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이하 WYD)를 앞두고 정부·지자체의 지원 근거를 담은 ‘특별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종교계와 시민사회는 정교분리 원칙의 훼손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3일 저녁,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범종교 시민공청회(주최: 범종교개혁시민연대, 주관: 종교자유정책연구원)는 국가 지원의 원칙·범위·절차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긍정효과 인정하되, 중립성과 투명성이 기준”
주최 측은 이번 공청회 취지문에서 WYD의 국제교류·문화적 파급효과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대규모 공적 재원이 특정 종교 행사에 투입될 때 종교중립과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점검하자고 제안했다. 논의의 핵심 질문은 ①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에의 합치, ② 타 종교·비종교인에 대한 영향, ③ 정부 지원의 투명성과 책임성, ④ 공공성·효과의 균형이었다.
기조발언에 나선 이재선 실행위원장(동학천도교보국안민실천연대)은 “국가 재정의 종교지원은 공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최근의 종교 관련 예산 사용 사례에서 드러난 편향 가능성과 역사·공간의 특정 종교화 문제를 짚었다. 그는 향후 WYD 논의에서도 ‘공익우선’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에 나선 <뉴스타파> 황일송 기자는 국회에 계류된 세 갈래의 특별법안을 비교·검토하며, 정부지원위원회의 위상과 공공기관·법인·단체의 ‘재정적 협조’ 요구 조항 등 전방위적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과도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회기 법안들 중 일부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다수 부처 장관이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대규모 정부지원위원회를 상정했다. 최근안은 문체부 장관 중심으로 조정됐지만, 재정적 부담의 한도와 범위에 대한 실질적 안전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국가 및 지자체의 예산 지원 대상을 대회장·체험장·전시관과 각종 편의시설·진입도로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공공기관과 민간의 재정 협조를 “최대한” 요청하도록 한 부분은 특혜 논란과 형평성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경제성 평가, 검증이 필요하다
참가자 수와 지출 규모를 높게 가정한 경제성 평가에 대한 검증도 이뤄졌다. 발표에 따르면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공개한 분석은 외국인 75만 명, 총 100만 명 참가, 1인당 102만 원 지출 등 높은 가정값을 적용해 생산유발효과 11조 원대를 산정했지만, 역대 WYD 등록 참가자 규모·젊은 참가층의 소비 여력 등을 고려할 때 과다 추정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간접효과(브랜드 인지도·국가 이미지 개선 등)를 거대한 수치로 환산한 방식의 근거 부족도 지적됐다. 해외 사례(PwC의 리스본 대회 분석 등)와 비교해도 1인당 지출액 추정치가 과도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지원하되, 한도·용도를 명확히”
황일송 기자는 해외 정부 지원의 틀은 대체로 출입국·안전·보건·현장 관리 등 좁은 범위의 행정 지원에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은 비자 수수료 면제·교통관리 등 조례 수준에서 지원했고, 포르투갈은 총리령으로 재정지원 상한(약 2,200만 유로)과 특정 이전·시설비 등 용도를 명시했다. 폴란드도 교황 방한 경비·치안 등 필수 공공서비스 중심이었다. 대규모 정부위원회 설치·광범위한 재정 동원까지 나아간 사례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적 특수성(다종교 사회, 종교중립 전통, 정교분리 헌법정신)을 고려할 때, 지원의 상한·범위·용도 명확화가 갈등 예방의 관건임을 시사했다.
“조율 없이는 갈등만 키운다”
토론자들은 이웃 종교와의 조율을 거듭 강조했다. 김집중 세무사(종교투명성센터)는 과거 WCC 부산총회와 로잔대회의 국고 지원·운영 과정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며, 특혜성·불투명성은 종교 특권 의식을 키우고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도정스님(야단법석승가회)은 특정 종교에 대한 과도한 지원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사전 조율과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WYD를 “종교를 넘어선 국제 청년 축제”로 소개하며 문화교류·평화 메시지 확산·국가 이미지 제고를 강조해 왔다.
다만 프로그램 구성의 다수가 기도·미사·교리교육 등 종교 활동인 점을 고려하면, 공공행사사와 종교행사 사이의 경계 설정과 공적 재정 투입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청회 참가자들은 동의했다.
조직위 불참의 아쉬움… “다음엔 반드시 대화의 테이블로”
주최 측은 WYD 지역조직위원회에 반복적으로 참여를 요청했지만 불참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토론 말미, 일문스님(실천불교승가회)은 “WYD가 의미 있는 ‘공적 축제’로 자리 잡으려면 대화와 협력이 필수”라며, 다음 논의에는 조직위가 반드시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WYD가 지닌 영성적, 문화적 가치와 청년 세대의 만남이 한국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정교분리 원칙을 신뢰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그 토대는 명확한 범위의 행정 지원, 투명한 예산, 이웃 종교와 시민이 참여하는 절차에서 만들어진다.
법 제정 이전에 필요한 것은 갈등을 예방하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정부와 국회, 조직위, 시민사회가 함께 공론의 장에서 원칙과 제한을 명문화할 때, WYD는 진정한 ‘공적 축제’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