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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음껏 알리고 비추어야 할 때
  • 이기우
  • 등록 2026-03-13 20: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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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2026.3.15)  

1사무 16,1-13; 에페 5,8-14; 요한 9,1-41


1. 말씀의 초점


오늘 사순 제4주일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요한 9,5)이시라는 계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갇혀 있는 영적인 어둠과 하느님의 진리를 못 보는 무명(無明)에서 벗어나서, 영적인 밝음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빛으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구에 모든 에너지와 빛을 제공하는 태양조차도 우주 전체 안에서는 거대한 어둠 속에 켜진 촛불 정도의 미미한 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 보여주신 삶과 가르침은 낮도 밤도 없어서 사람의 온 마음과 모든 사람을 두루 비추어주는 전인적이고 보편적인 빛입니다.


2. 하느님의 빛을 받은 다윗


다윗은 영으로 빛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마태오가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나와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 유다인들이 기억하는 이스라엘의 조상들 중에서 다윗이 차지하는 위치는 민족의 시조로 공경받는 아브라함보다 앞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그 이유가 오늘 제1독서에 나옵니다. 즉,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1사무 16,13)는 것입니다(그림 2). 아브라함도 노아의 후손 중에서 가장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지만, 다윗은 왕이 되기 이전부터 하느님의 영이 머물렀고, 그 덕분에 ‘하느님의 종’(시편 89,4)으로서 불릴 수 있었습니다.




3. 세상과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된 태생소경


오늘 복음에서 태생소경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다윗과 같은 특별한 사람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예수님께로부터 영을 받으면 빛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그 빛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자연의 빛만이 아니었으니, 그 태생소경은 단지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뜬 눈으로 예수님을 만나 뵈옵고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믿는다(요한 9,38)고 고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까지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그날이 하필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 바리사이들은 엉뚱한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 소경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예수님께 대해서도 딴지를 걸었습니다(요한 9,16). 



4.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바리사이들


당시 바리사이들의 율법 해석에 따라서 유다인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게 된 것조차도 그 사람이 하느님께 죄를 지은 탓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태생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이 바리사이들에게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을 치유해 주신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는 범죄자로 간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드디어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줄 감수성이 불행히도 그 바리사이들에게는 없었고, 비록 죄로 인해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를 뛰어넘어 눈을 뜨게 해 주실 만큼 뛰어난 치유 능력이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에게만 가능하리라는 상상력도 그들에게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바리사이들은 눈을 뜬 그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마을 밖으로 내쫓아버리는 박해를 자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 태생소경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쁜 사건으로 기억되었겠으나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에서는 불행하게도 바리사이들이 스스로 자기를 심판해 버린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해박하다고 자부하던 그들이 정작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 소행으로 미루어 볼 때, 율법주의의 폐해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못 보게 하고 있음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을 뜬 태생소경은 예수님을 믿게 된 반면에, 이를 비난한 바리사이들은 눈뜬 소경임을 스스로 폭로한 셈이 되었습니다.   


5.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


실로암 연못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바리사이들의 영적 소경 상태를 폭로한 계기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질병이 만연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처럼 위생여건이 좋지 못하고 의료기술이나 의학지식도 많지 않았던 사정도 있었지만, 로마제국의 강압적인 식민통치로 말미암은 정치적 억압에다가 바리사이들이 율법을 내세워 가난하고 무식한 백성을 죄인으로 낙인찍은 정신적 억압까지 더해져서, 당시에는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았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치유해 주시는 것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셔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가시는 곳마다 아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분은 일일이 다 고쳐 주시면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현상이 바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었고 그분이 심어주고자 하시던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경우에는 아무리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라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힘이었고 먼저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고서 믿게 된 이들에 의해서 퍼져가는 일종의 바이러스와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능력을 체험한 당사자나 이를 목격한 군중에게 반드시 믿음을 요청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태생소경이 눈을 뜬 기적을 목격하고는 당신의 가르침을 들으러 모여든 이들에게 당신의 신원을 드디어 밝히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5). 구약시대의 그 어떤 예언자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기적을 행하지는 못했었습니다. 눈이 멀게 된 토비트의 눈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라파엘 대천사가 뜨게 해 준 고사(古事)가 전해질 뿐입니다(토비 11,14). 이는 세상을 비추시는 빛이시요 영으로서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으셨던 예수님의 예표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기적 사건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영혼의 눈을 뜨게 해 주시기 위해 일으키신 하나의 사건 비유입니다. 그분이 지니신 신적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이 기적을 통해서 그분이야말로 참 빛이신 존재로서, 우리가 그분의 영을 받아야 영적인 눈을 뜰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눈이 멀었다가 다시 뜬 바오로


사도 바오로도 한때는 율법에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눈뜬 소경과 같은 처지에서 예수님을 박해하던 자였습니다(사도 9,5; 1코린 15,9; 갈라 1,13; 필리 3,6)). 그러던 그가 번개 빛을 맞고 나서 사흘동안 보지 못했습니다.(사도 9,3.9). 눈이 멀게 된 그에게 벼락이 치는 가운데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하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4-5) 하는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사흘 후 예수님께서 보내신 하나니아스로부터 안수를 받고 나서 바오로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사도 9,18) 태생소경이 눈을 뜨게 된 치유 기적 이상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적으로도 밝게 보게 된 그 눈으로 에페소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에페 5,8-9). 이 권고로써 사도 바오로는 사실 자신이 한때 어둠이었음을 시인하면서 이제 눈을 뜨게 된 자신처럼 교우들도 빛의 자녀답게 행해야 할 선과 의로움과 진실에 대해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깨달음입니다. 


첫째는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는 이들에게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에페 5,14ㄴ)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의식이 잠들어 있으면 눈먼 소경과 다를 바 없는데, 그런 누군가를 깨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영혼의 눈을 뜨고 밝은 진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둘째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에페 5,14ㄹ)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사람이 그저 의식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면, 죽은 사람은 아예 그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처지와도 같습니다. 잠자는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존재인 사람이 창조주를 알아보는 믿음이 없으면 그의 영혼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 가운데에서 선행을 실천하는 교우들은 사람들의 숨겨진 사회의식만을 일깨울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의 원천이 하느님께로 향한 믿음이어야 함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갈망하면서도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눈먼 소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7. 세상의 빛이신 예수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이신 그분의 영을 받으면 우리도 빛이 됩니다.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그분과 이루어야 할 통공입니다. 통공의 은총을 받으면, 우리도 영적인 어둠과 진리에 대한 무명에서 벗어나서 영적인 밝음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에페 5,9)입니다. 


수직적 통공의 열매인 의로움과 진실로 행하는 선행은 우리와 세상 사람들과 통공을 이룩하게 해 줍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성 있게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통공을 이루지 못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빛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통공을 이루면 마치 태양 빛이 온 누리를 비추듯이,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빛을 모든 이들에게 고루 비추어줄 수가 있습니다. 


말씀의 본 고장 이스라엘에서 알아보지 못했던 세상의 빛이신 분을 우리 민족은 2백여 년 전에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알아 뵈옵고 모셔 들였습니다. 민족사의 초창기인 5천 년 전부터 빛을 찾았던 우리 민족이었기에 가능했던 놀라운 섭리였고, 세계선교역사상 유일무이한 기적이었습니다. 바리사이류의 눈뜬 소경들로부터 백 년 박해를 받는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이제는 마음껏 그 빛을 알리고 비추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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