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2026.01.10) : 1요한 5,14-21; 요한 3,22-30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셨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복음서 네 권을 모두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셨다는 본문은 이 대목이 유일합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후였고,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습니다. 요한이 갇힌 후에는 세례를 베푸셨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에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셨을까요? 그리고 왜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에는 세례를 주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셨고 또 요한처럼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 운동의 취지에 찬동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의 반영입니다. 요한이 세례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게 된 취지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완전히 부패해서 당장이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상태여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사회적이고 영적인 진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안목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안목과 판단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움직이던 유력 집단들과 요한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움직이던 집단 가운데 최대의 영향력을 지녔던 집단은 사두가이파였습니다. 바빌론 유배 당시에 왕과 왕족 그리고 지도계층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고 쓸모가 있다고 여긴 지식인이나 기술자들만 데리고 갔으며 가난한 이들은 데리고 가지도 않았기에, 바빌론 유배 시절 사제 계층은 더 이상 다른 지도계층이 사라진 터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집단이었습니다. 그 대표자가 사독 사제인데, 그 후예들을 사두가이라고 불렀던 까닭에 그들은 사두가이파가 되었습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 사두가이파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 작업을 진두 지휘했으며, 모세 오경의 사제계 문헌을 편집하고 정경화하는 작업에도 나서게 됩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후에도 로마의 정치적 통치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예루살렘 성전을 관할하는 종교적 권한과 백성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맡아서 대행하는 사제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이민족인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다 해도 자신들이 순수한 혈통을 유지 계승하며 성전에서 제사가 끊임없이 바쳐지는 한 하느님 나라는 자신들을 통해서 오리라고 낙관하던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이들이 지배하던 성전을 정화하고자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 의해서 신성 모독과 성전 모독 혐의를 뒤집어 쓰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두가이파와 함께 예루살렘의 최고 의회를 과두 지배하던 집단이 바리사이들입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뒤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나서도 그리스계 왕조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며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세계 시민 문화를 강요하자 이스라엘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지식인 평신도들이 율법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무리들과 분리되고자 했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라는 뜻에서 바리사이들, 또는 바리사이파라고 불리웠습니다. 율법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열성은 극도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종종 예수님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율법을 복잡하게 만들어놓고서 이를 지키지도 알지도 못하는 가난하고 무식한 계층을 전부 죄인으로 낙인 찍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이들을 소작인이나 세입자로 수탈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로 비판하셨습니다. 이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율법에 충실하면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리라고 기대하면서도 율법의 실현을 방해하는 최대의 장애가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라고 여겨서 독립을 열망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또 한 집단이 에세네파입니다. 이들은 사독 사제의 후예들이 저지르던 도덕적 부패에 저항해서 뛰쳐나왔으며 꿈란을 비롯한 각지에서 독신사제 수도원을 이루어 엄격한 고행생활을 하면서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왕국의 독립을 이룩한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즈카르야 사제의 아들이었던 세례자 요한도 이 무리 출신일지 모른다는 추정을 하는 성서학자도 있습니다. 그 근거가 물 귀한 유다 광야에서 빗물을 받아 모은 물로 매일 같이 정결 예식을 행하던 에세네파 사제들처럼 물로 세례를 주는 운동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요한은 일생에 단 한 번의 세례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과감한 선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한의 권위는 예언자다운 면모를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았습니다. 아무튼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도 에세네파처럼 아예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서 독자적인 순수한 집단을 결성하지는 않았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회개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공통점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 사회의 상태를 파국이라고 비관적으로 진단하면서 급진적 회개야말로 이스라엘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세례 운동을 전개했고, 예수님께서도 이에 동참하여 세례를 받으셨으며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유다 땅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이 당시 몰려온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보고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요한 4,2)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얼마 되지 않아 참수 당하고 난 후에는 회개할 것을 조건으로 세례를 주는 일보다, 회개의 목표가 되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치유와 구마 기적 등으로 체험 시켜 주면서 회개하라고 가르치는 복음선포 활동에 주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크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복음선포 활동의 상대적 우위를 강조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도,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화답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 회개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바야흐로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시급한 회개이며, 그래서 이를 알리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선포하는 일이었기에 사랑의 세례이자 성령의 세례였으며,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수반하는 불의 세례였던 것입니다. 이를 상징하는 동시에 지엄한 분부로 거행하신 일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례였고,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지니셨고 또 보여 주신 문제 의식과 시대적 사명은 분명합니다. 불의한 세태에서 빚어지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회개를 요청하셨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사람들의 도덕적 회개를 요청하는 요한의 세례 운동에 대해서도 하느님께서 축복하셨기에 수많은 백성이 그 운동에 호응하였지만,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사람들 앞에 다가오게 하신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아예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공현된 메시아의 존재가 세례 축일로 더욱 공개적으로 드러나며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에 관한 사도 요한의 증언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1요한 5,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