물의 움직임과 달리 인간의 노동은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인류 문명은 옛날에 비해 찬란한 지경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차원에서 이 찬란한 발달상은 가치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생산성 향상에 따라 얻어진 잉여 가치가 힘 있고 가진 자들에게 편중되게 분배되는 탓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기도와 사색, 외침과 나눔, 교육과 홍보 등의 노동으로 세상의 인류가 발달시키고 있는 물질 문명을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등이라는 하느님의 최고선 가치에 걸맞는 사랑의 문명으로 진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어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표한 2026년 노동절 담화문을 인용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1베드 5,8)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선의를 가진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수단이 아닌 존재로서 노동을 위하여 오랫동안 연대해 온 결과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오늘, 저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함께 기뻐합니다. 더불어 이 기회에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태’에 관하여 여러분과 함께 교회적이고 영성적인 고민과 성찰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후변화가 현시대에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와 환경과 노동 문제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후와 환경 위기 앞에서 경제적 이유로 인간과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시장 경제’ 논리가 우리 안에 팽배해 있습니다. 탄소 중립이라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과 처우는 외면당하고 있으며, 폭염과 한파, 홍수에 따른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유해 물질 산업을 저개발국으로 떠넘기는 정의롭지 못한 ‘공해 수출’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윤리 감각조차 없는 듯합니다.


한편,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오직 하느님의 선물인 지성을 통한 전인적 성장과 공동선을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합니다. 만일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과 양심의 발전’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해지고 맙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경우, 우리가 경험한 그 어떠한 것보다도 우리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과 파괴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더구나 인공지능을 경제 논리로만 이해하려는 현 구조는 노동자를 ‘효율성의 노예’나 시스템으로 통제되는 ‘종속적 노동자’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고용에는 무관심하고, ‘복지’만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노동은 단순히 생계 비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필요와 더불어 지성적, 도덕적, 정신적, 종교적 생활의 요구 등이 모두 포함된 전인(totus homo)에 대한 봉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동자 그리고 형제자매 여러분,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적 가치인 ‘인간 존엄성’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노동자의 존엄에 대한 존중,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경제적 안녕을 위한 고용의 중요성, 고용 안정과 공정 임금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5항). ‘새로운 사태’를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주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선의를 지닌 이들과 윤리적 연대를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를 지닌 ‘공동 책임자’로서 가난하고 약한 이를 ‘굶주린 사자’(1베드 5,8 참조) 앞에 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뜨거운 연대로, 불확실한 미래를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희망의 터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축제인 노동절을 축하하며, 주님의 크신 축복과 은총을 기원합니다.


노동자의 수호자 성 요셉,

노동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26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 주 영 주교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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