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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봉이 김선달' 더 이상 방치하면 안돼
  • 이원영
  • 등록 2025-05-09 16:47:07
  • 수정 2025-05-09 16: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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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ttery Park City (사진 = Landezine)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가 주는 교훈


세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본산인 뉴욕 하고도 맨해튼. 9.11의 상처가 새겨져 있는 세계무역센터가 자리잡은 인근 해변가 매립지 약 12만 평은 도시 설계의 디자인 면에서도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이 지구는 록펠러 재단의 자손인 넬슨 록펠러 시장이 있던 1970년대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공유수면을 매립한 뉴욕시 배터리파크시티 공사는 토지임대를 통해 장기에 걸쳐 건설비용을 갚았다. 국채금리가 5~7%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당시로는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이후 1만 4000세대의 주거를 포함한 개발을 진행하면서 성공적인 도시조성을 이뤄냈다. 토지임대가 매각보다 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식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초기에 2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하여 오일쇼크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하여 매년 1억~2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 모든 국채를 상환했음에도 2020년까지 누적 수익이 무려 38억 달러(약 4조 원)에 이르게 되었다. 작년 한 해만 하더라도 뉴욕시에 2억 3천만 달러의 재정수입을 안겨다 주었다. 입주자의 재산세를 대납해주고 저소득층 임대주택 등 지속적인 재정 기여를 하고 있다. 뉴욕의 인기 있는 노인아파트도 이런 재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당시 매립 후 일찌감치 시장에 매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땅을 매입하고 이자를 감당할 만한 재력가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토지임대를 했기 때문에 적정한 시장지대를 받아서 공익으로 환수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바로 이 지대가 '공유부'의 정체다. 공동체 전체의 공유부(共有富, Common Wealth)다.


그와 같은 공유부 경제의 선순환 효과를 누리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싱가폴이다. 싱가폴은 HDB(주택개발국)주택이 토지임대주택으로 활성화 되어 있다. 80% 넘는 국민들이 살고 있는 토지임대주택(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나뉘어져 있는 주택으로, 정부가 토지 소유권을, 주택을 분양 받는 사람이 건물 소유권을 갖는다) 체제에 의해 시장 왜곡이 발생하지 않고 돈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 시장경제를 가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는 산업이 없음에도 현재 국민소득이 6만 달러로 세계 톱수준이다. 공유부의 선순환효과다.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는 그런 개념 위에 지대시장의 공유부 메커니즘을 작동시킨 것이다. 싱가폴보다 한 수 위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의 택지개발은 공유부의 개념이 실종되어 왔다. 개인소유토지를 국가가 강제적으로 매수해서 주택을 지을 수 있는 택지로 조성한 후 사기업에게 매각을 하는 사업이다. 헌법이 규정하는 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국가가 땅장사를 하는 사업이다. 국가투자와 경제활동이 집중된 수도권의 논밭임야를 매수해서 개발하는 방식이다. 이런 경우 토지를 매입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게다가 개발지역 주변의 땅소유자는 앉아서 돈을 번다.


그 택지 위에 주택을 지어서 분양매각을 하게 되면 매입 능력이 있는 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분양 후 상승분은 고스란히 개인 몫이다. 국가가 행한 공적 행위는 거의 소수의 호주머니로 흡수되고 공동체의 이익이 되어야 할 부(富)가 개인의 사유로 탈바꿈한다. ‘판교로또’ ‘강남로또’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상당수의 국민을 공유부 갈취의 공범으로 만들면서 말이다.


이 혜택은 ‘세금으로 새 길을 내면 길 옆 땅의 주인이 배불러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 공유부 관리와 현저히 대조적이다.


이런 공유부가 가장 현저하게 사기업의 호주머니로 독식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은행이다. 은행이 개인이나 기업에게 화폐를 대출해줄 때는 금고에서 돈을 꺼내거나 장부에 소유하고 있는 돈을 대출하는 것이 아니다. 은행의 신용으로 돈을 대출해준다. 그런 후 금액을 장부상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이자를 받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자를 받아서 챙기는 그런 은행은 무조건 돈을 벌게 되어 있다.


그동안 한국의 땅값은 여러 번 요동을 쳐왔고, 그 과정에서 금융권이 일방적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2011년 유원일 전 국회의원은 "2006년~2010년 사이 가계부채가 900조 원에 육박하는 등 심각성을 더하는 가운데 7대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로 벌어들인 이자수익이 무려 51조원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재현되고 있다.


가계대출이 1800조원으로 10년 전의 두 배로 증가한 상태에서 8대 시중은행이 2020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주택담보 이자 수입만 41조원에 이른다( MBC 보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벌어들인 이자 수입에 육박하는 돈을 한 해 동안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만저만한 '과잉' 이득이 아닐 수 없다. 땅값이라는 '미실현 가격'의 허수적 작용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과잉이득이다.


이 과잉이득의 정체가 바로 공유부다. 한국은행이 허용해준 대출권한의 보증만으로 이자수입을 거저 획득하고 있으니 말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현실경제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대중의 유무형의 공적자산을 갈취하고 있는 이 문제를 소홀히한 결과가 현재의 양극화다. 경제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이유다.


최근 에너지전환과 관련하여 햇빛바람연금이라는 말이 유력해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공유부의 분배에 해당한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흔히 기본소득을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 재원문제를 거론한다. 하지만 우리가 공유부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하고 이를 제대로 배분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기본소득은 그 유력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현실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이 공유부의 독식문제가 이젠 학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공유부의 존재는 공공재의 경제이론과도 다르다.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경합적이고 배제불가능한 공유부에 대해서는 비교적 풍부한 분석이 있지만 실상 공유부에는 다른 영역이 있다. 맨해튼 그리고 금융부문의 사례와 같이 다른 중요한 유형이 있는 것이다. 이 영역이야말로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중시되어야 할 곳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론으로 익을 때까지 시간을 끌면 사후약방문이 되기 쉽다. 이치와 지혜로 쌓은 능력으로 실전에서 성립시키고 바로잡아야 한다. 현실에서 구현되면 이론으로 정착되는 법이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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