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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개념, 안보철학을 재정립해야 할 때
  • 이원영
  • 등록 2026-03-24 12: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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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국방부)



2024년 11월,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자마자 서울로 전화한다. 해군함정 손좀 봐주라는 요청을 하는 순간은 커다란 전환의 신호였다. 미·중 경쟁 속에서 미국이 자국 해군력의 일부를 한국의 기술적 역량에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26년 2월, 천궁-II의 실전 배치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완성한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한국이 더 이상 ‘기술 수입국’이나 ‘동맹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 방공망의 패러다임 자체를 재구성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의 힘을 자각케 해주는 사건


천궁-II가 구현한 ‘직격 요격(Hit-to-Kill)’ 기술은, 초고속 탄도미사일의 미래 위치를 극단적으로 정밀하게 예측해, 탄두에 몸체를 그대로 들이박는 형태의 센서·알고리즘 융합 기술이다. 지상 레이더가 제공하는 광역 탐지와 미사일 자체의 탐색기가 포착하는 정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합성해, 기만탄과 파편 속에서 진짜 위협만을 분리해 내야 하는 이 과정은, 고도로 특화된 객체 탐지·추적 기술의 정점에 가깝다.


말이 요격이지 귀신보다 전율을 일으키는 기술이다. 초음속으로 날아오고 있는 미사일의 머리를 공중의 어느 한 지점에서 찰나의 순간에 박치기를 해서 터트릴 수 있다니! 외계인의 기술이 아닌가? 세계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가장 충격을 먹은 나라는 북한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순서였을 것이다. 저런 극강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니, 도대체 다른 무기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젠 판도가 달라졌다. 마치 100년전 미국의 실력이 드러날 때처럼.


개발 중인 천궁-III, 그리고 ‘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L-SAM과 이후 단계의 L-SAM-II는 더 빠르고 더 기동성이 높은 탄도·극초음속 위협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되고 있다.


미국이 압도적 물량과 예산으로, 중국이 압축적 양산과 배치로 승부할 때, 한국은 “가장 영리한 머리를 가장 가벼운 몸체에 담는” 방식으로 방어체계를 정교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잠수함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핵추진 잠수함(SSN)을 해군 강국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러나 실제 전술 환경을 들여다보면, 핵추진은 필연적인 구조적 소음(원자로 냉각계통 등)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한국이 선택한 길은 다르다. KSS-III Batch-II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과 소음·진동 저감 공학은, 특히 좁고 복잡한 연안 해역에서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수준의 정적(靜的) 운용을 지향한다. 이 해역에서는 ‘정지에 가까운 조용함’ 자체가 곧 생존성과 공격력이다. 핵 추진이라는 상징을 좇기보다, 자국 안보 환경에 최적화된 잠수함 전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선택은 기술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더 영리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순한 기술 자랑이 아니다. 한국이 축적해온 이 방어 기술을 통해, 전혀 다른 유형의 힘, 전혀 다른 안보 철학을 모색해 보자는 제안이다.


방어자가 공격을 하지 않으면서도 지키는 힘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면, 공격자는 스스로 상처를 입고 공세를 포기하게 된다. 이 패턴이야말로 전쟁을 멈추게 하는 진정한 평화의 메커니즘이다. ‘평화군’으로서의 역할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지구촌 방패의 역할을 할 대한민국


방어 체계는 한 국가의 독점 자산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공유할 수 있는 ‘안보 공공재’로 설계될 수 있다. 공격용 미사일이나 전략폭격기가 특정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라면, 방어 체계는 그 지역 전체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확전을 어렵게 만드는 공동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오랫동안 개발해온 무기 체계가 대체로 ‘침략용’이 아니라 ‘억제·보호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국가 브랜드와 외교 전략의 자산이 될 수 있는 특징이다. 한국은 이 “방패의 정체성”을 더욱 의식적으로 다듬어, 지구촌에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방어 기술의 고도화가 자동으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어체계도 군비경쟁과 불신을 자극할 수 있고, 공격과 방어의 경계는 언제나 논쟁적이다. 새로운 요격체계가 등장할수록, 상대는 더 많은, 더 빠른, 더 우회적인 공격수단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방어 중심 전력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한국이 “선제 공격 능력”의 과시보다 “피해 최소화와 확전 억제 능력”을 우선순위에 두는 국가라는 방향성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방향성은 동맹국뿐 아니라 주변국에게도 공명한다.


한미연합훈련의 방향을 전환할 때


이제 한미동맹을 보자. 과거의 한미연합훈련은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전개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결의를 과시하는 훈련이었다. 이 방식은 억지력 측면에서 분명한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주변국의 불안과 긴장을 자극하는 측면도 피할 수 없었다. AI와 디지털 트윈 기술이 성숙해가는 지금, 우리는 훈련의 형식을 재설계할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


미래의 한미훈련은, 외부에 과시되는 병력 규모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시뮬레이션 인프라가 핵심이 되는 훈련이다.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구축한 디지털 전장 환경 속에서, 수십만 명의 병력을 움직이는 대신 수천, 수만 개의 시나리오를 돌려 보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멀리 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위기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확전이 억제되는가”,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경로는 무엇인가”를 함께 연습하는 것이다. 한국의 방어 중심 기술과 미군의 공격 중심·기동 중심 전력을 결합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신속 공격’보다 ‘위기 관리’와 ‘확전 방지’를 동맹의 핵심 임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일방적인 의존 관계 속의 동맹 파트너가 아니다. 우리는 독자적인 억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맹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설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국방의 개념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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