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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 과업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 이기우
  • 등록 2024-01-26 13:48:17
  • 수정 2024-01-26 16: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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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2024.1.26.) : 2티모 1,1-8; 루카 10,1-9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일흔 두 명의 제자들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짝지어 보내신 이야기를 전해줍니다(루카 10,1-2). 이 파견기사는 네 복음서 중에 오직 루카만이 기록해 전해주는 이야기인데, 파견된 제자들이 명심해야 할 신앙적 원칙과 선교 수칙은 열두 제자의 파견기사와 동일하지만(루카 9,1-6), 파견되는 제자들이 일흔 두 명으로 늘어났다는 점이 눈에 띄는 차이점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병자를 치유하시고 마귀 들린 이들을 마귀로부터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이스라엘 전국에서는 물론 동남쪽 이두매아와 북쪽 티로와 시돈 같은 이방인 지역의 사람들도 몰려왔었습니다. 일흔두 제자 가운데 늘어난 예순 명은 이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눈에 띌 정도로 그 열성이 돋보였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이스라엘 여러 고을로 파견하실 때 이들을 환영해 주는 이들의 집에서 묵으면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필시 앞에서 언급한 예순 명도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토박이 지지자들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들을 돕기도 하고 지켜 보기도 하면서 간접적으로 제자 훈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예수님께서 복음선포 활동에 지치실 때마다 들러서 쉬시곤 했던 베타니아의 라자로와 그의 두 여동생이라든가(마르 11,11; 루카 10,38-42; 요한 11장),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최후의 만찬을 드실 방을 주선해 준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루카 22,10)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이스카리옷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제자를 뽑을 때 모인 사람들이 다 이런 조건을 갖춘, 넓은 의미의 제자들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 수효가 백스무 명 가량이었습니다(사도 1,15).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신 열두 제자와, 또 이들에 의해서 얻은 성소자 예순 명을 포함한 일흔두 제자와 그리고 이 제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또 다른 토박이 지지자들까지도 모두 포함한 이 백스무 명이 예수님께서 모으신 하느님 백성이었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의 주축이 될 만큼 신약시대의 아나빔으로서 믿음이 굳건한 무리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복음화 노선을 바오로가 충실히 따라서 초대교회의 초석을 다졌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티모테오와 티토 사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선교활동을 펼쳤으므로 그의 선교 활동에는 그의 뒤를 이어받는 후계자가 없으면 중단될 수도 있는 불안정성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만, 그런데 다행히도 사도 바오로가 시작한 복음화 과업이 초대교회 시절에 소아시아 지방과 그리스 일대에서 이들을 통해 안정성 있게 지속되었음을 알려주는 이들이 이 두 사도입니다.


티모테오는 사도 바오로가 첫 번째 선교 여행 중에 리스트라를 방문했을 때 그의 집에 묵으면서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 일을 인연으로 알게 되었으며(사도 14,8-20), 두 번째 선교 여행부터는 동행하며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2티모 3,11). 티모테오의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지만(사도 16,1),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는 유다인으로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믿음을 그에게 전해 준 것 같습니다(2티모 1,5).


바오로는 두 차례의 선교 여행에서 그와 동행하며 여러 편지에서 그를 언급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1테살 3,2), ‘나의 협력자 티모테오’(로마 16,21),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1코린 4,17). 이런 친근한 표현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얼마나 티모테오를 아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카이사리아 감옥에 갇혀 있었기에 티모테오가 자신처럼 복음을 위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꺼이 동참하기를 당부하며 안수로써 하느님의 은사를 전해 주며 에페소 공동체를 맡겼습니다(2티모 1,6.8).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서 치명한 후 이스라엘 독립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황폐해지자 티모테오는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있던 사도 요한을 에페소로 초빙하여 당시 아리우스 이단에 시달리고 있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주도록 부탁을 했으며, 자신도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에페소의 시민들의 우상 숭배를 비판하다가 치명 당하였습니다.


사도 바오로를 수행하는 비서였던 티토는 각별히 서로 마음으로 의지하던 사이였으며(2코린 2,13; 7,6.13 참조), 이방인 입교자들에게 할례를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열린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도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를 동행했으며(갈라 2,1),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에도 바오로는 티토를 코린토에 보내어 모금을 하게 하는 한편(2코린 8,6), 가는 김에 코린토 공동체의 분쟁도 중재하게 하였습니다(2코린 7,2-13 참조).


이러한 그를 크레타 섬에 두고 오고 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티토 1,5). 크레타는 이집트 문명이 코린토와 아테네에 전파되기까지 중계기지가 되었을 만큼 문명이 발달했던 섬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티토에 대해 사도 바오로가 얼마나 신임하는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초대 교회에서 오늘날의 사제 직무가 주교와 신부로 나뉘어지는 직무 제도의 발전 과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화 과업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열둘에서 일흔둘 다시 백 스물로 조직적으로 확장되었으며, 극적인 사건으로 그분과 인연을 맺게 된 바오로는 10여 년에 걸쳐 혼자서 묵상하고 배움으로써 제자 단계도 뛰어 넘어서 아예 막 바로 사도요 선교사로 수직상승된 처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당시로서는 문명의 본바닥이었던 로마 제국의 영토로 널리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티모테오와 티토는 이렇듯 복음화의 단위가 확대되고 넓어진 상황에서 이제는 세대까지도 넘어서서 복음이 전해질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증인입니다. 티모테오나 티토처럼 사도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도왔던 인물로서 루카와 마르코는 물론(필레 1,24), 소스테네스(1코린 1,1), 실라스(사도 17,10), 아퀼라와 브리스퀼라 부부(사도 18,26)와 리디아(사도 16,40)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외적인 복음화의 상황을 관통하는 내적 원리뿐만 아니라 복음화 활동의 대전제에 대해서 오늘 미사에서 들려온 또 다른 말씀들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즉,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는 복음환호송은 예언자적 정통 노선에 따른 복음선포의 대상을 상기시켜 주었으며, 또한 영성체송에서는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르 16,15) 하고 복음선포의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복음선포의 대상과 비결이 확실하게 계승되었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방세계에 전파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티모테오와 티토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음화 소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민족 복음화의 과업과 함께 아시아 대륙 복음화의 소명이 주어져 있음을 상기합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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